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News) 날 짜 (Date): 1994년08월23일(화) 01시45분03초 KDT 제 목(Title): [한겨레]동의없는 임의동행 언제까지 [시론] 동의없는 임의동행 언제까지 / 문재인 변호사 5공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일이 오늘 이른바 `문민정부' 아래서도 되풀 이되고 있으니 역사의 발전이란 이토록 더디고 힘든 것인가. 경찰은 지난 16일 새벽 전국의 역과 고속도로 톨게이트 등지에서 일제 검문검색을 벌여 범민족대회를 마치고 귀향하는 대학생 1천3백여명을 무 더기 강제연행했다. 이들은 17일 밤까지 30~40시간씩 영장없이 불법 구금 당하였고, 이틀 밤을 경찰서의 딱딱한 철제 의자에서 지새워야 했다. 경찰이 제시하는 무더기 연행에 대한 법적 근거는 `임의동행'이라는 것 이다. 그러나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임의동행을 본인이 동의할 때만 할 수 있고, 본인의 동의가 있더라도 6시간을 넘기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임의동행에는 본인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며, 동행에 응한 뒤에도 언 제든지 자기 의사에 따라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입법예에서는 찾기 힘든 법률조항이다. 이런 당연한 이치를 경찰관직무집행법 속에 명문규정으로 못박아 두고 있는 것은 지난날 부끄러웠던 우리 인권의 역사 때문이다. 유신과 5공 시절 임의동행을 빙자하여 마구잡이로 자행되었던 불법 연 행과 구금에 대한 원성과 비판이 쌓이고 쌓여, 그렇게 해서라도 불법 임 의동행을 막아보고자 한 사회적 합의가 6공 초기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명시적인 규정을 만들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여소야대 정국에 떠밀려 입법을 강요당하였을 뿐 애당 초 실천 의지가 없었던 6공 정권은 명시된 법조항조차 지키지 않았고, 불 법 임의동행에 의한 인권침해의 근절은 문민정부의 과제로 넘어오게 되었 다. 6공 정권과의 차별성을 부르짖은 김영삼 정부는 체포영장제의 도입 등 강제적 임의동행을 없애기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놓고 있고, 그릇된 수사 관행의 산물인 경찰서 보호실을 없애기도 하는 등 개 혁 의지를 보여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다. 그러나 `문민 경찰'이 지난주 화요일에 저지른 폭거는 김영삼 정권의 그동안의 노력을 일거에 물거품으로 만들고, 인권의 시계침을 단숨에 5공 수준으로 되돌려놓았다. 신체의 자유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자랑하는 자유의 핵심이요, 출 발점이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자유민주주의는 허울만 남게 된다. 동의없 는 임의동행이 묵과될 수 없는 이 넵여기에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대대적인 불법수사가 학생운동에 대한 비난과 매카시즘의 분위기 속에서 덮어지고 있다는 점이 다. 주사파의 엄단과 불법 시위의 처벌을 위하여 무리한 수사가 불가피하 다거나 용인되어야 한다는 그릇된 인식이 사회 전체의 이성적인 판단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사파가 엄단되어야 할 이유가 자 유민주주의의 우월성에 있다면, 국가 공권력이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부 정하면서 무슨 명분으로 주사파 엄단을 부르짖을 것인가. 국가 공권력이 법을 지키지 않고 불법을 자행하면서 어떻게 학생들의 불법을 나무랄 것 인가. 민주주의는 절차의 정의라고 한다. 절차의 적법성이 무너지면 민주주의 는 위기를 맞게 된다. 불법 수사의 용인은 부머랭 같은 것이어서 결국은 방관자에게 칼날이 되돌아오게 마련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신공안정국의 흐름 속에서 급기야 일어난 이번 사태는 문민정부 의 한계와 비민주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문민정부의 개혁과 민주화 작업은 여기서 주저앉고 마는 것인가. 너무 빨리 닥쳐온 한계가 당혹스럽 고 안타깝다. 이제 문민정부는 선택을 분명히 해야 할 때로 보인다. 보수 강경세력의 주도 속에 6공의 모태로 되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개혁과 민 주화를 위하여 다시 떨쳐 일어설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