SNU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1월26일(목) 19시39분23초 KST
제 목(Title): 문부식 시집 '꽃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감옥 안에 핀다고 

한탄하지 않고



갇힌 자들과 함께 

너희들 환한 얼굴로 하루를 여나니



간혹 

담을 넘어 들려오는 소식들은 밝고



짐승처럼 갇혀도 

우리들 아직 인간으로 남아 

오늘 하루 웃으면서 견딜 수 있음을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감옥 안에 핀다고

한탄하지 않고



갇힌 자들과 함께

너희들 환한 얼굴로 하루를 여나니



                    - 문부식 '꽃들 1'



1982년... 당시 고3이었던 staire는 신문에 난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을 보고서

별 느낌을 받지 못했었다. 그때로선 뭐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었고 언론에서 조작된

대로 북한의 사주를 받은 불순분자들이 일으킨... 이라는 논평 기사도 생각 없이 

읽어내렸다. 얼마 후 주범 문부식과 김현장의 사형 선고 보도, 무기 감형에 대한

소식도 그렇게 그렇게 읽어치우고 말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staire는 방화사건도 문부식이란 이름도 까맣게 잊고 말았었다.

다시 그의 이름을 떠올린 것은 90년 여름이었다. 연예 활동 규제에서 풀려난 지 

얼마 안 되는 김민기씨가 주축이 되어 벌인 '겨레의 노래' 공연에 서울 의대 

오케스트라가 참여함으로써 다시 그의 이름을 듣게 된 것이다.

처음엔 그저 신이 날 뿐이었다. 김민기, 송창식, 장필순, 서유석, 노영심, 최진영,

임준철, 전인권 등 쟁쟁한 사람들과 한 무대에 서고 같은 분장실을 쓰고... 단지

그런 것들이 즐거웠을 뿐이다. 장필순이 1절을 부르고 2절에서 갑자기 터져나오는

송창식의 굵직한 목소리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정말 없어요...' (이 세상 

어디엔가)에 넋을 잃었으며 첫날 공연이 끝난 후 서유석씨가 소개하는 '자, 이제 

정말 오랜만에 김민기씨의 육성으로 아침 이슬을 들읍시다...' 그리고 기타에 

맞춰 부르는 김민기의 텁텁한 목소리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었다. (으... 그러고보니

전인권은 출연료가 적다고 막판에 펑크를 냈다.  :< )



둘쨋날 공연 전에 팜플렛을 보다가 문득 '꽃들'이란 노래의 작사자 이름에 눈길이 

머물렀다. 문부식... 인간의 기억이란 묘한 것이어서 아무리 오래 된, 희미한 

기억이라도 되살릴 수 있다던가?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의 주인공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임준철씨의 곡으로 임준철씨가 직접 부른 노래는 애띤 분위기...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감옥 안에 핀다고 한탄하지 않고 갇힌 자들과 함께 너희들

환한 얼굴로 하루를 여나니...'



그러나 이 때는 몰랐었다. 88년에 석방된 문부식이 89년 '한미문제 연구소' 

사건으로 다시 목포 교도소의 어두운 감방에 갇혀 있었음을. 우리가 겨레의 노래

공연에서 그의 노래를 들으며 감격에 취해 있을 때에도 그는 어두운 감방 안에 

옹송그리고 앉아 쪽지에 시를 끄적이고 있었다는 것을...



작년 4월 30일, 내 20대 시절의 빛나는 장면 중의 하나인 영화 '블루'를 보던 날. 

표를 예매하고 남는 시간에 잠시 서점에 들렀던 staire는 마침내 문부식의 시집을

발견했다. 91년 출옥하고 92년 '노둣돌' 창간호에 작품을 실으면서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의 첫 결실... 옥중에서 쓴 시들이 눈에 띄는 예쁜 시집 '꽃들'.



지금도 그의 시집은 staire의 연구실 책상 위에 꽂혀 있다. 그뿐인가, 그의 시 

'꽃들 1'은 책상 간막이를 장식하고 있다. 대학원 생활이야 '감옥'이라고 할 바는

아니지만 내가 힘들 때마다 가슴을 적셔주는, 섬섬한 듯 진한 그의 향기로...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