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News) 날 짜 (Date): 1994년08월17일(수) 03시27분45초 KDT 제 목(Title): [한겨레] [사설] 정부, 분별력 잃고 있다 정부, 분별력 잃고 있다 49돌 광복절인 지난 15일밤 텔레비전 뉴스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아마 눈과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폐회식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1만여명의 범 민족대회 참가자들 머리 위로 헬리콥터가 유유히 날면서 최루액을 쏟아붇 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습에 깜짝 놀란 시민과 학생들이 이리저리 피하며 흩어지고 폐회식은 십분 만에 끝났다고 한다. 정부가 공권력을 가지고 있 다 해서 아무 일이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야와 학생을 상대로 정도에 지나친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가 분별력을 잃은 마당에, 너무나 당연한 비판이나 항의는 오히려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범민족대회가 어려움속에서도 네차 례나 열려 국민들에게 통일의 염원을 강하게 심어주고 적극적인 통일 분 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한 공로가 컸다든지, 이런 마당에 민족간의 화해 를 꾀한다는 민간 통일운동을 그렇게 심하게 탄압할 수 있느냐는 지적은 정부한테는 이미 한가한 소리임이 분명할 것이다. 다만 정부가 범민족대 회를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으로 보지 않고 북한의 통일전략에 따라 움직 인다고 주장하는 그 근거에 대해 비판하고자 한다. 정부는 범민족대회가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주장하고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 연방제 통일방안의 확산, 핵문제 일괄타결을 주장하기 때문에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주 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주장은 중대한 논리상의 허점을 가지 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 자체도 크게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보 안법 철폐를 주장하기 때문에 그것을 똑같이 주장하는 사람 역시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최근에 우리의 보안법 문제를 거론한 미 국 무부도 북한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는 희한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또한 핵문제의 일괄타결은 이미 북-미 회담의 진행방향이 그런 쪽으로 가 고 있는 것이며, 이곳저곳에서 논의되는 여러 종류의 연방제가 그 내용면 에서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이야 이미 새삼스런 지 적이다. 정부는 근거가 희박한 논리를 앞세워 시대착오적이고 냉전적인 태도로 범민족대회를 탄압했다. 그 대회에는 무려 65개의 각종 재야.시민단체와 대학의 여러 조직이 참여했다. 경찰이 그토록 집요하게 원천봉쇄를 기도 했어도 1만5천여명의 시 관향학생이 참가해 밤을 새웠고 평화적으로 대회 를 진행했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대회에 대한 탄압을 계기로 마침내 그 많은 시민단체와 화해할 길 없는 틈을 또다시 벌여놓은 셈이 되었다. 갈 수록 온갖 사회세력과 담을 쌓는 김영삼 정권한테 묻고자 한다. 이 사회 를 어디로 끌고 갈 셈인가? 모든 집회와 토론과 이성적 사고에 재갈을 물 려 의사표현의 자유를 막을 셈인가? 의사표현이 억압당하는 상태에서 어 떻게 민의를 파악하며, 민의의 참여 없이 올바른 정책수립은 가능한가? 이런 현실은 과연 자유민주주의다운 것인가, 아니면 `문민독재'적인가? 도대체 이땅에 민주주의를 심고 통일을 성취할 의향은 있는가? 이런 근본 적인 질문에 김영삼 정권은 이제 솔직한 대답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