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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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News)
날 짜 (Date): 1994년08월20일(토) 02시43분46초 KDT
제 목(Title): [한겨레][사설] 강기훈씨의 진실


 강기훈씨의 진실

   엊그제 강기훈씨가 3년여의 옥살이를 끝내고 가족과 친지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보도 사진이 보여주듯, 옥문 앞에서 밤새워 기다리던 어머니를
  껴안는 그의 약간은 지친, 그러나 예의 밝은 웃음을 잃지 않은 반듯한 모
  습에서 `자살 방조자'의 어두은 그늘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혹은 목청껏  
  그의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혹은 검찰의 조사과정과 법정 공방을 석연찮 
  아하면서도 무기력하게 그의 감옥행을 지켜보아야 했던 많은 이들에게 그
  의 미소는 작은 위안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강씨는 "진실 
  이 승리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단호함 또한 잃지 않았다. 3
  년 전 6월, 한달 넘게 농성하던 명동성당을 제발로 걸어나와 검찰에 자진
  출두하면서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던 그때의 단호함 그대 
  로였다.

   이른바 `공안정국'의 먹구름이 그토록 오래 사람들의 가슴을 짓누르던 

   91년 5월, 명지대 강경대씨가 학교앞 시위 도중 진압경찰의 쇠파이프에  
  쓰러지고, 그 처절한 죽음을 항의하는 젊은이들의 분신과 투신이 잇따라 
  온나라가 초긴장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때였다. 그 소용돌이에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폭력정권 타도를 외치며 서강대 옥상에서 몸을 날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가 남긴 유서가 이 단체의 총무부장 강기훈씨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데서 사건은 시작됐다. 최근 `주사파' 시리즈로 물의 
  를 빚고 있는 서강대 박홍 총장이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있
  다는 섬뜩한 수사로 사태에 기름을 부은 것도 이 때의 일이었다. 한마디 
  로 위기정국의 절정에서 재야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함으로써 시
  국열기에 찬물을 끼얹으려 한다는 재야의 비난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정 
  황이었다.

   그러한 배경에서 진행된 전민련.변호인쪽과 검찰의 공방은 뜨거웠다. 
  검찰이 증거보전신청까지 했다는 죽은 김기설씨 여자친구의 `불법감금'을
  둘러싸고, 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유서가 대필됐는지도 확정하지 못한 ` 

  엉터리 공소장'을 놓고도 설전은 끝이 없었다. 검찰의 위신과 재야의 도 
  덕성, 말하자면 서로의 `생사'가 걸린 이 접전에는 상식도 진실도 끼어들
  기 어려웠다. 문제의 열쇠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이었다. 지루
  한 법정 공방의 결과는, 감정책임자가 감정기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
  을 제시하지 못 삼모잔변호인쪽의 온갖 반론에도 불구하고, 특히 그가 감
  정조작의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상황에서 진행된 항소심에서
  조차 강씨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라는 형사재판의 대원칙마저 거꾸로 선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난이 빗발쳤
  다.

   지금 우리는, 정황과 심증말고는, 유죄판결을 뒤엎을 실증적이고도 구 
  체적인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그의 주장대로, 그리고 적지 않
  은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듯이, 그가 유서대필을 해준 적이 없다면, 한
  젊은이의 천만부당한 옥살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 
  것은 빗나간 검찰, 죽은 법정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을 방치하고 조장한

  한 시대의 암울한 분위기와 그 시민사회의 무책임이 공모한 결과이기 때 
  문이다. 우리가 이번 사건의 진실은 끝까지 파헤쳐져야 한다고 믿는 까닭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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