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1월 4일 수요일 오전 11시 00분 18초 제 목(Title): 정운영/한 시혜에서 수혜로 정운영에세이] 시혜에서 수혜로 ▶프린트 하시려면 얼마 전에 나는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남북 관광교류 세미나의 진행을 맡은 적이 있다. 거기 토론자로 나온 정부 관계자 한분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총검을 맞대고 휴전선을 지키는 남한 병사의 눈에 휴전선 너머 저쪽 금강산 관광을 즐기는 남한 주민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겠느냐는 것이었다. 금강산 관광에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지만, 그런 예상 밖의 출제에 나는 적이 당황했었다. 그러나 사정은 저쪽도 같을 터이다. 두눈을 부릅뜨고 휴전선을 지키는 북한 병사의 등뒤로 떼지어 금강산을 오르는 남한 관광객의 대열이 과연 그들에게는 어떻게 비칠 것인가? *휴전선의 죄와 민족의 벌* 나는 그 곤혹스런 의문에 아무 대답도 마련하지 못했다. 다만 아주 분명한 사실 하나를 알고 있는데, 죄는 남북의 병사나 관광객 아닌 휴전선에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런데도 벌은 휴전선 대신 병사와 관광객이 받고 있다. 반세기 만에 다시 밟는 우리 국토를 멀미나는 뱃길로 찾아가는 설움이 우선 그러하다. 우리에게 휴전선은 언제나 바라보고 `모셔놓기' 위해 존재하는 성소가 되었다. 지난해 중국 땅으로 백두산에 올라서도 나는 그런 제문을 읽었다: “단군 할아버지. 버젓한 제 길을 두고 비행기 타고,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배 타고, 택시 타고, 인력거 타고, 지프차 타고 남의 땅을 돌아돌아 여기 왔습니다. 못난 후손을 크게 꾸짖으시어 이 못난 짓을 어서 그치게 하옵소서.” 그러나 벌이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남한은 지금 북한을 온통 시혜의 눈길로 대하고 있다. 외화 부족으로 산업 시설이 제대로 돌지 않고, 식량마저 모자라 외부 지원에 기대는 것이 오늘의 북한 형편이다. 거기 쌀과 소떼를 보내고, 관광 달러를 던져주는 동포의 인심은 햇볕이든 무엇이든 그대로 좋은 것이다. 여러 말이 많지만 현정부의 햇볕정책은 민족의 성적표에서 아주 좋은 점수를 받을 것으로 나는 기대한다. 그런데 과연 남한은 그저 북한을 도울 뿐이지, 북한한테서 도움받을 일은 없는가? 만일 수혜의 길이 있다면 일방적 시혜의 눈길은 거두어야 옳다. 국제통화기금의 경제 관리가 아니더라도, 값싼 임금으로 버텨온 남한의 국제경쟁력은 그리 튼튼하지 못하다. 남한 기업이 중국으로 나가고, 베트남으로 나간 것은 저임금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매력'은 북한도 떨어지지 않는다. 남한 자본주의가 북한의 저임금을 이용하는 것이 민족의 대계에 정직한 일인지는 당분간 역사의 심판의 위임하자.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 북한이 밥을 해결하고 남한이 경쟁력을 회복한다면,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더욱이 남북한의 산업구조가 경쟁적이 아니고 보완적이라는 데서,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효과는 한층 증폭될 것이 틀림없다. 북한이 남한을 도울 일은 그것만이 아니다. 다분히 역설적이지만 지역화는 세계화 시대의 유행이고, 아시아의 지역화 또한 필수 과제이다. 아시아 시장 통합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때, 남북이 한 소리를 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한민족이 뭉쳤다는 명분 이외에, 민족이 제 몫을 찾는다는 실리가 거기 담겼기 때문이다. 아시아 경제의 단결에는 중국과 일본의 협력이 필수적이고, 이때 한반도의 가교 역할은 가히 결정적이다. 이 막중한 `거사'에 북한이 등을 돌리면 한반도의 주가는 반감되고 만다. 그러므로 남한은 수혜의 상대로 북한과 손을 잡고 민족의 이익을 챙겨야 한다. 사리야 어떻든 북한이 처한 고민이 적지 않다. 그들 내부의 절박한 논쟁대로 문을 열면 파리와 모기가 들어오는 위험이 그것이다. 위의 세미나에서 북한 관광을 주선하는 일본 여행사의 교민 한분은 “특히 금강산 호텔 청년동맹원과 온정리 청년동맹원의 음료수 판매 경쟁은 대단하여 결국 양쪽에서 가지고 온 음료수를 전부 사주고, 금강산 아가씨들의 노래 서비스를 들으면서 추억을 만든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그들은 물론 그 판매 경쟁이 불러올 `결과'를 모르고, 그것이 바로 파리가 퍼뜨릴 해독의 시초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을 터이다. 그리고 판문점 커피 값이 3원(1.4달러)인데, 온정리 온천 입장료가 2원일 만큼 아직은 장사마저 서투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자본주의가 지구를 제패한 오늘, 북한이든 누구든 그 자본주의와 동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은 지금 남한 제일의 독점재벌과 거래를 트고, 서울을 넘어 워싱턴에 손을 내밀고 있다. 그 독성으로 따지면 파리 중에도 `왕파리' 급이다. 파리와 모기의 해독을 줄이는 일은 북한의 결의와 대비에 달렸지, 파리와 모기의 `개심'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런 전제 아래 나는 북한의 문이 더 열리기를 희망한다. *신화가 역사로 태어나야*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고 작가 이병주는 말했다. 나는 북한이 이제껏 외로운 저항과 투쟁으로 만들어낸 달빛의 신화를 어느 정도 짐작한다. 그러나 그 신화는 이제 햇볕의 역사로 다시 태어날 때가 되었다. 그것이 세계화의 난폭한 물결 속에 민족이 사는 길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