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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11월14일(월) 00시17분43초 KST
제 목(Title): 밥대생과 도서관 II. 란다우 vs. 밥대생 




앞 글의 람보도 이 분야에서 명성을 떨쳤지만, 정말 도서관에서 남의 자리를
대신 맡아 주는 악행은 워낙 뿌리가 깊어서 늘 고치자고 말은 나오지만 아직
까지 계속 이어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바로 내가 그 짓을 하다가 한번 잊을
수 없는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 날...늘 일찍 나오던 후배 하나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11시쯤 도서관에 오게
되었다. 나는 원체 도서관에는 발도 안 들여 놓는 비학구파지만 그 때는
병역 특례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급박한(?) 상황이라 부득불 도서관에서 영어와
국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자리는 늘 후배가 맡아 주고.....

그런데 단 두과목 공부하는 학생이 들고 다닐게 뭐 많겠는가? 토플책 하나,
국사책 두권(상하권이니깐..)그게 다였다.(가방도 안든 영낙 없는 건달이었다.)
그래서 하나는 후배자리 맡아 놓고 나는 국사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적어도 11시까지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후배가 나타나고
보니까 후배는 선배를 닮는 것인지 이 녀석도 전공서적에 노트하나 달랑 든
날라리 폼이었다.(이게 화근 이었어....)

우리는 한 시간 쯤 책을 보다가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왔었는데....

배를 두들기며 다시 자리로 가보니깐 내 자리에 왠 뺀지르~~한 놈이 아예 
살림을 차려놓고 '형법각론'을 펴 놓은 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밥대(법대를 비꼬아 부르는 말.) 다닌다고 노트표지에 학번은 대문짝
만하게 써놓고 있었다. 호오~~ 밥대생이라....:)

나는 그녀석의 어깨를 톡톡 두들겨서 고개를 돌리게 한다음 아주 신사적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자리 주인이 왔으니 인제 그만 꺼져라. :)
그랬더니 이 친구 생긴대로 뺀지르~~하게 웃더니 이 자리는 남의 자리를
대신 맡아 준 자리이니 자기는 못 비키겠다는 것이다. 도서관 규정에 남의
자리 잡아준 곳은 아무나 앉아도 된다나? 

아~~쭈~~~ 웃겼어? 누가 법대생 아니랄까봐서리....경우에 따라서는 실정법이
성문법을 앞설 수 있다는 것도 넌 모르니? 하지만 그런 걸로 입씨름해 봐야
내가 이길 턱도 없고 또 내가 설령 자리를 잡아 주었다 해도 이미 내 후배가
와서 자리를 차지한 후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다시 신사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이미 11시에 내 후배가 이 자리에 왔다가 함께 밥을 먹으러 나간거란다,
아가야~~.

그랬더니 이 친구 왈, 자기가 보기에는 두 자리에 있는 책이 합해서 4권 밖에
안 되니 이건 한 사람이 두 자리를 맡은 것이 틀림 없는 고로 자기는 비킬 수
없단다. 으아....짜샤..학생이라고 다 너처럼 배낭에 미어터지도록 책을 잔뜩
가지고 다니는 줄 아냐? 공부 못하는 애들일수록 책가방만 무거운 거야!

근데...나를 더욱 열불나게 만든 것은... 나하고 몇마디 입씨름을 하던 그
뺀찔이 밥대생, 나를 보며 비웃음을 날리더니 내가 사정을 설명하는데도
이어폰을 꽂으며 고개를 돌려 책을 바라보는 행동이었다... 너는 떠들어라,
이미 이 자리는 내가 차지 했으니 안 비킬란다...이런식으로 말이다.
대개 맘 약한 사람들은 이런 경우 포기하고 그냥 자기 짐을 챙겨서 자리를
옮긴다. 도서관에서 언성 높여서 싸우면 챙피하니까.... 

그치만, 그 뺀질이 밥대생 친구 사람을 잘못 골랐다. 하필이면 란다우 같은 
깡패에게 걸려서 그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격언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으니까....:)

나는 그 녀석의 이어폰을 확 빼어 버린다음에 귀에 대고 하나도 안 신사적으로
속삭였다.

"야 이 XX야, 곱게 일어날래, 아니면 얻어 터지고 일어날래? 네 놈의 그 묵직한
 가방을 창밖으로 날려 보낼까?"

그때서야 그 뺀질이는 그냥 밍기적 거리고 있다고 해서 내가 곱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란 것을 감잡은 모양이었다. 약간 당황해 하는 얼굴로 일어나더니 다시
이성적으로 도서관 규정에 어쩌구 저쩌구 노가리를 푼다.....

알았어, 알았어. 그런 것은 너 고시 답안지에나 쓰고 지금은 그냥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 그냥 비킬래 터지고 비킬래? ^_^

그제서야 그 친구 가방을 싸더니만 여기서 이러면 남들에게 방해가 되니
나가서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하잔다. 거 좋지...나도 바라던 바다.
일단 가방을 친구에게 맞겨놓은 그 밥대생...열람실 밖으로 나와 계단 
한가운데에서 멈추어 서더니 팔짱을 터억~~ 끼고서 나를 꼰아 본다. 할말
있으면 해보란다. 헐헐....

나는 그 녀석에게 짜샤, 이렇게 사람이 수십명 오르내리는 계단에서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거야 잔소리 말구 따라와. 하고서는 계단의 옥상층으로
끌고 갔다. 도서관 열람실은 6층까지만 있고.. 한층을 더 올라가면 옥상으로
나가는 문이 나오는데 그 문은 늘 잠겨 있지만 문 앞에는 대략 두평정도 되는
충분한 공간이 있다. 가끔 담배 피러 오는 사람 밖에 없는...흐흐흐....

이런 뻔뻔스러운 놈은 딱 세대만 두들겨 주면 잠잠해 지는 법이다. :I

설마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폭력 사태야 나오랴 싶었던 그 법대생은 이제
완전히 사색이 되고 말았다. 자기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 그제서야 감이
온 것이다. 

나는 이미 열을 받을대로 받은 데다가 주먹까지 쥐고서 있었는데, 난 잘 
모르지만 내가 폭발하면 평소에 순해보이던 거랑은 정반대로 좀 무시무시
하단다.(언젠가의 ...소금강에서 주먹들이랑 맥주병들고 째려본 사건 후에
후배가 말하기를... 그 때 오빠 눈, 사람눈 같지가 않았어요....)

옥상층에 다다라서 내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할말 있으면 해봐!"
(꼭 무슨 사형집행 하기 직전 같다,그지?)

그때 정말 황당한 사태가 일어났다. 그 밥대생 갑자기 허리를 반쯤 굽히더니

"저...선배님을 몰라뵙고 제가 그만 실수를 했읍니다.용서해 주십시오!"

이러는 것이었다. 윽.......:0 아무리 잠시 공포 분위기가 조성 되었다지만
어떻게 사람이 그리 금방 손바닥 뒤집듯이 변하냐? 옳고 그르고 간에 자기주장을
세웠으면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는 뜻을 굽히지 말아야지 겁 좀 주었다고
그렇게 숙이면 그게 남자냐... 너 같은 놈들이 법관이 되니까 12.12 가 기소유예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는 거야! ( 하긴 나같은 놈이 대학에 들어 오니까
학교내에 폭력이 난무하는 것이기도 해...그건 나도 인정한다구...) 

나는 맥이 풀려서 그냥,

"네가 그 자리에 왔을 때 이미 자리 주인이 있었던 때야! 알았어?"

하고서는 그냥 열람실의 내자리로 내려와 버렸다.................


사족 1.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사족 2. 역시 난 아버지 주장대로 육사에 갔어야 했다. 여기는 내 체질에 안맞아.



                                                  landau

                                      오이 냉채 같은 글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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