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FreeBird () 날 짜 (Date): 1997년07월17일(목) 20시41분54초 KDT 제 목(Title): 정권교체와 지역패권의 극복 <지역패권의 나라>의 황태연씨나, 그보다 앞서 나온 <지역패권주의 연구>의 남영신씨. 지역패권 문제에 관한한, 지금까지 나온 것들 중 가장 괜찮은 책을 지었다. 전자의 문제의식은, 영남지역의 패권이 정치사회적 상부구조와 경제적 토대 양자를 정복한, 그러니까 정부와 군부의 요직 독점에서부터 문화와 무의식적 심리까지 다스린 내부식민주의 구조를 창출하였다는 것이다. 후자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조, 1990년까지 '반역자의 출생지' '고급 관리의 출생지' '부의 편중' 문제를 방대하게 다루면서, 한국 사회에 내재해온 호남차별 의식의 조악성을 폭로한다. 가상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호남증후군의 저급성은 일러 말할 필요가 없다. 호남(인)의 기질, 지형 운운하는 사람의 주장도 언급할 가치가 없는 작위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와 같은 '무대뽀의 현실을 업은 감정주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앞서의 두 사람의 저작은 '논리적'으로는 충분하다. 그들의 극복방안도 대체로 알려진 대로이다. 즉 정권교체이다. 두 사람 모두 내각제와 주지역정부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소외지역의 정치적 대연합을 위해서는 DJP도 긍정한다고 보고 있다. 황씨는 노동운동세력에게도 '지역-계층연합 노선의 선제성'을 호소하고 있다. 패권지역의 자본과 권력을 먼저 극복하지 않으면 '진보된 정치체제'는 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호철 교수와 같은 '좌파운동의 명분'을 내세우는 주장들이 운동권의 '체면과 현실' 사이에 웅대하게 들어차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DJ 이지메'를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고작 '대안 부재' 정도였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간 단순히 정권교체가 민주주의 제도의 필수적인 과목이기 때문에, 이를 성사시키지 못하는 사회체제는 곧 어떤 사회적 진보도 이룰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취지로, DJ로 대표되는 야당의 정권교체를 거듭 지지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지역패권'을 첨가해서, 정권교체의 완성을 위해 가상공간에서나마 노력할 것이다. 현재까지 DJ 혹은 야권의 집권은 여론조사 결과 열세이다. 나 역시도 비관한다. 그런데도 나는 정권교체를 거듭 열망한다. 나는 DJ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대부분의 후보 전술에 대해서 호의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숙명적으로 '지역패권'과 연속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지역패권'은 우리 국민의 수준 상승을 막는 주범이다. 물론 그것은 한 차례의 정권교체로 단숨에 극복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지역패권의 해소야말로 가장 중요한 정책 이슈다. 이미 그것은 자본과 권력에 걸쳐 있다. 유권자들에게는 여전히 결정적인 내용이다.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DJ집권, 나아가 '선거혁명'이 불가능한 것은 지역패권의 구조 때문이다. 이것을 풀지 않고서 '정책선거'를 담보해내겠다는 발상, 꿈이라는 어휘는, 정치를 아직도 주관과 구호 속에 둔 결과이다. 물론 나는 만에 하나 야당 후보가 집권해도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회의에 일단 수긍한다. 그러나 정권교체는 유권자 집단을 다른 정치환경, 이미지 속에 '법정 기간'동안 안정적으로 갖다 놓는다. 나는 그것이 어떤 맹아보다도 실제적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번 대선이 과거의 것과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 나는 관심이 적다. '정권교체의 눈'으로는 어떤 선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어떤 주의자도 아니다. 오로지 나의 관심영역은 한국의 정치체제가 보편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데 있다. 나는 제도권의 야당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로 볼 수 있겠지만, 제도권 밖의 운동권을 포함하는 전국적 좌파 정당의 출현과 기성 정당과의 경쟁 구도를 궁극적으로 고대한다. 그러자면 정치현실의 합리화, 보편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유권자 집단을 각성시킨다. 정권교체는 유일한 정치적 전기이다. 정권교체 없이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조직적으로 실물화해낼 수 없다. 왜냐하면 정권교체의 걸림돌인 지역패권 구조 내에 소외지역과 시민, 그리고 '이념'이 수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지금 민주노총 등이 범시민운동진영과 공고한 연대로 나아가자고 한다. 그것이 발본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엇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군가는 '선택'의 문제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근데 '누가' 선택한다는 것인가? 선거는, 정치는 광범위한 지역과 이해관계를 교통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이것을 '정치현실'로 명명한다. 현실 정치는 그러한 정치현실을 응집한 문화이다. DJ가 단순히 '지역감정의 수혜자'라고 하는 주장은 단편적인 것이다. 선택의 버튼은 우리에게 애시당초 있지도 않다. 거품으로 등단한 최근의 권영길씨만이 약간의 선점권을 갖고 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도 '현실 정치'의 스펙트럼으로 보면 부질없기는 매한가지다. 나는 그가 보여준 진지하고 사려깊은 지도력에 경의를 갖는다. 그러나 그것은 날치기라는 의회 초유의 사태와 부정부패라는 또 다른 상황에 힘입은 결과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이 운동권 전반과 시민운동체를 견인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해결하여야 할 일은 대통령 선거에 있지 않다. 민주노총은 전국연합과 다르다. 산적한 문제더미 속에 있는 것이 오늘의 민주노총이다. 오히려 그들이 홀로서기를 하는 순간 노동운동계는 사분오열된다. 남북 대치, 시대착오적인 국보법, 살인적인 이념대결과 연관된 노동탄압 등을 추동하는 헤게모니 블럭을 깨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민주노총의 '독자후보'로써가 아니라 강력한 '대연합'으로써만 의미있게 될 뿐이다. 사실상 그런 객체적 지원 차원의 '대선 방침' 이외의 것을 할 조건도 되지 못한다. 이 순간 진보된 정치체제를 희망하는 모든 운동권은 DJ를 중심으로 논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혹자는 지금이야말로 '자연적으로 예정되는' 3김 퇴진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정당건설의 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지역패권'이 그대로인 한, 그러한 인물적 구심적이 사라지면 저항적 지역주의를 더욱 정확히 대변, 확대하는 더 급진적인 다른 인물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한 벽은 더욱 높고 견고해서 어떤 진보적 정치공간도 마련해 내지 못할 것이다. 그 지역패권의 악순환이 진보정치의 실현을 최근까지 절대적으로 막아 왔다. 정권교체가 중요한 까닭은 '지역패권의 연속성'을 적어도 명목상 정체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지역-계층 연합'은 대선 패배 이후에도 상정되는 중단기적 전략이다. 그러므로 정권교체의 실패가 곧 부담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가까운 동료, 추억이 아닌 전체 유권자들의 생김새를 똑바로 봐야 '정치'가 가까워져도 가까워진다. 200만표??? 가당치도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