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1월 3일 화요일 오후 01시 27분 05초 제 목(Title): 주간조선/ 최장집의 한국전쟁관. *위의 글에서(신문사와 방송사가 붙는다면,,)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학자들이 있나요? 하고 적었었는데, 그렇지도 않군요. 아래의 퍼온 기사를 보니,* [최장집의 한국전쟁관] "정부고위직 수행에 문제있다" 가열되는 '건국사관 논쟁'…정치학계선 "터질 것이 터졌다" . ♧최장집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 위원장(고려대 정외과 교수) 의 '건국사관'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월간조선 11월호에 게재된 '최장집 교수의 충격적 한국전쟁관-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에서 비롯된 논쟁은 당사자인 최교 수의 반론, 월간조선의 재반론 등으로 이어지며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일부 언론과 정당에서는 최교수의 공직 사퇴를 주장하는가 하면, '매카시적 마녀사냥'이라고 반박하는 언론과 단체들도 나오 고 있다. 청와대와 검찰도 최근 최 교수 저작물에 대한 정밀 검토 에 들어갔다. 학계의 논란도 분분하다. 지난 10월 23일 한국정치학회가 월간 조선의 보도에 항의하는 성명을 낸 데 대해, 또다른 회원들은 "소 장학자들로 구성된 집행부의 일방적인 결정"이라며 항의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학계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도 나온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번 논란을 '21세기를 앞둔 한국사 회의 이념지도'를 정리하는 적극적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다. ● 한국전쟁은 민족해방 전쟁인가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대목은 최 교수가 한국전쟁에 대해 '민 족해방전쟁'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다. 만약 최 교수가 한국전쟁을 민족해방전쟁으로 보고 있다면 이는 북한의 공식 통사 인 '조선전사', 한국전쟁사인 '정의의 조국해방전쟁사' 등이 취하 고 있는 입장 그대로다. 월간조선 11월호는 "최 교수가 96년 발간된 저서 '한국 민주주 의의 조건과 전망'에서 '첫번째 시기(6월 25일∼27일, 발발∼미군 참전 결정)에서의 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었다'라고 썼다"고 보도 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반론문에서 "'북한 지도부가 기본적으 로 믿었던 바의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원문 중에서 월간조선이 '북 한 지도부가 기본적으로 믿었던 바의'라는 구절을 들어냄으로써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90년에 나온 편저 '한국전쟁 연구'에 실린 논문 '한국전쟁에 대한 하나의 이해'에서 "첫번째 시기의 전쟁은 기본적으로 민족해방전쟁이었던 반면, 두번째 시기(미군 참전에서 북진까지)부터 전쟁은 미국이 전면에 나서 한국의 혁명적 민족주 의 세력과 싸우는 전쟁으로 변질된다"라고 표현했다. 미군 참전 이후의 전쟁 국면에 대해서도 미군의 대립 세력을 '한국의 혁명적 민족주의 세력'이라고 표현함으로써,결국 '북한=한국의 혁명적 민 족주의 세력'이라는 등식을 가능케 하고 있다. 최 교수는 또 97년 4월 8쇄가 나온 '해방전후사의 인식 4'에 실린 논문(정해구씨와 공동 저작)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에 서 1945년해방 이후 전쟁이 끝난 53년까지의 8년간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역사의 과정을 기본적으로 추동했던 대립축은 무엇인가?그 것은 계급적·민족적 견지에서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려 했던 한국 민중들을 한 축으로 하고, 새로운 세계질서 재편 과정에서 한반도 에서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해를 관철시키려 했던 미국의 이해를 또 다른 한 축으로 하는 대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역사 인식에서는 이승만 정부와 남한 내 우파 민족주의 세력은 흔적을 찾기 힘들다. 이에 대해 숭실대 정외과 전득주 교수는 "한국전쟁이 미국 대 한국의 혁명적 민족주의 세력과 싸우는 전쟁으로 변질된다고 쓴 부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그러면 민족국가를 세우려고 노력했던 이승만 조병옥 등은 무엇이란 말이냐"고 말했다. 단국대 정외과 정용석 교수는 "학자가 진보적 사관을 취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문맥과 구사한 용어들을 볼 때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전사 분야를 담당하는 한 연구원도 "최 교수가 민족해방전쟁이라고 표현했느냐 하는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있지만, '미국 대 한국의 혁명적 민족주의 세력이 싸우는 전쟁'이라고 표현한 부분, 다시 말해 북한을 혁명적 민족 주의 세력과 동일시하고 남한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하수인 처럼 규정한 부분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전쟁=민족해방전쟁'이라는 시각은 80년대 후반∼90 년대 초반만해도 소장 학자들을 중심으로 학계 일각을 풍미했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던 이른바 '민중사관' 과도 뗄수 없는 관계이며, 미국 학자 브루스 커밍스로 대표되는 '수정주의사관'과도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시각은 80년대 후반 이후 구 소련 및 동구 사회 주의권의 몰락 이후 점차 사라져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됐다. 한국전쟁의 기원과 관련해서도 '김일성의 침략 전쟁'이라는 쪽 으로 학계의 합의가 이뤄져 있는 상황이다. 특히 96년 박명림(고 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실장)씨의 고려대 정치학박사 학 위 논문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은 이 분야 연구에 한 획을 그 은 것으로 학계의 평가를 받았다. 박 씨는 이 논문에서 엄청난 양 의 1차 사료 실사를 통해 한국전쟁이 남북간 내전, 동서 진영간 국제전이라는 성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론 공산국가인 북한에 의한 침략 전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박 씨의 이런 연구 결과는 국제적으로도 공인받았다. 성균관대 정치학과의 한 교수는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한국 사회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는데, 유독 이념 분야는 통과 절차없이 그냥 넘어왔다는 느낌이 강하다"며 "차제에 21세기로 가는 한국사 회의 이념 구조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왜 최장집 교수인가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보는 학자는 90년대 초반까 지 적지 않았다. 이제는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런 관점은 살 아있다. 그렇다면 왜 최장집 교수가 문제인가. 이는 최 교수가 단 순히 학자가 아니라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 자문 정 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정책기획위는 '국가의 중장기 발전 목표와 정책 설정에 관한 사항, 국가 주요 현안에 관한 사항, 국가 주요 정책 평가에 관한 사항'에 관해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정책 판단 이나 결정을 하는 기구는 아니지만, 국가의 주요 정책 포스트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현재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제 2 건국운동'에 관 한 정책적 입안도 정책기획위에서 이뤄지고 있다. 최 위원장은 바 로 이 위원회의 수장이다.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정부 고위직을 맡는 인사의 경우 의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개인신상이나 사상문제 등을 검증받으며 언론도 사전 검증 역할을 맡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정치학자는 "진보냐, 보수냐가 문제가 아니 라 남북의 군사적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국가 안보정 책 분야는 한치의 틈도 허용되서는 안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며 "최 교수가 한국전쟁을 정말 민족해방전쟁으로 보고 있다면 정부 고위직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숭실대 정외과 전득주 교수도 "우리 건국정부를 사실상 미국의 하수인으로 보는 사람이 정부직을 수행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 했다. 한편 단국대 정용석 교수는 "최 교수가 맡고있는 분야가 북한 관계, 통일관계가 아니므로 큰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다 만 정책기획위 위원장에 많은 사람들중에 굳이 최 교수를 기용했 다는 것은 현 정부가 갖고 있는 현대사 인식의 진보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신정록주간부기자 : jrshin@chosun.com)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