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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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FreeBird ()
날 짜 (Date): 1997년11월05일(수) 17시49분38초 ROK
제 목(Title): 1987년도의 김대중...


김대중은 김영삼과는 1971년 대통령후보경선 이후로는 원내에서의 정면대결을 

피해왔다. 그때마다 김대중이 써먹었던 명분이 바로 '국민후보론'이었지...

정권의 탄압으로 제도권에서 �물屛뎬� 그의 원내기반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은 '국민후보론'을 앞세워서 김영삼과의 두 번의 정면대결을 피해갔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신민당내에서 김영삼 당수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 

당내파인 김영삼에게 당내 경쟁에서 밀릴 것이 뻔하자 스스로를 국민연합이 미는 

진짜 국민들의 후보로 자리매김한 것이 한번이고, 1987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과 

각축할 때 당시 재야의 대표단체격이던 민통련의 지지를 이끌어냄으로써 자기가 

김영삼보다 지지기반이 더 국민적이라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 두번째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대중은 현재 '국민후보론'의 한 선조라고 말할 수 있다. 어쨌건간에 

당을 같이 만들고 입당까지 해놓고서 정면대결의 승산이 없단 이유 하나만으로 

통합야당을 깨뜨리고 나간 김대중은 87년 정권교체 실패의 제일 큰 책임이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에도 김대중은 김영삼보다도 득표에 뒤졌다. 87년 통합야당의 

영-호남 분열의 후유증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대선패배보다는 그게 더 크다.


'중산층 농어민 근로자의 당, 우리 모두의 당'이라는... 조금 튀는 슬로건...

환호하는 수십만 청중들을 내려다보며 아우르는 검은색 두루마기의 근엄한 미소...

그리고 흰비둘기... 그당시 김대중은 쉽사리 범할 수 없는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어린 마음에 김대중의 그런 쿠울한 이미지에 완전 뿅~ 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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