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purunsan (강철 새잎) 날 짜 (Date): 1995년03월18일(토) 07시40분44초 KST 제 목(Title): 문학 속의 30대... 제목 : [커버스토리] 문학작품이 말하는 30대의 좌절과 희망 ------------------------------------------------------------------------------ “요즘은 통 신문 볼 시간이 없어/ 살아남은 자들은 예언자의 숱 많던 머 리칼을 자르고 자기만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책임질 수 있는 것만 책임지려 하고, 바야흐로 총천연색 고해의 계절, 너도나도 속 죄받고자 줄을 섰는데….”(최영미 시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 에…’부분). “알고 있다네/ 흘러갔다는 걸, 우리 노래가/ 아직 미처 다 부르지 못 한/ 아쉬움조차/ 자네의 손바닥,/ 경쾌한 스텝에 얹혀지지 못한다는 걸/ (…)/ 그러나 자네여/ 우리는 우리의 노래를/ 부르려 하네/ 아름다운 세 상/ 아름다운 사람을 위하여/ 지난 겨울을 나며/ 우리가 부른 그 노래를/ 소리죽여 다시/ 부르려 하네”(김영환 시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 ’부분). #80년대는 가장 뜨거운 상징 문학작품 속에서 30대는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와 `‘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사이에 서 있다. 이 두편의 시는 지금의 3 0대가 자신들이 20대였던 80년대의 흥망성쇠에 의해 어떤 식으로든 영향 을 받고 있음을 전제한다.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80년대라는 ‘불 의 연대’는 그들의 순결한 청춘을 사로잡은 가장 뜨거운 상징으로서 그 들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두 시 사이의 거리는 멀고 크기만 하다. 최씨의 시에서 8 0년대는 상처와 부끄러움, 죄의식과 전락의 원천이다. 지금의 30대가 자 신들의 청춘을 바쳐 꿈꾸었던 ‘혁명’은 “시작되기도 전에 진부해져 썩 는 냄새”를 풍긴다. 지난해를 풍미한 최씨의 시집 제목이 말하는 대로 서른이 되자 문득 잔치는 끝나고 만다.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 인가”(`‘서른, 잔치는 끝났다’). 김씨는 다르다. 그 역시 자신의 노래가 다만 흘러간 유행가로 취급된다 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때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들어주었 던, 아니 열심으로 따라 부르기도 했던 ‘노래’는 이제 천덕꾸러기 신세 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옛 노래를 부르려 한다. 자신의 시집 제목 말대로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는 것이다. 최씨와 김씨의 시에 그려진 30대는 김소진씨와 공지영씨의 소설들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김소진씨의 단편 ‘혁명기념일 ’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해방을 꿈꾸던 한 예비혁명가에서 직업외교 관으로 변신한 인물은 8년 만에 만난 후배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젠 달 라져야지. 현실은 완강하잖아. 우리의 그 지독했던 낭만주의로는 아무 일 도 할 수가 없다고.” 공지영씨의 인기 장편 <고등어>에서 80년대에 대한, 그리고 그 세월을 대표하는 한 남자에 대한 비련의 끝에 죽어가는 여주인공은 그 남자에게 유언처럼 말한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써 줘. 형이 지금 쓰고 있는 이긴 사람들 이야기 말구, 잃어 버린 사람들… 하지만 빼앗기지는 않았던 사람 들, 그래서 스스로 잃어버렸던 세대들, 잃어버리고도 기뻤던 우리들… 그 때.” 두 작품 속에서도 80년대는 그렇게 등을 돌리고 있다. 좌절과 희망, 냉 소와 믿음, 도피와 사랑 등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80년대가 그렇게 비춰 지듯 그 시대에 청춘을 불태운 30대의 자화상 역시 빛과 그늘의 대조가 선명하다. 방황하는 30대 작가의 초상을 그린 대표적인 소설이 주인석씨가 시도하 고 있는 ‘90년대 구보씨’ 연작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5’라는 부제를 단 단편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을 불타게 한다’(<문학동네> 봄 호)에서 주인공인 구보씨는 소설가라는 직업이 무색하게 2, 3년째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다. #“역사는 무슨, 다 사기지…” “구보씨는 자기가 쓰는 소설이란 남들이 잊으려 하는 혹은 잊고 있는 어떤 것을 기억시키고 반성시키는 그리고 그 반성을 다시금 반성시키는 운명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이른바 `12·12 사태로 불리는 군사반란의 공소시효 가 만료하는 1994년 12월12일 하루 동안의 구보씨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 다. 그가 비슷한 처지의 화가 친구와 술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는 단말마 적 대화(“역사는 무슨 빌어먹을 역사. 다 사기지, 사기야.” “그럴 듯 하게 보이는 사기.”)는 역사적 정의라는 교과서적 믿음이 배반당하는 현 실에 대한 환멸과 울분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역시 <문학동네> 봄호에 실린 위기철씨의 단편 ‘잊음이 쉬운 머리를 위하여’는 광주의 학살을 목격한 뒤 얻은 광기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 고 마는 서른네살 먹은 사내를 등장시켜 90년대라는 현실이 얼마나 바스 러지기 쉬운 토대 위에 세워져 있는가를 폭로하고 있다. 공선옥씨의 단편들이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뒷얘기를 다루고 있다면, 그와 반대로 가해자(본질적으로는 그 역시 가엾은 피해자에 지나지 않겠 지만)의 눈으로 돌이켜 본 소설이 이순원씨의 단편 ‘얼굴’이다. 이 소 설에서 80년 당시 광주에 투입되어 살상에 가담했던 사실을 주위에 숨기 고 살고 있는 30대의 은행원은 당시 현장을 담은 비디오에 제 얼굴이 찍 혔을까봐 전전긍긍한다. 지금까지 살펴 본 문학 속 30대의 초상은 대체로 양극단 중 어느 한쪽 에 위치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물론 현실에서 30대는 그렇게 양극화해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양극단 사이의 대단히 넓은 프리즘의 여기 저기에 박혀 있다는 것이 좀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김인숙씨의 단편 ‘양수리 가는 길’은 그런 중간적 존재의 한 전형을 묘사하고 있다. 주 인공 오대리는 대학 시절 가두시위에 참가해 구류를 살기도 했던 인물이 다. 이제 그는 당시의 긴장과 두려움, 호기심과 희열조차도 아름다운 꿈 으로 회고하는 나이에 이르렀다. 지금 그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동남아의 어느 나라로 3년 동안 파견근무를 나가라는 회사의 요구다. 살 인적인 무더위와 낙후된 생활 환경이 주는 부담감, 특별수당과 파견 기간 만료 뒤의 승진 가능성에 대한 계산, 아내의 반응에 대한 불안 섞인 궁금 증 등 자질구레한 것들이 결정을 앞둔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오간다. 거창한 꿈을 잃고 산업사회의 톱니바퀴가 되어 돌아가는 왜소한 30대의 초상은 박상우씨의 장편 <섬 그리고 트라이앵글>과 정은숙씨의 시집 <비 밀을 사랑한 이유> 등에 잘 그려져 있다. “눈떠 보게 되는 나날의 일력( 日歷)과/ 밀려드는 주간 계획, 월간 계획서 속에서/ 흩뿌릴 수 있는 사랑 과 미소, 온화한 상징 사이/ 사건들과 사고들과 삽입되는 아우성 속에서/ 그 틈바구니에서 낚아채는 건 아무 것도 없다.”(정은숙 시 `‘아득한 나 날’부분) #근원적으로 같은 ‘운명공동체’ 윤대녕씨의 소설들은 거의 일관되게 30대 초중반의 독신 남자를 주인공 으로 등장시킨다. 그들은 가족도 없고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직장도 없 이 주로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해서 먹고 산다. 바깥 세상과의 관련도 최소 한으로 제한하는 그들에게는 무슨 치명적인 상처도 절실한 욕망도 없다. 다만, 조용히 꿈꾼다. 존재의 시원으로 돌아가기를. 때로 그같은 꿈꾸기 는 단편 ‘은어낚시통신’에서처럼 반사회적 밀교집단에의 매혹으로 나타 나기도 한다. 일일이 거론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폭주하는 문학작품 속에서 30대는 대체로 80년대라는 청춘의 시기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을 맺고 있는 모습 으로 나타난다. `‘80년대의 자식’으로서 그들이 90년대를 살아가는 양 상은 천차만별이지만, 그 모든 차이를 상쇄할 근원적인 공통점으로 인해 그들은 단일한 운명공동체로 묶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신문 문화부 << 한겨레21 >> 구독 신청은 ℡.7100-50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