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11월30일(수) 03시36분27초 KST 제 목(Title): 할머니의 장례식 금요일 밤에 부산에서 전화가 왔다. 100세를 바라보시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논문이 아무리 바쁘기로 그런 일마저 제쳐 둘 수는 없는 것이니... 여동생과 막내 민호(minow)와 함께 밤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문상객들도 다 돌아가고 몇몇 친척들만 남은 집을 들어서자마자 우선 할머니께 인사 를 드렸다. 생전에 거처하시던 방에 마련된 빈소. 할머니께서 누워 계신 관을 가린 열 폭 병풍은 낯이 익은 것이다. '무이산상유선령 산하한류곡곡청... ' 지금 한자를 쓸 수 없어 아쉽지만... 내가 무척 좋아하는 무이구곡가 10수를 써내려간 병풍. 집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나중에야 그 전말을 알게 되었지만...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를 여의신 후 시장에서 콩나물 장사를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시장에 찾아가셔서 좌판을 엎어버리고 할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 오신 것이 1971년, 그러니까 23년 전이다. 장성한 아들이 셋이나 있는데 왜 할머니께서 좌판을 벌이셨는지 모를 일이지만 막내 아드님이었던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형들을 믿지 않겠다. 어머니는 내가 모신다.'고 강경하게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를 모시기 싫어하시던 두 큰아버지께서 할머니를 홀대 하시던 것을 성격이 좀 직선적이신 아버지께서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고모들 역시 할머니께 무관심하시기는 마찬가지였다. 막내 고모님만은 여러 차례 생활비나 용돈을 부쳐드리기도 하셨지만... 덕분에 어머니께서는 연세가 50이 넘어서도 무척 힘든 시집살이를 하신 셈이다. 몇 달 전 어머니께서는 큰 수술을 받으셨다. 그런데 입원해 계신 동안 다른 집에 가 계시던 할머니는 어머니께서 퇴원하신 지 겨우 며칠만에 다시 우리 집으로 돌려보내지고 말았다. 어머니께서는 불편하신 몸을 이끌고 다시 할머니를 모셔야 했고 나는 거기에 대해 아무 말 말라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할머니께서 숨을 거두시기 며칠 전, 갑자기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셔서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민형아, (할머니께선 어머니를 이렇게 부르신다.) 내가 네게 무척 고생을 많이 시켰구나. 내가 죽고 나면 네 자식들이 잘 되도록 꼭 보살펴 주고 싶다..." 어머니께선 그런 것 믿으시는 분이 아닌지라 '노망으로 아들도 못 알아보시던 분이 웬 일로...'하고 신기하게 여기시는 정도였지만 곁에 계시던 고모 한 분의 입을 통해 이 이야기가 친척들 사이에 퍼지게 되자 대단한 소동이 벌어지고 말았다. 평소에 얼굴도 안 비치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고모들이 몰려와서는 간병을 하신다면서 법석을 떤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애석하게도(?) 그 날 이후 영영 의식을 되찾지 못하시고 말았다. 발인을 할 시간이 되었다. 불교를 믿으시던 고인의 뜻에 따라 화장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빈소가 소란스러워졌다. 화장을 끝낸 후엔 영정과 위패가 다시 빈소로 돌아오고 사흘 후 삼우제를 지내는 것이 원칙인데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고모들께서는 영정과 위패를 절에 모시고 그곳에서 재를 올리겠다는 거다. "절에 모실 때 모시더라도 빈소로 돌아와 이곳에서 삼우제를 올리는 게 법도가 아닙니까?" 어머니의 말씀에 대한 큰고모님의 답변은... "생전에는 자네가 모셨지만 우리 어머님이야.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자네는 빠지게." 이 말씀에 어머니께선 격앙되고 말았다. "어디에 이런 법이 있습니까? 어머니를 이 집에서 어서 빼내가려는 거지요? 생전에 어머니께 한 푼어치도 해 드린 것 없지만 어머니께서 내리시는 복을 차지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리고 저는 빠지라니, 저는 어머니를 모시는 종으로서의 소임을 다했으니 이제 됐다는 건가요? 전 고인의 축복이 어쨌다든가 하는 건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거 믿지도 않아요. 하지만... 정말 가증스러운 집안이군요. 생전에 그처럼 어머니를 박대하고서 이제 복을 받고 싶으신가요? 도대체 어머니의 자식이라고 자신있게 나설 분이 누가 있지요? 효도라는 건 그런 건가요? 당신들이 그렇게 행동하는거, 자식들이 보고 배웁니다. 나중에 뼈저리게 느끼실 겁니다. 누구든 자신 있으면 나와 보세요. 어머니의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시면 나와 보십시오. 왜 아무도 안 나오시는 거죠..." 큰아버지도, 고모들도 물론 할 말이 없으신 건 당연한 일. 어머니께선 머리에 쓰고 계시던 흰 천(이름이 뭐더라?)을 벗어 던지셨다. "전 장지에 안 따라갑니다. 알아서들 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귀신이 있다면 당신들을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입으로 하는 효도, 많이들 하세요..." staire는 바닥에 주저앉아계신 어머니를 감싸 안고 조그만 소리로 말씀드렸다. "엄마, 잘 하셨어요..." 어머니께선 staire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시고 무척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 진실한 마음이 깃들이지 않은 장례... staire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결코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생각이다. 전통이건 뭐건 내 앞에선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문상객도 부르지 않고 친지들에게 알리지도 않을 것이다. 발인이니 삼우제니 하는 것에도 관심 갖지 않겠다. 내 식대로 간단하게 모실 거다. 기일을 기억해서 올리는 제사 같은 것도 지내지 않을 거다. 아무 때라도 고인이 그리울 때 초 한 자루만으로 고인을 모실 거다. 전통, 격식... 인간은 그 속에서 말라 간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