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설운도) 날 짜 (Date): 1998년 10월 11일 일요일 오후 03시 00분 24초 제 목(Title): 퍼/인물 대통령께 드리는 고언 김대중 대통령께 드리는 고언 /익명의 공무원 이 글은 한 공무원이 지난 6월 말에 쓴 것입니다. 그는 이 글을 진정 나라와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하는 애절한 마음으로 썼지만 감히 공무원 신분으로 이 글을 실명으로 발표할 수가 없어 묵혀 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익명 발표가 가능하다면' 하는 심정으로 [인물과 사상] 에 보내 주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익명이니 싣지 말아야 할까요? 아니면 공무원 신분으로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고언을 하기 어려운 우리 풍토를 감안해 익명이라도 실어야 할까요? [인물과 사상] 의 판단은 후자였습니다만, 독자 여러분들께선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인물과 사상] 이 이 글의 내용에 100%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이 글이 건국 이래 최초의 수평적·평화적 정권 교체라고 하는 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그렇게 탄생한 대통령의 힘을 좀 과대평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리고 [조선일보] 에 대한 비판이 너무 혹독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견해 차라고 생각하며 이 글이 김 대통령에게 매우 유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잡지의 독자입니다만, 비서관 선에서 커트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비서관님! 꼭 대통령께 이 글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정 애정을 갖고 말씀드립니다 우선 고난의 구제 금융의 큰 고비를 무리 없이 잘 넘기신 데 대해 경하를 드립니다. 저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서른이 갓 넘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글쓰기에 앞서 제가 어쭙잖은 한 말씀을 드릴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통령의 통치와 덕화가 나라 곳곳, 가가호호에 미치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한민국의 국민된 자 누구라도 자격이 있지 않나 생각되는군요. 제가 감청고소원(敢請固所願)하는 바를 일방적으로 말씀드리는 대신 그에 대한 판단의 몫은 전적으로 대통령께 드리겠습니다. 다만 말씀드리는 저와 들으시는 분의 견해와 판단이 다른 경우 일단 실천의 문제는 접어두고 옳고 그름을 시비할 심판이 필요할 것 같아, [인물과 사상] 이라는 아직은 걸음마를 걷는 잡지의 독자들을 초대했습니다. 제가 비공개적으로 독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현실적인 힘이 있었더라면, 굳이 이러지 않아도 좋을 텐데 그 점이 아쉽습니다. 혼자 읽으셔도 좋을 일종의 편지를 공개적으로 띄우는 저의 무례를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기를 빌며 초두에 서합니다. 본론에 앞서 먼저 저는 지난 대선 때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주변에 지지를 부탁하는 불법 선거운동을 한 적도 있고, 당선 후엔 논공행상(?) 차원에서 그들에게 제 주머니를 털어 해물탕을 사 주며 들뜬 기분에 거나하게 술에 취한 적이 있기도 한 지지자임을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너절한 과거를 입에 올리는 건 대통령께 대한 어떠한 개인적 혐의가 없음을 밝히려 함입니다. 제 말씀의 쓰다 달다와 관계없이 거기엔 제 충심이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몇 번씩 마음만 먹다 그만둔 이 글을 쓰려고 결심했을 때는 꼭 이래야 하는지 그 당위성 때문에 상당히 망설였습니다. 이 사회엔 제가 아니어도 천성적으로 대통령을 못 물어뜯어 안달인 세력과 부류가 너무 많이 있음을 잘 아는 까닭입니다. 무차별적인 그들의 공세에 저까지 가세를 하자니 한 구석이 썩 개운치가 않았던 거지요. 그러나 진지한 고민 끝에 저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몫과 제가 말하는 몫은 본질과 표피 모두 다를 뿐 아니라 그런 두려움은 대통령이나 지지 세력들의 바램과는 영 다르게 변할 수 있는 나라꼴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누구든 훼방꾼의 판 깨기가 아닌 진정 애정어린 충고를 보내야 할 필요를 느낀 것입니다. 이 점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취임한 지 이제 넉 달이 채 안 된 지금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참 다양합니다. 지지했던 사람들의 다수는 후한 점수를 매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그만 것도 부풀려 깎아내리려 혈안입니다. 그러니 균형이 잡힌 평가를 듣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저로 보면 만족스런 면도 있고 아주 못 마땅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기상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고 봅니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경구는 아마도 `욕속부달(欲速不達:뭐든 빨리 이루고 싶어하면 그러지 못한다)'이 아닐는지요. 그래서 저는 여직 세간의 평가는 제쳐두고 제가 문제점으로 느끼는 바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개인에 따라 가치관이 다르지만 이대로 넘어가선 큰일나겠다고 여겨지는 것들만 뽑아서 말입니다. `승리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인사 첫째, 인사 문제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그 말 많은 바가 본질에서 비껴나도 한참을 비껴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주로 지역 편중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지금 정도면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논리대로라면 늘 해먹던 지역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야 된다는 것이니 그럴 수는 없지요. 그럼에도 저 역시 결론적으로 얘기해서 인사 문제 이대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바로 너무 낡고 때묻은 사람들을 데려다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로 공동 정권의 한 축인 정당의 몫과 지역 안배 차원에서 배정한 자리에 선 사람들이 그래 보입니다. 그런 그들의 과거를 보면 5·6공을 기본으로 거치면서 출세한 사람들이 많아요. 듣자니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서 그런다는데 이건 심장에 땀 날 만큼 심각한 문제입니다. 해방 후 친일파들을 기용할 때 많이 듣던 논리와 다르지 않거든요. IMF라는 상황의 긴박성을 핑계삼으시겠지만 굽이치는 역사에는 그보다 더한 소용돌이가 훨씬 많습니다. 급하다고 자꾸 진통제만 쓰면 병은 낫지 않습니다. 능력만 있으면 데려다 쓰는 용인술을 너무 과신하시는 게 아닌가하는 염려가 듭니다. 인간이란 늘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고, 히틀러 같은 악당도 어느 날 딴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몸에 배인 인간의 타성이란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굴러먹던 버릇은 어느 한 순간의 결심으로 뭉개 버리기엔 너무 끈질긴 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평가할 때 그의 꾸준한 과거 역정을 고루 살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대통령의 인사 방식에는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군사 독재 시절의 불의한 정치 사회적 현실에도 일체의 저항 없이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 살아 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과대평가했는지 여부는 모르나 지나치게 중용하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건 대통령께서 이루겠다고 벼르는 올바른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와도 한참 먼 얘기입니다. 불의한 사회의 현실을 바로잡는 데 우선 순위를 두고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희생했던 사람들에게 더 큰 기회를 주는 것이 역사의 공도가 아닐까요. 만약 대통령께서 지난 대선에서도 당선되지 않았다면 지금 심정이 어떨까요. 워낙 마음이 닦인 탓에 담담할지도 모르지만 천도와 인심의 무정함을 원망하지는 않을는지요. 더러 사람들은 능력이란 것이 세상을 이끈다고 믿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세상에 기여하는 바도 크지만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망쳐 놓는 바도 역시 큽니다. 그렇게 망쳐 놓은 세상을 바로잡는 존재는 의분으로 일어서는 지사들이 아니겠습니까. 대통령께서도 잘 아시는 조선조의 선비들을 한 번 볼까요. 조선이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5백 년이나 나라를 유지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올곧은 선비들이 있던 때문이었다고 보는데요. 그런 지사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 사회의 존경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사회에 미치는 본보기가 너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 집권을 하게 된 데는, 독재와 자본의 엄청난 횡포를 맨몸 하나로 막아내려는 무모한 일에 인생을 걸다시피 한 그들의 희생이 숨어 있습니다. 사회는 당연히 그런 지사들에게 설사 서툴지라도 일할 자리를 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항상 쫓겨다니고 관청이라면 끌려가 박대밖에 당한 게 없는 그들이, 언제 눈 뜨고 밥만 먹으면 해도 수년씩은 일삼아 해야 하는 경제나 행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그들을 무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노력 덕에 좀더 중요한 세상의 기본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부도덕한 사람들이 높은 곳에 올라 떵떵거린다면 그건 희망이 죽은 사회입니다. 저는 우리의 비틀린 현대사와 국민들의 전도된 가치관은 해방 후 친일파 집권과 독립 지사들의 몰락 때문이라고 봅니다. 미 군정의 점령 정책 탓도 있지만, 우리가 왜곡된 역사의 청산을 외면해 버린 끝에 지금과 같은 사회가 되어 버린 거지요. 친일파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권세와 물력에 힘입어 배우고 관청에 자리잡은 덕에 해방 후 공간에서도 여전히 행세를 한 반면, 만주의 거친 산야에서 추위와 굶주림 속에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싸운 독립 지사의 자손들은 가진 거 없고 배운 거 없다는 이유로 외면당해 결국 농투성이가 되어 버렸잖아요. 해방 공간에서 역사의 보상이란 측면에서 독립 지사들의 자손들이 못 배우고 부족했다면, 한 세대가 걸리더라도 뒤바뀐 위치가 제 자리를 잡도록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그들에게 우선적인 혜택을 주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않았지요. 그래서 독립 운동가 후손들은 있는 재산까지 털어 가며 일생을 희생한 부모를 둔 덕에 한 손엔 흔해 빠진 훈장쪼가리를 또 한 손엔 천형과도 같은 가난을, 나라를 판 돈이라도 호의호식하며 자식 교육 튼튼히 시킨 부모를 둔 덕에 친일파 자손들은 재산 한 뼘 몰수당하지 않고 부와 권세까지 틀어쥐었지요. 그런 사회에서 어느 누가 올바른 일을 하려고 들겠습니까. 옳은 일을 하면, 할 때는 위험이 따라도 그게 이루어지면 보상이 따라야 하는데, 세상이 바뀌어도 손해만 본다면 그런 일을 어느 제 정신 가진 사람이 하느냐는 말입니다. 나쁘다는 도박도 그런 측면에서는 아주 충실합니다. 거기에서 우리 국민의 기회주의적인 근성이 뿌리내리게 된 것 아닐까요. 대통령의 인사 방식을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번 지자체 선거의 서울 시장과 경기 지사 후보만 봐도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 모양새가 보통 우습지가 않아요. 그들이 특별히 부도덕하거나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주장하듯 그들이 가지는 상징성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지금의 나라꼴을 만든 앞 공화국의 마지막 총리와 경제 부총리 아닙니까. 정말 여당이나 재야에 그렇게 인물이 없습니까. 지금껏 허수아비들만 데리고 정치하시지 않았을 텐데, 정작 맡겨야 할 기회를 밑도 끝도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면 그들은 뭡니까. 임명직이야 눈치 볼 게 많지만 선출직은 꼭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이번 선거가 인물 본위가 아닌 정당의 평가임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압니다. 후보에 별 관계없이 이길 곳 질 곳이 뻔하단 얘긴데 꼭 그런 인물들을 내세워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대통령께서도 설마 강준만 교수가 말하는 `승리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건 아닌지요. 가치 판단은 없고 능력만 판치는 세상은 여러 모로 불행해집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지만 뒤볼 때 고생이 심합니다. 그렇게 데려다 쓴 사람들, 나중에 다시 불의한 권력이 들어서면 그 밑에서 권력자들 비위 맞춰 가며 출세하려고 듭니다. 그런 사람들이 제일 신경쓰는 건 윗분의 의중이라 옳지 않은 일도 얼마든지 해 냅니다. 그런 걸 능력이라고 한다면 카멜레온도 국무총리 정도는 너끈히 해 낼 수 있습니다. 제발 그런 점에 유의해서 소신 있게 살아 온 사람들 좀 쓰시면 어떨까 하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기득권을 포기하는 희생의 미학 둘째, 입장을 바꾸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난 뒤 여야의 입장이 뒤바뀐 게 참 많더군요. 특히 방송법 문제나 특별 검사제 같은 문제들 말입니다. 여당할 땐 기득권 지키는 데만 몰두하던 현 야당이 입장 바꿔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마찬가지로 이젠 몰수한 적군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여당의 입장도 모양 사납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특별 검사제 도입과 관련되어 180도 입장이 바뀐 박상천 법무장관과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의 모습이 나오던데 이런 코미디가 없어요. 일부러 짠 것도 아닐 텐데 왜들 그러는지. 이런 게 말하자면 입장 바꾸기의 대표적인 예인데 그래선 안 됩니다. 지역 구도상 지금 여당이 천 년 만 년 여당이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정권 교체라는 구호가 다음 대선의 최대 이슈가 되지 않게 하려면, 과감하게 버릴 건 버리고 고칠 건 고쳐야 합니다. 손해본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게 곧 얻는 길입니다. 여당에서 불·편법 안 쓰고 무리수 안 둘 생각이라면 공정한 방송이나 특별 검사제가 이 사회에 무슨 해가 되겠습니까. 방송과 검찰의 권력 지향에 여태 한두 번 당하셨습니까. `국민의 정부'일지는 몰라도 `국민의 방송'과 `국민의 검찰'은 아직 멀었습니다. 그들을 바로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일단 제도는 손질을 해 놔야 할 것 아닙니까.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려면 여당이 방송과 검찰을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게 피곤하긴 해도 견제와 균형에 맞는 겁니다. 평소 그들의 자잘한 매를 안 맞으면 물러날 때 큰 매를 맞습니다. 우리 국민 중에 검찰을 곱게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저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과거에 그렇게 당하고서 이제 수하에 넣어 부릴 만하니까 내놓으려 하지 않으면, 나중에 또 그 가시에 찔리는 사람들 많이 나옵니다. 이력을 봐도 우리 검찰은 법이나 인정을 따르지 않고 권력만을 따르는 비정한 집단이란 걸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똑같은 사람, 똑같은 사건에도 권력의 향배에 따라 상반된 결과를 만들어내는 곡예사들이에요. 그 버릇을 고쳐 놓지 않으면 나중에 큰일납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도 이번 기회에 손질해 보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이런 비민주적인 법이 어디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잘못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기소할 수 있어야 옳은데, 현실적인 번잡을 피하기 위해 독점으로 맡겨 놓으니까 엿장수 맘대로 그걸 권력화해 휘두릅니다. 기소편의주의도 그래요. 검찰의 목적은 기소하는 데 있는 것이지 마음대로 넣다 뺐다 해선 안 되는 겁니다. 법적인 판단은 재판을 통해서 내려야 하는 것이지 검찰이 그런 판단까지 한다면 법원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지금의 두 가지 법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마약 중독자에게 약제실을 맡기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이 두 가지 문제에서 보이듯, 올바른 것은 야당 때 주장하던 것이라도 입장을 바꾸지 말고 실천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도 그런 말이 있다면서요.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하는 말요. 그게 곧 기득권을 포기하는 희생의 미학을 말하는 게 아닐는지요. 양심수를 석방하십시오 셋째, 양심수를 전면적으로 전원 석방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양심수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대통령께서 누구보다도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 더러는 죄 없고, 대다수는 가혹한 형법 탓에 죄값 이상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대통령께서도 다년간 죄 없이 끌려가 고문도 당해 보고, 없는 죄 조작되어 갖은 수형 생활 다 해 보셨을 텐데, 이제 남의 일처럼 여기시는 건 아닌지요. 취임 특별 사면에 그런 양심수들이 다 풀려나올 줄 알았는데 보통 실망한 게 아니었습니다. 전향서 같은 걸 요구했다더군요. 그렇게 쉽게 전향할 잘난 사람들 같으면 돈도 안 되는 그런 일에, 행복할 수도 있었을 인생을 포기하고 감옥에 들어가 있겠습니까. 구린 사회와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지요. 만약 대통령께서 신군부에게 끌려가 고문과 수형 생활이 두려워 적당히 봐 달라고 타협하고 전향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한 인간이 자기만의 신념을 갖는다는 것은 참 어렵고도 소중한 일입니다. 그걸로 인해 득을 보는 경우라면 몰라도 자기 신념의 실천을 위해 산다는 것은 설사 비뚤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사회적으로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역사가 그걸 증명하지 않습니까. 새 역사를 연 새로운 사상과 진리는 거의 예외없이 기존 사상과 진리라는 것의 핍박과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사상이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건 대통령께서도 몸소 겪고 또 깊이 아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의 체제 속에서 용납 안 되는 사상을 가졌다고 해서 수십 년씩을 한 평도 안 되는 감방에 가둬 두는 야만적인 짓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한 사회의 척도는 그 사회의 가장 비천한 자들을 볼 때 판가름납니다. 죄수들도 바로 그들 중 하나입니다. 정당한 형벌을 받는 죄수들에게도 죄 이상의 가혹함이 없어야 하는데, 권력의 의도에 의해 터무니없는 형을 사는 무죄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더할 수 없이 야만적인 나라입니다. 그런 걸 떠나서라도 대통령께서 오늘의 대통령이 된 데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힘이 컸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그들의 가족들은 이런 걸 해결할 수 있는 인물로 대통령께 한 표씩을 던졌고, 저 역시 그런 점도 염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모르쇠하는 건 보통 큰 실망이 아닙니다. 이건 대통령의 심각한 자기 부정입니다. 대통령의 당선이 역사적으로 볼 때 온당한 것이라면 그를 지지한 이런 사람들의 요구도 온당하게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산하 단체장 한 자리 달라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순수하고 자리 싸움 없는 손쉬운 논공행상(?) 요구 아닙니까. 오늘도 어디에선가는 한 달에 한 번뿐인 자식, 남편, 부모를 면회하러 나서는 가족들의 눈물이, 대통령께서 한국의 역사에 쌓아올린 공든 탑의 받침돌들을 하나씩 빼내는 물줄기가 되고 있음을 저는 장담합니다. 그들을 풀어 주지 않는 대통령의 마음은 그들을 풀어 주지 않던 역대 정권의 완악함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발 어제를 잊은 오늘을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발가벗은 마음과 과감한 추진 넷째, 발가벗은 마음으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를 살펴보면 너무 빨리 대통령이란 자리의 권력에 길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는 권력이란 당선 전의 개혁적인 공약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어지면서 대통령이란 자리가 갖게 되는 즐거움에 취한다는 말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벌써 기득권을 뜻하는 보수층의 눈치를 볼 정도로 기득권층이 된 건 아닙니까. 보수층의 눈치를 보느라 개혁이 어렵다고 하는데 보수층 그렇게 무서워할 것 없습니다. 그 세력의 힘은 어마어마하지만 대통령의 힘도 작지는 않습니다. 대통령께서 오늘에 이른 과정이 지금보다 훨씬 쉬워서 그 많은 고비와 시련을 넘겼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을 위한 신념 하나로 목숨도 아깝지 않게 살아온 과거는 어디로 숨었습니까. 박정희, 전두환의 고문과 사형 선고, 암살 위협, 투옥, 가택 연금의 공포도 잠재우지 못한 불굴의 의지가 왜 지금은 한 점 총칼의 위협도 되지 못하는 보수층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요. 지방 선거 전에는 그 때문이라 하지만, 이제는 이겼으니 신경쓸 것 없고 벌써 다음 총선이 걱정돼서 그러는 것인가요. 그런 걱정이라면 부디 접어두시길 바랍니다. 그들에게 의지해 얻는 표는 절대절명의 개혁에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들은 역대 정권에서 대접받을 만큼 받았고 지금 걱정 안 해 줘도 제 살 길은 기막히게 찾아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염려해야 하는 건 역대 정권에서 늘 찬밥 취급을 당한 계층들입니다. 그들에게 혜택이 갈 때에야 진정한 정권 교체의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알 만한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릴 수 있는 게 무언지 잘 압니다. 개인의 권력으로 보면 미국 대통령 하나 안 부러운 자리지요. 미국 대통령, 말이 좋아 세계 최강대국 수반이지, 법을 떠나 누릴 수 있는 게 뭐 하나 있습니까. 우리 나라 같으면 절대 문제삼지 않을 과거 여자 관계 때문에 온갖 수모 다 당하는 클린턴을 보세요. 후진국일수록 대통령 노릇하기가 쉬운데, 너무 후지면 외국 나가서 말발 안 서는 게 흠이지요. 그에 비해 나쁘게 맘먹으면 해먹을 것도 많고 어느 정도 국제적 위상도 있는 한국은 금상첨화지요. 대통령께서 그런 분이란 것도 아니고 앞으로 그러리란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 정도로 많은 권력이 집중된 자리인데 무엇을 두려워하느냐는 겁니다. 대통령께서 좋아하는 역사학자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 얘기를 한 번 해 볼까요. 주변의 안락에 길들면 창조적 발전이 없다는 게 역사의 연구 의 요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도전에 잘 응전한 덕에 오늘이 있는 건데, 안주하면 앞으로의 도전에 대한 응전에는 실패합니다. 역사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보수·기득권층 두려워 못 하는 것, 사생을 결하는 마음으로 펼쳐 보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벌써부터 청와대는 사람이 그립네 어쩌네 하는 말이 들리는데, 그거 핑계 아니면 게으른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왜 사람이 그립겠습니까. 구중궁궐만이 제 세상인 줄 알던 왕조 시대에나 나올 법한 얘기입니다. 조선조의 명군 중 손꼽히는 성종 임금은 미행을 제일 많이 한 분입니다. 왜 사람을 찾아 나설 생각은 안 하고 사람 없단 말만 할까요. 청와대가 기다린다고 아무나 다가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 그건 틀린 계산이지요. 모내기철 헬기 타고 와 논 위에 내려 농민들과, 새벽의 남대문 시장에 나가 상인들과, 돈 가뭄에 가슴이 바짝 탄 어느 중소기업체 현장에 예고 없이 들이쳐 임직원들과, 격 없이 대화해 보시지요. 아마 대한민국 돌아가는 얘기들은 턱밑의 어느 비서관보다도 생생하게 들려 줄 겁니다. 미리 간다고 하면 들을 수 있는 얘기 뻔합니다. 아랫것들이 심기 편하게 해 드린다고 거를 거 다 거르고 초 치고 코 빠트려서 건질 게 없지요. 경호가 걱정되신다고요? 그것도 별 염려 없어 보입니다. 경호원도 모르게 불시에 나서는 곳이면 어느 놈이 알고 미리 폭파 장치 해 놓고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대한민국 시중에 불법으로 유통되는 자동화기 없는 건 코흘리는 애들도 알고, 칼부림 날 정도의 곁꾼이야 경호원들 무술솜씨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싫으면 그런 사람들을 불러들이든지요. 대통령께서 존경하는 백범 선생은 평양 올라갈 때 삼팔선을 베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남북의 통일을 위해 간다고 했습니다. 암살을 우려하는 주변의 우려엔, 원수 왜놈들도 어쩌지 못한 당신을 동포들이 어쩌겠냐는 신념으로 일관했던 분이지요. 결국 안두희의 손에 암살당하는 비운을 겪었지만 그가 우리 현대사에 우뚝 서 있는 것은 그런 신념으로 생의 고난에 맞서 온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필요한 곳이면 유·불리, 사생의 위험과 편안을 가리지 않고 다닌 용기, 그것이 바로 백범 선생이 오늘도 생생히 살아 있는 이유가 아닐까요. 반면 조선조 5백 년이 혼탁했던 건 구중궁궐에서 궁녀의 치마폭과 권신의 주렴에 가린 혼미한 임금들이 있던 탓입니다. 대통령께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잠시 한눈팔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게 바로 그 자리란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는 옛날의 벌거벗은 마음으로 돌아가시라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신하들을 어쩌지 못하던 왕조 시대의 임금들에 비하면 상황이 훨씬 낫지 않습니까. 너무 이거 저거 재면 우유부단해집니다. 옳은 일은 과감히 추진하시기 바랍니다. [조선일보]를 제대로 아셔야 합니다 다섯째, 적과 동지를 분명히 인식하란 말씀입니다. 더불어 가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선 안 되는 관계가 있고 가까이하기는 꺼려지지만 멀리해서는 안 되는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관계의 으뜸으로 언론 하나만을 들겠습니다. 사람이 그리운 청와대에서 그래도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는 아무래도 언론, 그 중에서도 신문이 으뜸 아닐까 생각합니다. 많은 신문들이 있지만 분명 가까이 하면 득이 되고 멀리 하면 실이 되는 신문이 있을 겁니다. 그런 극과 극의 신문으로 저는 서슴없이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꼽습니다. 먼저 [조선일보]의 해악에 대해 두 가지만 말씀드릴까요. 저는 [조선일보]의 표면적인 사시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다만 제가 아는 바 [조선일보]의 속내는 이런 것입니다. 하나, 남북 통일 절대 반대. 왜? 통일을 하면 잃을 게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통일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거부합니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동의하지만 개중에 부분적인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조선일보]도 흡수 통일은 찬성한다고요? 그러나 그도 틀린 말입니다. 왜냐면 흡수 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북한같이 폐쇄된 사회는 정부와 군대만 있으면 유지되는 나라입니다. 그런 북한 정부는 아무리 많은 국민이 굶어 죽어도 까딱을 않는 부도덕한 깡을 가진 강심장들입니다. 그들이 남한의 흡수 통일이 갖는 의미를 모르지 않는데, 흡수 통일을 추진할 것 같습니까. 전쟁이 아니면 북한 사회의 자체 역량을 통해 독일과 같은 흡수 통일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거지요.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걸 잘 알면서 찬성하는 건 진정한 찬성이 아니지요. 그런데 [조선일보]는 그런 흡수 통일이 아니면 할 생각도 없고 통일을 대놓고 반대합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양산해냅니다. 왜?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죽고 살기식 반공 교육의 후유증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면서 경계하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는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조선일보]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수면제가 되고 그게 곧 [조선일보]가 노리는 사회적 영향력과 돈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게 대한민국, 이 한민족에게 무얼 뜻하는지는 잘 아시겠지요. 끝없이 소모적인 갈등과 대립 그로 인한 민족 내부의 이질성 증가와 통합의 어려움입니다. 그리고 남한 내의 사상 탄압으로 인한 사상의 다원화 실종과 독재적인 요소의 내재 등등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1천만이라는 이산가족의 눈물과 고통은 또 어떡하고요. 둘, 보수 기득권층과 특정 지역 절대 보호. 자본과 노동이 대립하면 자본을, 안기부와 인권이 대립하면 안기부를, 지역과 지역이 대립하면 패권 지역만을 편듭니다. 왜? 그들이 주독자층이고 그들의 이기심을 부추겨야 이 사회를 제 구미에 맞도록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득권 세력이 흔들린다는 것은 곧 자신들이 흔들린다는 말이 될 정도로 이미 [조선일보]는 기득권층의 최상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듣자니 연봉 1억이 넘는 간부가 [조선일보]엔 상당수 있다는데, 이 정도면 그들 스스로가 엄청난 기득권층이 아닙니까. [조선일보]는 국민들을 가진 것도, 생각도 없는 아침저녁 다르게 언제나 갖고 놀 수 있는 아랫것들로 파악합니다. 설마 그렇기까지 하겠냐구요? 근데 불행하게도 그렇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과거 선거철만 되면 미친 척 여당만을 편들었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전두환을 `세종대왕 이래 최대의 성군'이라고 칭송하던 가증스런 입으로 노태우를 떠받들다 김영삼을 숭배하고, 그들의 힘이 다하면 모르쇠로 그들을 씹으면서도, 은근히 그들의 `통치' 시절의 향수를 드러내는 그들의 어느 구석에서 언론의 양심을 찾을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게 하나 있어요. 여태까지 대통령들 중에 지금의 대통령만큼 [조선일보]가 견제한 `어르신'이 없으니 이게 어인 일입니까. 없던 배알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닐 텐데? 답은 간단합니다. 선거 전에도 대통령께서 당선되는 걸 바라지 않았듯이 결코 대통령께서 꿈꾸는 나라가 오는 걸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약자가 존중받고 정직하게 노력하는 자가 성공하는 사회, 이거는 한 마디로 웃기는 얘기라는 거지요. 그런 사회가 이루어지면 [조선일보]라는 신문의 과거는 악취 심한 끔찍한 흉터요, 그들이 쏟아내는 논조는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더러운 쓰레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올바른 정책을 펴면 대놓고는 못하지만 어떻게든 흠을 잡아 무산시키려 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몰락한 데는 [조선일보]라는 문제 있는 언론이 있었던 겁니다. 올바른 길은 한사코 비판하고 벼랑길로만 내몰았으니 어떻게 거기서 안 떨어지겠습니까. 그는 이제 국민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조선일보]는 여전히 건재하며 대한민국을 말아먹으려 합니다. 권리는 누리되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 채로요. [조선일보]를 극우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것도 과분한 평가입니다. 그들의 성질을 보면 아예 파쇼에 가까워 보입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존재를 용납 못 하고 때려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 그게 바로 파쇼의 가장 큰 특징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대통령께서는 [조선일보]에 대해 분명한 개념을 잡아야 합니다. 반면 [한겨레]는 멀리해서는 안 되는 신문입니다. 많은 면에서 [한겨레]는 [조선일보]의 정반대편에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다른 신문들이 대동소이하게 [조선일보] 흉내를 내며 따라가던 때에 [한겨레]는 확연히 구분되는 `아름다운 청년지'였습니다. [한겨레]에 몸담고 있는 언론인들의 면면을 한 번 보면 쉬이 알 일입니다. 신문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 그들을 보면 그 신문의 바탕이 나옵니다. 서슬 퍼런 박정희와 신군부 치하에서도 양심과 민주 사회를 위한 신념으로 변절하지 않고 감옥과 길거리로 내몰림을 마다치 않던 언론인들이 자본의 간섭 없이 만드는 신문은 분명 도덕적 우위에 서 있습니다. 언제나 현실과 적극 타협하면서 주판알을 두들긴 다른 신문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한겨레]만의 큰 자산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굴절된 역사와 사회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늘 게을리 하지 않았고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첨예하게 맞서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민족의 분단이 불러일으키는 모순을 거부하며 민족의 화해와 공존을 모색하고 해결 방법을 실천하는 데도 힘써 왔습니다. 그래서 그와 비슷한 대통령께서 당한 부당한 대접을 상대적으로 가장 많이 받아 온 신문인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 와서 비판의 예봉이 많이 무뎌지고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언뜻 비치지만 그래도 [한겨레]는 여전히 살아 있는 언론입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능력이 모자란 탓이지 기본 바탕이 틀려먹어서는 아닙니다. 앞으로도 대통령께서 생각하는 개혁에 가장 큰 힘을 보태 줄 수 있는 신문도 이것일 겁니다. 대통령께서 잘못된 길을 갈 땐 과감히 비판하겠지요. 그러나 바른 길을 가는데 괜한 발목은 잡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한겨레] 판촉 사원이 된 것 같아 그만두겠지만, 부디 [한겨레]를 벗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나라를 비슷하나마 제대로 이끌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역사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께서는 언론의 중요성과 가공할 파괴력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신문 논조를 곧 자기의 평소 생각으로 착각하고 그걸 곧 올바른 여론으로 여기는 아무 생각 없는 국민들이 많이 사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같은 일이라도 언론이 어떻게 떠드느냐에 따라 제대로 된 밥을 짓느냐 죽을 쑤느냐가 결정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인 것입니다. 대통령께서 바라는 개혁의 성패는 언론에 달려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 중요성에 비춰 이제는 적과 동지를 분명히 갈라야 합니다.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듯이 도무지 개혁과 함께 할 수 없는 언론도 있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정도를 걷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현실에서 수난받고 실패하는 이유를 아시는지요. 제가 보기에 그 이유는 사람이 흔히 자기의 모습으로 남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공명하고 정대한 사람은 흔히 악인도 자신과 같은 줄로 판단해 잘 타이르면 대번에 자신처럼 선해질 걸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승리를 하고도 가증스런 그들의 눈물과 애걸에 그 죄를 쉬이 용서해 줍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악함으로 대립적 위치에 선 선인들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비굴하게 연명하다 다시 득세를 하게 되면 가차없이 베어 버리는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정대한 인물은 성공을 해도 항상 위태합니다. 악인들이 갖고 있는 생존 본능적인 악마성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탓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께서 이루려는 개혁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주적'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감히 [조선일보]를 추천하고 싶군요. `개혁 전면전'을 벌이십시오 여섯째, 개혁을 하려면 집권 초기에 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권이고 막 들어섰을 때가 가장 막강하지요. 처음에 강력하게 칼을 들이대도 될까말까한 일들을 자꾸 세월이야 네월이야 하고 미루면 나중엔 전혀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짐승도 칼을 막 갈아 서슬이 퍼럴 때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취임 이후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면 이번 대통령은 임기가 십 년은 되는 듯한 착각이 드는군요. 저번 정부에서도 보셨지만, 초장엔 어느 세력도 감히 대들지 못하지만 중반이 지나고 나니까 은근히 개기는(속된 말이라 죄송하지만 이것 이상의 표현이 없는 듯해 씀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부류가 나오고 말년이 되니까 아예 물려고 덤빕니다. 같은 일을 해도 시기가 틀리면 그 효과와 영향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5공 이후의 역대 정권하고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초장부터 개기는 괘씸한(?) 녀석들이 있는 겁니다. 정권 교체가 의미하듯 과거와는 너무 이질적인 정치 세력의 집권이 영 못마땅하다는 거겠지요. 그런데 그런 세력들의 하나 같은 특성이 있습니다. 강한 자에겐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겐 더할 데 없이 강하다는 거지요. 흔히들 `하이에나 근성'이라는 일부 한국 언론을 이르는 별명이 잘 말해 주는 것과 같은 부류들 말입니다. 전에 텔레비전을 보니까 북극곰이 바다코끼리인가를 사냥하는데, 죽기 살기로 바로 덤비지 않고 그냥 한 번 슬쩍 건드려 보다 만만하면 물어뜯기 시작하더군요. 지금 대통령께서 하는 일에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부류가 바로 그런 부류입니다. 천성적인 비굴함을 가진 그들은 옳지 못한 짓도 목에 칼이 들어오면 적극 앞장을 서지요. 그러나 툭툭 건드려도 참는다 싶으면 그 뒤에는 여지없이 물려고 덤벼요. 같은 부류지만 정권 획득의 절차와 독재의 강권 면에서 전두환보다 조금은 나았던 노태우가 물태우란 이름으로 전씨의 똘마니 취급을 당하고 인기가 전씨보다 죽을 쑤는, 한국이란 사회의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부류들에게 제일 잘 통하는 방법은 강하게 나가는 겁니다. 공명정대한 일은 아니겠지만 할 수 없지요. 부처님의 설교 중에 `방편'이란 말이 있더군요. 병에 따라 통하는 약을 써야지 중환자에게 평소 먹여야 하는 보약은 별 해당이 안 됩니다. 그러니 서슬 퍼런 지금 바로 개혁의 모든 역량을 모아 전면전을 벌여야 합니다. 사생을 결하는 마음이 아니면 결국 패배하게 됩니다. 이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의 역사적 위상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국민의 정부를 꼭 성공시키라는 역사의 당위입니다.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 정권이 갖는 도덕적 정당성에서 비롯된 우월성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다스리던 정부들이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았다는 하나의 선상에 놓이는 결격의 사유가 있었다고 한다면, 정권 교체가 주는 의미는 작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불의한 세력에게 매여 있던 주권이 그에 저항한 세력에게 넘어온 것입니다. 거기에는 과거의 대한민국 정부가 보여 주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변화를 담아 보여 줘야 하는 의무가 따릅니다. 지난날의 불합리와 모순들을 어느 정도는 혁파해야만 하는 요구인 것입니다. 그런 열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정권 교체가 가능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그렇게 출발한 정부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다 칼 한 번 못 쓰고 좌초한다면 이는 씻을 수 없는 허물이 됩니다. 올바른 사회를 꿈꾸며 한 표를 던진 사람들의 실망과 그로 인한 정치적 허무주의는 오히려 이 나라를 더 가망 없는 상태가 되도록 내팽개칠 수도 있으리란 걱정이 듭니다. 그들은 영영 정치를 불신할 것이며 그 후엔 양화 악화가 따로 없게 되는 거지요. 그럴 경우 생명력이 질긴 악화가 더 판칠 건 당연합니다. 지금 보이지 않는 곳에는 대통령의 실패를 간절히 바라는 세력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기대가 들어맞는 불행한 사태가 오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둘, 김대중이란 인물이 갖는 현대사의 이정표적 의미입니다. 저는 대통령을 우리 현대사 아니, 근세사에 있어서 정도를 걷고도 현실 정치적으로 성공한 유일한 인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근현대사는 항상 수단 방법 가리지 않은 부당한 인물들이 정치적, 현실적으로 성공한 역사였습니다. 친일파들이 그랬고 이승만이 그랬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인간 본성에 도사린 비겁과 모리하는 마음을 잘 포착하고 이용해서 한 때 성공했지요. 지금에 와서는 그들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들이 횡행한 동안 올바른 인물들이 숨쉬지 못하고 역사가 목놓아 울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은 그 많은 고난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성공한 우리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인물로 유일한 사례입니다. 그런 판단으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적극 지지한 저 같은 사람들도 꽤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간절한 희망이 충족되는 감동을 주었지요. 그렇지만 그런 감동이 한 번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성공하는 사회가 되도록 나라의 기틀을 다져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대통령께서 그런 사회적 기틀을 세우지 못한다면 정말 희망이 없어요. 지금의 정치 구조나 정치인들을 볼 때 대통령 같은 인물이 나오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아니, 김대중 당신마저도!'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꼭 성공을 해야겠습니다. 그래야 한국에 기회주의자와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출세하려는 자들이 없어집니다. 이상 앞에서 든 문제들이 제가 대통령께 드리고 싶은 쓴 소리입니다. 맨 뒷부분의 얘기들은 듣기에 따라 `신용비어천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관계없습니다. 그것은 훗날 역사가들의 사필이 그와 다르지 않으리란 저만의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로 인해 제가 덕 볼 일도 없지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하다 보니 훈수 같은 부분이나, 어법상 무례해 뵈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충고 비슷한 걸 할 때면 좀 설교조가 되는 단점이 있어 그러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편지를 올리지 않는 날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기력 잃지 않는 모습으로 일하는 모습을 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부족한 고언에 가름합니다. 감사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