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워싱턴사과) 날 짜 (Date): 1999년 1월 15일 금요일 오전 04시 55분 40초 제 목(Title): 강준만/ 기자를 사병화한 조선일보 강준만씨가 소송에 휘말린 문제의 그 글입니다. 기자를 사병화한 {조선일보} /강준만 '최장집 죽이기'와 {조선일보} {조선일보} 문화부에 이한우라는 기자가 있다. 나는 그를 잘 안다. 물론 개인적으로 잘 안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쓴 책들과 기사들을 통해 공인(公人)으로서의 이한우에 대해 잘 안다는 말이다. 이한우에 대해 쓰라고 하면 지금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 내로 200자 원고지로 1∼2백 매 분량은 쉽게 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기 자랑을 하다니, 내가 김용옥을 닮아가는 건가? 그건 아니다. 그만큼 내가 평소에 이한우를 눈여겨 보면서 관심과 시간을 쏟아 왔다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어찌 감히 도올 김용옥을 넘보겠는가. 지금 이한우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그건 다른 기회에 할 일이고 여기선 {조선일보}의 비열한 '최장집 죽이기'와 관련해 이한우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이한우의 문제점에 대해선 나중에 그를 본격적으로 다룰 기회가 있을 때에 이야기하고 여기선 그의 장점만 이야기하겠다. 이한우는 대단히 학구적인 기자다. 그는 1961년 부산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거쳐 같은 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번역서로 W. H. 월쉬의 {형이상학}, 리처드 팔머의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조셉 블레이처의 {해석학적 상상력}, 길버트 라일의 {마음의 개념}, 조지아 윈키의 {철학적 해석학},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등이 있으며 직접 쓴 책으론 {우리의 학맥과 학풍}, {거대한 생애 이승만 90년}, {철학은 99개의 눈을 가졌다} 등 여러 권이 있다. 이한우는 나름대로 아카데미즘에 대해 뜨거운 정열이 있어서 우리 학계에서 자주 저질러지고 있는 표절에 대해 분노한다. 물론 그런 기사도 많이 썼다. 예컨대, 월간 {인물과 사상} 10월호에 위택환씨가 기고한 <등잔불 아래도 아예 안 보는 대한민국 감사원>이라는 글에서 인용된 표절 관련 기사도 바로 이한우 기자가 쓴 것이다. {조선일보}의 광기 또는 살기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조선일보} 10월 26일자 4면의 거의 절반이 <한국전쟁 관련 최장집 위원장 논문 발췌>로 채워져 있다. 큰 제목, 작은 제목으로 뽑은 내용만 살펴보면 이렇다. <미군과 한국군의 38선 돌파 '공격적 팽창주의의 발로'> <'김일성은 열렬한 민족주의자, 민족 통일의 사명감 가졌다'> <'마치 북의 공격 기다린 듯 미, 전광석화처럼 개입'> '최장집 죽이기'를 시도하는 {조선일보}의 광기(狂氣) 또는 살기(殺氣)가 유감없이 드러난, 그런 기사다. 그런데 그 기사를 쓴 기자가 바로 이한우다. 나는 처음엔 믿지 않았다.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곧 이야기하겠지만, 이한우의 최장집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이하랴. hwlee@chosun.com이 그 이한우가 이 이한우라는 걸 확인시켜 주는 데 말이다. 물론 이한우는 기사 끝에 '정리'로 표시돼 있다. 논문에서 발췌해 정리한 것이니 썼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 그러니 나는 '최장집 죽이기'완 무관하다, 뭐 이런 식으로 이한우는 자위하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한 학자가 자신의 생애의 대부분을 바쳐 이룩한 학술적 업적을 신문지 3분의 1토막(광고가 3분의 1)에 발췌해서 정리한다? 그리고 그것도 '죽이기'의 용도가 너무도 분명한 그런 용도로? 만의 하나 이한우가 '난 무관하다'고 나자빠진다면, 그건 정말이지 벼락맞을 소리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한우를 꾸짖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된 건 아니다. 오히려 기자들을 사병화하는 {조선일보}의 경영진과 간부들을 꾸짖으면서, 이한우가 처한 비참한 처지에 대해 동정과 위로를 보내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된 것임을 알아 주시기 바란다. 이한우의 최장집 평가 이한우는 지난 95년 7월, {우리의 학맥과 학풍}이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아주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도 학계에 있는 학자들이 소홀히 하는 작업을 기자가 적극적으로 파고들어 잘 정리하고 평가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한우는 이 책에서 동양철학, 서양철학,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 법학 등 6개 분야를 다루었다. 정치학에서 최장집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한우는 최장집에 대해 적잖은 지면을 할애했다. 자신이 고려대 출신으로 최장집에 대해 직접 보고 들은 바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 최장집에 대한 그의 평가는 제법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갖는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한우는 최장집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던가? 그는 국내 정치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몇 가지 이론들이 87년 6월 항쟁과 92년 대통령 선거를 거치는 동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는 걸 지적하면서 최장집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경제 있는 정치학'의 선봉 역할을 했던 최장집(고려대 정치학)의 작업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최장집의 문제틀이 방금 말한 각종 경제 결정론에 빠지지 않고 '한국의 민주화'라는 문제를 축으로 놀라운 탄력성을 보여 왔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는 83년 귀국 이후 지난 10년간을 '어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관찰과 경험을 축적하는 시기'였다고 말했다. 물론 그도 관료적 권위주의 이론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국내에 가장 일찍 소개하며, 네오마르크스주의 국가론에도 기울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장집은 그 이론들을 '신봉'하거나 그것들에 '탐닉'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 그의 학문적 관심사는 일관되게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강조점의 축이 경제 영역에서 윤리 영역으로 옮아간 것이다. …… 그는 최근의 저서에서 '그 동안의 관찰과 경험을 통해 이상적인 정치공동체의 실현은 시민윤리와 교육의 문제이며 그 합(合)으로서 사회윤리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고백하고 있다. 앞으로 최장집의 학문 방향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건 매우 긍정적인 평가라 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도 보수적인 이한우가 보기에도 최장집이 비교적 '보수적'이라는 걸 시사하고 있다. 이한우가 이런 평가를 내렸을 때엔 {문화일보}에 몸담고 있었지만, 그는 {조선일보}로 직장을 옮긴 뒤에 {우리의 학맥과 학풍}이라는 책을 내면서 그 평가를 그대로 유지했다. 최장집의 등에 칼을 꽂은 비정한 '청부업자' 그로부터 3년 몇 개월이 흘렀다. 이한우는 '아웃사이더'로서 텃세가 심한 {조선일보}에서 생존하기 위해 점점 극우화의 길을 걷게 된다(게다가 이한우는 {조선일보}를 장악한 양대 학맥이라 할 서울대 출신도 연세대 출신도 아니다). 조갑제가 그랬고 류근일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최장집 죽이기' 사건이 터졌다. 학계 전문 기자로서 이한우가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기회가 온 것이다. 이한우는 자신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던, 모교의 존경받는 교수의 등에 칼을 꽂는 비정한 '청부업자'로 변신한 것이다! 나는 결코 이한우를 탓하지 않으련다. 처자식 타령하고 목구멍이 포도청 운운하면 골치아파진다. 내가 분노하는 건 기자를 사병화하는 {조선일보}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 대해 국내 제1의 전문가는 지난 92년 대선시 법무장관으로서 그 유명한 초원 복국집에서 부산 기관장 대책회의를 주재했던 김기춘이다. 당시 김기춘은 그 시스템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 "그래 류근일이가 그거 써 가지고 (국민당이) 막 조선일보하고 붙었는데…… 조선일보하고 붙은 건 우리 쪽에서 보면 호재다. 그 영감이 말이지 옆에 참모들이 조선일보하고 싸우면 안 된다고 건의해도, 그러니까 영감이 보고를 받고 광고 빼라 해서 확 엎어 버린 거지…… 데스크 보는 애들이 괜히 밑엣놈 핑계 댄다고. 나는 할려 했는데 애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그러니 안 돼. 통솔력 있는 사람은 합니다. 아, 조선일보는 과격한 기자 없나. 있지만 전부 신문사 간부가 달라지니까 합니다. 나가는 논조 보세요." 그런데 왜 신문사 간부가 달라지면 일선 기자들까지 달라지는 걸까? 하기야 우문(愚問)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기자라는 직업이 밖에서는 대단한 것 같지만, 신문사 안에서는 속된 말로 '파리 목숨'이다. 간부는 사주 따라 달라지지 않으면 배겨 낼 도리가 없고, 기자들 역시 간부 따라 달라지지 않으면 배겨 낼 도리가 없다. 80년대 후반 언론 민주화 바람이 불 때에 여러 언론사에서 '편집권'을 놓고 갈등이 벌어졌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기자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했고, 사주들은 '파리'답게 살라고 했던 게 이른바 '편집권 갈등'의 전선이었던 것이다. {조선일보}의 국가 경영 이데올로기 그런데 기자의 '파리화'가 가장 심한 곳이 바로 {조선일보}다. 물론 {조선일보} 기자들은 '파리화'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엔 묘한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에 집단적인 자기기만이 저질러질 수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 부조화 이론(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먹혀드는 곳이 바로 {조선일보}다. 뭐 쉽게 이야기하자면, 내키지 않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그 내키지 않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받아들여 자신의 신념으로 삼는 것이 일하는 데에 속이 편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조선일보}의 독특한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그걸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모든 신문들이 돈을 벌고 싶어 안달하지만 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모함과 저돌성에 있어선 그 어떤 신문도 감히 {조선일보}의 적수가 되질 못한다. 어떤 상황에선 양심을 송두리째 내던지고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무슨 말인지 잘 아실 거다. 그런데 과거의 우리 언론 상황이라는 게 그랬다. 전두환이 광주 학살을 저지르면서 집권을 했을 때에 다른 신문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강요된 지지를 했지만, {조선일보}는 화끈하게 적극적인 지지를 했다. {조선일보}가 5공을 거치면서 {조선일보}보다 앞섰던 신문들을 따돌리고 선두를 차지하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가장 큰 강점은 후안무치(厚顔無恥)다. {조선일보}는 그런 추악한 과거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떠벌려 댔다. "우리가 국가 경영을 한다." {조선일보}의 '국가 경영'은 양지와 음지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 양지, 즉 신문 지면을 통해선 늘 '국가적 아젠다'를 스스로 설정해 밀어붙였고, 음지에서의 경영은 '대통령 만들기'로 나타났다. {조선일보}는 기자들에게 그런 파렴치한 엘리트의식을 심어 주었다. "우리가 국가를 경영한다." {조선일보} 사람들이 갖고 있는 허위의식의 핵심이 바로 그것이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술로 돈도 많이 벌어 대니 기자들에게도 최고 수준의 봉급을 준다. 돈도 많이 받는데다 자신이 국가를 경영한다는 허위의식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일보} 기자들의 행태는 독특하다. 기자들의 출입처에선 {조선일보} 기자들을 높게 평가하는 소리가 많이 나온다. 성실하다거나 촌지를 받지 않더라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내가 국가를 경영하는데 목돈이라면 모를까 그까짓 푼돈을 왜 받아? 뭐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이게 더 무서운 거다. 촌지도 받으면서 적당히 타락은 했지만 사회를 보는 큰 안목은 살아 있어서 민주화를 염원하는 기자가 '조선일보만이 빛이요 진리'라고 믿는 소름끼치는 독선과 극우적 이념으로 무장한 조선일보 기자보다 훨씬 더 나을 수 있다. 이는 조선일보에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전혀 없는 걸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조선일보에도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그건 {조선일보}에 의한 국가 경영을 잘 하자는 취지의 내부 비판이지 {조선일보}의 '국가 안보 상업주의'에 관한 내부 비판은 눈을 수세미로 문질러 가면서 찾아 보아도 찾기 어렵다. 사주의 사병(私兵)은 영광이다? 신문사들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언론 민주화 바람도 사라지고 말았지만, 최근의 IMF 사태로 신문사에도 정리 해고의 삭풍이 불었고 신문사 자체가 도산 위기에 처함에 따라 신문사 내에선 언론 민주화라는 단어 자체가 아예 실종돼 버렸다. 다른 직장에서도 그렇겠지만, 정말 요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사주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일 게다. 사주의 사병(私兵)?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 제발 그거라도 시켜 준다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하겠다. 대학, 특히 국립대학에 있는 교수라는 놈이 이런 심정을 알 리 없다. 정말 할 말 없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조선일보의 경우엔 국내 최고 수준의 봉급을 주는 곳이 아닌가. 그러니 조선일보에서 쫓겨난다는 건 더욱 상상하기조차 싫어질 게다. 사병화를 영광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더 강할 것이라는 말이다. 천하의 조선일보도 요즘 IMF 바람을 탄다곤 하지만, 그래도 신문사들 가운데엔 가장 짱짱하다. 상여금도 1100%다. IMF 사태 때문에 그것도 조정됐겠지만, {미디어오늘}에 가끔 보도되는 조선일보의 사원 복지는 여전히 부러움을 자아내게 만든다. "조선일보 노사는 이와 관련 '주택 마련 자금'(3천만 원), '주택 임차 자금'(2천만 원), '생활 안정 자금'(2천만 원) 등 현행 대출 한도액을 각각 1천만 원씩 상향 조정하고, 대출 액수(1천∼3천만 원)에 따라 3∼7년으로 돼 있는 상환 기간을 각 1∼3년간 연장하는 방안을 협의중이다. 조선일보의 경우 현재 사내 복지 기금 총액은 1백65억 원이며, 이 중 97억여 원이 대출된 상태. 이 중 생활 안정 자금을 쓴 사원은 2백63명이며, 주택 구입 자금과 임차 자금을 쓴 사원은 각각 2백76명과 31명이다."({미디어오늘} 98년 7월 29일) "조선일보가 추석 상여금을 당초 노사 합의보다 50%가 더 추가된 100% 지급하기로 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18일 '당초 노사 합의대로 추석 상여금을 50% 지급할 예정이었으나 경영이 연초 예상보다 다소 호전돼 50%를 추가 지급키로 했다'고 밝혔다."({미디어오늘} 98년 9월 30일) 사주와 간부에게 충성하는 한 조선일보처럼 좋은 직장이 또 있을까? {조선일보}가 자주 저지르는 일사불란한 캠페인의 파워는 바로 {조선일보} 사람들의 직장에 대한 만족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최근 신문사들의 부채 규모 현황 자료에서 밝혀졌지만, 조선일보는 국내 신문사들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자랑하고 있다. IMF 사태 덕분에, 신문사 몇 개가 지금 하고 있는 무리한 '버티기'를 끝내고 쓰러져 준다면 {조선일보}의 시장 점유율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IMF 사태로 타격받을 {조선일보}가 아닌 것이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런데 조선일보의 위기는 엉뚱한 곳에서 오고 있다. 바로 정권 교체가 문제인 것이다. 권력에의 접근 또는 권력과의 유착은 조선일보가 자랑하는 상술 가운데 하나였다. 신문 장사에서 권력은 곧 돈으로 환산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조선일보}는 창간 이래 권력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비상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돈벌이에 타격을 받는다는 이유로 김대중 정부에게 도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언가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하다. 그게 뭐냐? 그게 바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써먹을 수 있는 '염색 작전'이 아니더냐. 과연 그런 시나리오에 따라 {조선일보}가 '최장집 죽이기'를 시도한 건지 그건 나도 100% 장담할 수는 없다. 한 가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조선일보}의 일부(99%라도 일부는 일부네) 기자들은 사주의 사병화가 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한우 기자의 변신이 그걸 드라마틱하게 웅변해 주고 있다. 아니 이한우 기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빼어난 일류 학벌을 가진 그 수백 명의 사람들이 어찌 그리 한 가지 목소리, 한 가지 음색, 한 가지 억양만을 낼 수 있는지 기절초풍할 일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한국 사회는 일렬로 줄지어 가는 초등학교 학생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개탄했지만, 나는 "{조선일보}는 일렬로 줄지어 갈 뿐만 아니라 왼발 오른발에 보폭, 팔 높이까지 맞추어 가는 퍼레이드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정말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 정권이여, 더이상 {조선일보}를 처절한 고독에서 허우적거리게 방치하지 말고 따뜻하게 감싸안을지어다. DJ! 인간이란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만드는, 이한우에 의한 '최장집 죽이기'와 같은 슬프고도 잔인한 노래는 더이상 틀게끔 하지 말아 달라.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