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1월 1일 일요일 오전 01시 19분 08초 제 목(Title): 황태연/신동아 서유럽의 신중도좌파 ○ 해외 프리즘 ● 서유럽 新중도좌파 ‘제3의 길’은 어디로 ◇영국총리 토니 블레어가 제창한 ‘제3의 길’. 슈뢰더가 이끄는 독일 사민당의 총선 승리 등으로 서유럽의 신중도좌파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신중도좌파가 득세하게 된 배경과 전망을 살펴본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정치학〉 독일 사민당(SPD) 이 기민당(CDU)의 헬무트 콜 장기집권의 막을 내리고 정권교체를 달성함으로써 바야흐로 스페인을 제외한 서유럽과 북미(北美)의 모든 국가에서 좌파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미국의 민주당 정부, 이탈리아의 민주좌익당을 맹주로 하는 「올리브동맹」 연립정부, 프랑스와 그리스의 사회당 정부, 영국의 노동당 정부, 네덜란드·스웨덴·노르웨이의 사민당 정부, 독일의 적록(赤綠) 연립정부 등이 그것이다. 서구 사회복지국가의 위기와 소련·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으로 인해 좌익이념 일반이 급격한 퇴조를 겪은 후 새로 형성되기 시작한 이러한 중도좌파 이념의 확산과 집권 현상은 많은 이들에게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새로운 중도좌파 이념의 세계적 확산은 각국의 특수한 사정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시장, 남북문제 등 좌우파 간의 굵직한 몇 가지 역사적 논쟁과 오해를 종식시킨 세계적 격변(激變)과 진보(進步)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전에도 세계의 변화과정 속에서 좌우정당이 서로 영향을 끼치며 변해온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를 앞두고 벌어진 좌파의 변화는 전대미문의 획기적인 것이다. 이 변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좌우파의 이념이 체제원리에 있어 서로 아주 가까이 접근하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중도좌익의 이념은 기존 좌우익 패러다임을 초월하는 실용주의적 절충이념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 19세기, 20세기의 낡은 정치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새로운 중도좌파 이념에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망은 세계의 격변과 더불어 새로운 중도세력의 이념적 강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낡은 패러다임의 몰인식에서 나온 것 같아 보인다. 새로운 중도좌파 이념은 학술적 분류로는 막스 베버 식의 사회자유주의(social liberalism)에 속한다. 새로운 중도세력은 우파의 신(新)자유주의적 방임형 시장이념에는 반대하지만, 시장이념과 「시장복지」의 기능을 유보 없이 수락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규제완화 및 자유방임 정책만으로 시장의 역동성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질서정책」으로 시장질서를 보호해야만 경쟁이 유효한 시장이 창출되고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자들과 다르다. 또한 이들은 신자유주의자들과 달리 시장에만 강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쟁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패자문제와 시장이 메우지 못하는 복지공백을 사회복지 정책으로 보충하는 데에도 강세를 둔다. 사회보장은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와 마찬가지로 체제요소이기 때문이다. 복지정책에 있어서 이전과 다른 점은 복지 시정(施政)을 반드시 시장친화적인 보완(補完)기능으로 한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시장을 불신하면서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으로 시장복지 기능을 대체하려는 경향을 보였던 이전 좌파 노선과 분명한 차이점이다. 이 점에서 새로운 중도좌파 세력의 신중도(新中途) 노선은 전후 좌우정당들이 그랬듯이 득표의 용이성 때문에 중도로 수렴하는 이전의 당리당략적 경향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서구 좌파정당의 이러한 원칙적 변화의 배경에는 그간의 급격한 세계변화가 가로놓여 있다. 민주화의 세계적 확산과 탈냉전 세기 전환을 앞두고 최근 20년 동안 세계는 여러 방면에서 급격히 변했다. 세계는 이제 19세기식 사고나 20세기식 개념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분야에서 일어나는 세계적 변화는 민주화와 탈냉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중요한 세계적인 신조류는 민주화다. 근대 인류역사상 지금까지 단 한 시기도 민주주의가 세계적 흐름으로 관철된 적이 없었다. 인권을 유린하는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즘, 군국주의, 개인독재 등 온갖 유형의 권위주의가 늘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류역사상 최초로 인권과 민주주의가 인류의 보편적 규범과 가치로서 세계적으로 관철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전후에도 서유럽에 존재하던 권위주의 체제(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가 1974년에 종식됨으로써 서유럽이 전체적으로 민주화했다. 1980년대에는 아프리카에서 만델라가 승리하고 소련 및 동유럽의 공산체제가 붕괴하고 이 지역에 서구식 민주제도가 도입되었다. 이와 함께 동유럽 및 아프리카에서 친소적(親蘇的) 일당독재 체제가 전반적으로 해체되는 한편, 중남미에는 군사정권이 붕괴되고 민간정부가 들어섰다. 이런 세계적 흐름 속에서 필리핀, 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지의 아시아 권위주의도 해체과정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근본적 불화관계에 대한 좌파의 이념적 확신이 근거를 잃게 되었다. 이전에 대부분의 좌파들은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의 「독재」에 기반하고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가능한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취약한 「형식적」 민주주의이고, 이 형식적 민주주의는 자본이 위기에 빠지면 언제든 취소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진정한 「실질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만 가능하다는 정치논리를 공유해왔다. 이 교조적 확신으로 인해 서구의 좌파정당들은 개도국의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관심을 보인 반면,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도의적 관심 이상을 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좌파노선에 공통된 이 패러다임은 자본주의 발전수준의 고하(高下)를 불문하고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관철됨에 따라 낡은 경제주의적 사고의 산물임이 다시 한 번 입증된 것이다. 이로 인해 좌파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었다. 이제는 새로운 중도좌익의 이념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여부(與否)와 발전수준의 고하를 불문하고 관철되어야 할 보편적 규범가치로 자리매김되었다. 둘째는 탈냉전(脫冷戰) 시대의 개막이다.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고 냉전적 체제대립으로 분단됐던 독일과 예멘이 통일됐다.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좌파로 하여금 동시에 두 가지 도전에 직면케 했다. 하나는,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세계적으로 우파의 강화를 초래했고 이로써 좌파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서구 좌파가 자신들을 동구 공산당과 결코 동일시한 적이 없었을지라도 동구의 공산당도 범좌파(汎左派)로 분류돼왔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권이 서구 우파에게 항구적으로 가하던 체제압박이 소멸하자 인류를 사회적으로 진보시켜야 한다는 짐을 서구 좌파가 단독으로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 초래됐다. 서유럽 좌파의 노선 수정 이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해 서구 좌파는 동구 공산당의 실패를 분석하며 우파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고 세기전환기의 기술변동과 세계화의 추세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서구 좌파는 공산당의 시장부정(市場否定) 이념과 근접해 있던 시장불신 자세를 원칙적인 시장긍정(市場肯定)으로 교정하고, 공산당과 공유하고 있던 각종 교조적 이념들(계급주의, 육체노동자 중심주의, 노조 종속성 및 노사관계 우선주의, 국유화 노선 등)을 털어버리기 시작했다. 이 이념들은 19세기와 20세기의 낡은 생산력과 경직된 계급구조에 구속된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로 변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서구 좌파정당들은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 서구 보수당들이 더욱 세차게 추진하고 있던 개혁조치의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우파가 추진하는 시장기능의 복원은 기본방향에서 옳았으나 그 신자유주의적 방법에는 문제가 있음을 알고 대체방법을 강구했다. 자유방임형 시장이 경쟁이 유효한 시장을 낳는 것이 아니라 독과점과 시장실패를 막는 「사회적 시장경제」만이 유효경쟁 시장을 만들 수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사회복지체제도 자본주의에 착근(着根)된 하나의 독자적인 「체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미 정착한 사회복지체제를 부분적으로 축소하거나 합리화할 수는 있으나, 이것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부정하거나 삭감하면 경제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국민의 생활수준이 떨어져 이를 추진하는 정권마저 붕괴한다. 서구 보수당들은 바로 이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시장의 부활과 사회복지의 과격한 삭감을 추진하던 신자유주의적 보수당 정부들이 경제개혁이라는 긍정적 성과를 내고서도 국민의 반발로 모두 권좌에서 밀려난 반면, 좌파정당들은 이 틈을 비집고 이념을 재정비하여 서구 전지역에서 다시 득세한 것이다. 좌우파가 모두 사회복지의 이념을 좌파의 단골 메뉴로 오해했지만, 실은 좌우파가 공히 수호해야 할 「체제문제」였던 것이다. 되돌아보면, 사회복지 문제는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이룬 공화국 이념에서도 핵심적인 사항이었다. 프랑스혁명 이념의 대표적 기안자인 콩도르세의 1793년작 「인간정신의 진보 기안(起案)」에 의하면 근대 시민공화국의 미래적 사명은 평등의 증진, 즉 불평등의 해소다. 불평등의 해소는 정치적 자유의 이념과 직결된 정치적 불평등의 해소만이 아니라 경제사회적 불평등의 해소도 내포한다. 경제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부, 능력, 지식, 정보의 계급적 차이로 말미암아 개인들의 실질적 자유와 민주주의가 침해되기 때문이다. 콩도르세는 국가간 불평등의 해소, 시민공화국의 3대 미래 과업을 국민 내부의 불평등 해소, 인간의 정신적 완벽화로 제안하면서, 제거돼야 할 불평등 항목에 흑인차별을 포함한 「인종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을 집어넣고 있다. 콩도르세는 부가 완전히 평등해져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상속에 대해서는 누진세를 적용하고, 궁극적으로 대자본가가 산업적 진보와 상업활동을 독점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과도한 「부(富)의 불평등」을 없앨 것을 기안하고 있다. 또한 우연한 사고, 사망, 조건의 변화로 인해 생겨나는 「처지의 불평등」은 세세한 사회보장과 사회복지 정책으로 대응하고 「교육의 불평등」에는 의무교육 정책으로 대응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근대 민주주의 창시자의 이러한 기획을 성찰하면, 그간 좌파의 독점적 정책으로 오해되어온 대부분의 정책은 실은 민주공화정의 내재적 과업인 셈이다. 사회보장체제는 민주적 정치체제 및 시장경제체제와 더불어 근대국가의 필수 요소인 것이다. 경제분야의 세계적 변화 경제분야의 세계적 변화는 외연적 성장체제에서 내포적 성장체제로 이행, 제국주의 시대의 종식, 시장논리의 세계적 복권이다. 첫째로 중요한 변화는 외연적 성장체제에서 내포적 성장체제로 이행이다. 이것은 공해다발성 공업중심 산업에서 환경친화적 지식·정보통신·문화산업 중심의 지식기반 산업으로, 하드웨어와 근력(筋力) 중심 경제에서 소프트웨어와 두뇌 중심 경제로, 비교적 고정된 「자연적 비교우위」 경제에서 「인공적 비교우위」 경제로 이행함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유물론의 철학적 교리에 따라 사회발전에 있어서 국가나 문화보다 경제적 변화를 중시하고, 경제에서 주체보다 객체를, 따라서 노동력보다 생산수단을, 두뇌노동자보다 육체노동자를 중심에 놓고, 정신적 생산보다 물질적 생산을, 정치·사회·문화적 관계보다 경제적 「계급관계」를 근본으로 강조하는 좌파의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런 이념적 혼돈의 결과, 좌파는 자원기반, 공업중심 산업구조에서 유래하는 모든 낡은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새 노선으로 무장하여 21세기적 진보 전망을 찾았다. 그것은 생산체제의 21세기적 변혁을 추진하면서 노동자대중과 동시에 계급개념으로 포착되지 않는 모든 사회적 약자집단과 소수집단들(저소득층 및 실업자, 여성, 노인, 청소년, 소외지역민, 소수인종, 소수민족, 소수종교, 외국인, 자활불능자, 장애인, 환자, 망명자, 난민, 각종 한계집단 및 이재민 등)의 생활을 배려하는 새로운 「국민정당」으로 나아가는 이른바 「제3의 길」이다. 경제분야에서 두 번째 변화는 제국주의시대의 종식이다. 정신 위주의 내포적 성장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자원기반 경제는 퇴조하고 세계무역의 대부분이 산업국가끼리의 역내무역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가령 독일의 경우, 대외무역에서 남북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제로에 접근했다. 선진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제 후진국은 경영할 가치가 없어졌다. 이와 함께 신식민주의적 제국주의가 종식된 것이다. 이로 인해 자본의 세계적 이동에 대한 개도국의 저항도 거의 소멸했고, 일부 개도국 좌파들이 주장하던 반제(反帝)민족해방 노선도 시대착오로 전락했다. 이 새로운 추세에 맞춰 서구의 좌파는 이른바 남북문제에 대한 전통적 시각을 교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국내자본의 해외진출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 발전에 기여하는 긍정적 힘이다. 이에 따라 남반구 개도국들에 대한 개발원조의 성격도 재정립되었다. 개발원조는 이제 개도국에 대한 선진국의 수탈을 완화하는 배상성(賠償性) 원조가 아니라 인류의 공동발전과 지구환경 보존을 위한 인류애적 원조로 자리매김된다. 세 번째 중요한 변화는 시장이념의 세계적 부활이다. 전통적 좌파 정부는 시장메커니즘을 불신했기 때문에 시장의 역동성을 제약할 정도로 사회복지 국가를 과대 성장시켰으나, 우파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위기에 빠진 사회복지 국가를 개혁하여 시장친화적으로 재조정했다. 또 반시장적(反市場的)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라는 세계적 격변과 함께 시장을 둘러싼 좌우파간의 장구한 논쟁도 좌파의 역사적 패배로 종결되었다. 이후 서구 좌파는 시장 이념을 유보 없이 수용했다. 이와 함께 과대성장한 국가의 간소화 및 규제완화와 국영기업의 민영화 노선은 좌파정부에 의해서도 더욱 강하게 시행된다. 다만 우파가 추구하는 「노동자에게 강한 정부」는 노동자에 대해 친화적인 방향으로 재조정된다. 시장경쟁은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극대화하여 효율을 증대하는 메커니즘일 뿐만 아니라 「평등과 정의」도 증진하는 메커니즘으로 재인식되었다. 『시장은 공급자들끼리의 최적경쟁을 창출하여 최대다수에 최대의 복지를 가져다준다』는 것이 시장복지의 이념이다. 불평등의 원인은 시장메커니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소유와 무소유의 구조적 조건에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도 『자본론』 1권에서 시장은 「자유와 평등」이 지배하는 「천부인권(天賦人權)의 낙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점에서 전통 좌파의 시장불신 및 시장부정론은 오랜 이론적 오해와 무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앞서 시사했듯이 좌파와 우파는 이 유효경쟁의 시장을 창출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우파는 규제완화를 통한 자유방임을 시장창출의 길로 간주하지만, 중도좌파는 「시장에 반하는」 규제와 간섭에 반대하는 대신 「시장을 위한」 규제를 필수적인 것으로 보는 「질서자유주의」를 고수한다. 따라서 자유방임으로 시장이 왜곡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시장지배와 불공정거래 방지 및 경제주체들 간의 조화 창출을 통한 「경제의 민주화」가 질서자유주의적 정책의 핵심내용들이다. 서구 국가들의 헌법은 대체로 이런 견해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것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질서자유주의를 채택한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의 기본취지이기도 하다. 시장논리의 복권과 함께 자유무역에 입각한 세계시장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관철되었다. 이제 경제적 국경이 단계적으로 소멸되고, 선진국의 자본투자에 대한 반제국주의적 저항시대에서 세계적 자본유치 경쟁시대로 전환되었다. 「유목 사회」와 환경문제 사회분야에서 나타난 세계적 변화는 고용관계의 유동화와 환경문제의 지구화다. 첫째 변화는 소프트웨어 기술의 투입과 함께 고용관계가 유동화해 「유목적(遊牧的) 사회」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가 한 직장에 오래 정착할 수도, 필요도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미래 사회는 근로자가 중단기적 근로계약의 체결과 해소를 통해 여기저기 자유로이 떠도는 「유목 사회」인 것이다. 이로 인해 종신고용과 노동조합이 퇴조하는 반면, 직업단체의 역할이 증대한다. 취업구조는 블루칼라가 감소하고 화이트칼라가 지속적으로 증대하는 변화가 일고 있다. 이로 인해 중단기적으로는 기술 패러다임의 교체로 인한 구기술(舊技術) 보유자들의 퇴출로 대량실업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유동화 속에서도 고용이 안정될 전망이다. 고기술·고학력 시대의 개막이 빚은 높은 교육비 부담과 이에 따른 출산율 감소로 말미암아 한 세대 뒤의 인구는 줄어든다. 이로써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은 장기적으로 서로 조응할 수 있다. 따라서 좌파는 19세기적 계급관계에서 형성된 낡은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노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유연한 노동정책, 종신고용을 추구하던 경직된 고용안정 정책에서 유동적인 신(新)고용관계 창출 정책, 새로운 교육 및 인구정책, 중단기적인 대량실업에 대처하는 복지체제의 재조정, 직업단체에 대한 새로운 입장정리 등 일련의 사회정책을 새로 마련하게 된다. 둘째로 중요한 변화는 환경문제의 지구화다. 환경문제가 외교문제가 돼 환경갈등이 증대하는 반면, 국제적 환경협력도 증대하고 있다. 또한 리우 체제, 몬트리올 체제 등 세계적 환경레짐(regime)이 등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안보개념은 경제적 안보문제 외에 환경안보까지 고려하는 「포괄적 안보」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서구 좌파는 일찍이 녹색당의 환경이념을 적극 수용하여 경제적 남북문제보다 환경적 남북문제를 중시하는 입장을 정립한다. 블레어와 슈뢰더의 협조 서구 중도좌파의 이념적 기수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다. 토니 블레어는 기존의 좌우 근대화 노선을 비판하며 민주주의, 인권, 환경, 개인적 정체성(正體性) 발전을 강조하는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신이론을 수용해 「제3의 길」을 내걸고 있다. 블레어는 1998년 9월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과 「제3의 길」에 관해 토론했고, 독일의 9월 총선에도 깊이 개입했다. 블레어는 슈뢰더의 당선을 지원하기 위해 두 명의 선거전문가를 독일로 급파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이번 독일 총선에서 슈뢰더가 내건 「새로운 중도(Die Neue Mitte)」라는 선거 슬로건은 바로 블레어의 입김을 느끼게 해 준다. 물론 슈뢰더가 이 새로운 중도 이념 덕택에 승리한 것인지, 기민당의 16년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의 염증 덕택에 승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블레어는 계급적 당파성을 초월하는 공동체(Community), 개인의 기회(Opportunity)와 책임(Responsibility), 동등가치(Equal worth)를 중시하는 핵심 이념으로 새로운 중도좌익을 표방하며 서구에서 중도좌익 이념을 확산시키기 위해 국제주의적 운동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독일 사민당에 대한 영국 노동당의 지원은 그 자체가 영·독 관계사에서 전대미문의 일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앞으로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블레어가 영국 노동당과 미국 민주당의 전통적인 영·미 우호관계에 독일 사민당을 가담시키는 데 성공하면, 영·미·독 중도좌파 집권당의 3각 동반체제는 이념적인 측면에서 충분히 서구 좌파진영 전체에 새로운 중도이념을 각인시킬 국제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유럽에서 예외적으로 블레어의 중도 이념에 반대하는 집권 좌익정당은 프랑스 사회당이다. 이것은 프랑스의 특수 사정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프랑스는 서구에서 가장 큰 공산당을 가진 나라다. 따라서 사회당은 중도화를 선언할 경우 지지대중 일부를 공산당에 빼앗길 수밖에 없다. 이런 특수 사정 때문에 조스팽 총리는 블레어리즘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다. 현재 프랑스 사회당은 서구에서 가장 좌익적인 진보정당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세계의 격변은 머지않아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적 정체(停滯)상태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블레어가 클린턴과 슈뢰더를 이념적 동반자로 묶어낼 수 있는 현재 상황에 새로운 중도좌파 이념은 향후 국제 외교에 비상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국제적 흐름은 민족적 특수성이나 민족국가적 폐쇄성보다는 지구공동체성, 민주주의, 세계시민적 인권이 더욱 강조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미 블레어는 IMF를 비롯한 세계기구들에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 위기로 촉발된 세계불황 징후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클린턴은 블레어의 협조하에 G7 회의를 소집하고 금리인하를 반대해온 독일 연방은행을 설득해 금리인하를 유도하고 있다. 새로운 중도좌파 지도자들의 국제적 개혁 움직임들은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와 아시아 각국에 유리한 국제적 여건을 만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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