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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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woori (토끼사랑)
날 짜 (Date): 1994년07월29일(금) 21시02분12초 KDT
제 목(Title): [한겨레] 서강대 정외과 박호성 교수 컬럼


 
  * 다음은 오늘 한겨레신문에 실린 정외과 박호성 교수의 컬럼입니다.
    최근에 일고 있는 일련의 논쟁을 꽤 중립적인 시각으로 보고있는
    듯 하여 여기에 올립니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뜨겁다.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한
직후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한 열기는 김일성 주석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그 절정을 장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뜨거움의 종류는 시기에 따라 질적으로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상회담을 마련해나가는 과정에서는 평화에 대한 기대와
통일을 향한 부푼 꿈으로 인해 용서와 화해의 너그러움으로 충만한
민족적 열기가 있었다. 반면 김 주석의 죽음 이후에는, 특히 어떻게 보면
그리 대단치도 않은 조문 문제를 둘러싸고, 비방과 저주와 위협과 매도로
얼룩진 민족적 적대감과 사회적 흑백논리가 뜨겁게 되살아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불과 며칠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이러한
경박한 변신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성을 상실한 사회적 집단
히스테리가 기승을 부릴 수 있게 되었는가.
    조문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상회담의 합의와 동일한 굴레에 속하는
정치적인 문제다. 김일성 주석과 한시라도 시급히 정상회담을 갖고자
법석을 피웠을 때 정부는 그의 `민족적 죄과'를 전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정치의 세계는 고도로 비정하고 계산적인 영역이다. 민족과
국가의 이해관계에 도움이 된다면 적과도 손잡을 수 있고 또 손잡아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에 속한다.
    사실상 문제가 이렇게 단순한데도 한 야당 국회의원의 지극히
합리적인 발언을 왜곡까지 하면서 온 사회를 온통 `적색공포'의
소용돌이로 휘몰아간 것은 과연 누구인가. 무엇보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러한 사태 발전에 불을 붙인 것이 다름아닌 자유와 이성의 전당인
대학이었다는 사실이다.
 
    대학이란 어떠한 곳인가라는 상식적인 질문이 지금처럼 비상하게
제기된 적은 없었다. 대학은 스승과 제자가 애정과 신뢰 속에서
가르침을 서로 주고 받는 곳이다. 대학생은 아직도 가르침을 받는
처지이기 때문에 당연히 적잖은 부족함을 지닐 수 있다. 지금의 학생
운동도 크게 보면 목표와 방법의 면에서 그러한 결함을 벗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른바 주사파라는 것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대학생의 이러한 부족함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이 교수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걸 모르는 교수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교수의 책임은 학생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불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그들을 적대시하고 윽박지름으로써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미숙할지 모르는 그들의 아픔과
고뇌를 사랑으로 껴안아주는 진지한 비판과 보살핌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학생은 교수의 적이 아니다. 그들은 `사랑의 매'를 맞아야 할지 모르나
적어도 선전포고의 대상은 될 수 없는 것이다.
 
    김일성 죽음 이후에 몰아닥친 우리 사회의 광란을 바라보면서,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하고 우려를 금치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다양한 견해의 차이를
생명처럼 존중한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이 기림을 받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자유민주주의를 높이
떠받드는 것처럼 내세우면서도 실은 반자유민주적인 행태에 지극히
익숙해져 있다. 자신의 의사와 이념을 추종하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몰아쳐버리는 단세포적 광기가 여기저기서 번뜩이고 있다. 건강한
미래에 대해 아무런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비생산적인 이념적
난투극에만 몰두하는 집단의 `배후'에는 혹시 `어둠의 세력'이 포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우리 민족은 역사적 전환기에 돌입하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백해무익한 감정적 소모전으로 우리의 민족적 역량을 탕진하고 있을 때
어부지리를 얻는 쪽은 따로 있다. 미국과 일본은 지극히 타산적으로
북한과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 우방도 민족에 우선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도 바로 그 우방들에 민족문제의 주도권을 속없이
넘겨주고 있지는 않은가.
 
    이른바 신공안정국은 역사의 대세를 거스르려는 우리 사회의 극우파
및 북한 강경파들의 발언권만 강화시켜줌으로써 결국은 민족 화해에
찬물을 끼얹는 과오로 기록될 것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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