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FreeBird () 날 짜 (Date): 1997년03월12일(수) 18시01분29초 KST 제 목(Title): [경향신문] 실명제를 파괴하지 말라 윤원배 <숙명여대교수·경제학> 너무 요란하다. 총리와 장관이 자주 바뀐다는 것이 결코 좋은 현상이 아 닌데 이번 개각으로 무슨 큰 경사나 난 것처럼 소란스럽게 떠든다는 느낌이 다. 새로 임명된 총리나 경제부총리 모두 규제의 혁파와 경제살리기를 이야 기하면서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결과는 두고볼 일이다. 물러난 사람들도 입각할 때는 과감한 규제철폐를 약속했으며 경제회복에 자신감을 표시했었다. 단기간에 규제철폐에 성공하고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왜 그러한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겠는가? 제도와 관행, 그리고 지배계층의 의식이 변하지 않았는데 누가 들어선들 무엇이 얼마나 바뀔 수 있다고 이렇게들 큰 소리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공연한 기대감만을 높여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서둘 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해결의 비용을 증가시키면서 더 어려 운 문제를 잉태시키게 된다. 이번에 입각한 사람들이 결코 새로운 사람들도 아닌데다 일할 수 있는 기간도 1년이 채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도 국민들에게 너무 성급한 기대를 갖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더구나 새 총리와 경제부총리 모두 금융실명제의 보완을 취임 제일성으 로 터뜨리는 것을 보면 그들이 한보사태로 인해 입각하게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부정한 자금거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한보사태의 전말을 밝혀내라 는 국민들의 소리가 아직 잦아들지 않았는데 부정한 자금에 면죄부를 주고 자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그들이 국민을 위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의 문이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목적은 부정한 자금의 흐름을 차단하고 조세부담의 형평을 제고하여 경제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부정한 자 금의 탈출구를 마련하려고 하면서 금융실명제를 보완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금융실명제의 보완이 아니라 파괴다. 오히려 부정한 자금을 이용 해서라도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다면 금융실명제를 포기할 생각이라고 말하 는 것이 보다 정확하고 솔직한 표현이 될 것이다. 이 정부가 한 일 중에서 금융실명제를 빼버리면 개혁이라고 불릴 수 있 는 것으로 무엇이 남아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개혁중의 개혁이라는 금융 실명제를 보다 철저하게 실시하는 것만이 이 정부의 업적을 하나라도 남기 는 길이 될 것이다. 차명거래를 불법화하여 처벌을 강화하고 부정한 자금거 래에 대한 적발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방향으로 금융실명제를 강화해야 한 다. 물론 금융실명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금융실명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모든 지하자금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금융실명제의 실시로 인해 나타난 부작용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침체나 불건전한 사회적 행태의 원인을 금융실명제에서 찾고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일부 돈많은 집단의 호화사치품에 대한 과시적이고 낭비적인 소비행태를 개념도 모호한 과소비로 몰아붙이는 것은 부정부패를 확대시킨 정부가 그 책임을 국민들에게 전가시키는 행위다. 돈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 돈을 함부로 쓰지는 않는다. 일찍이 베블런이 지적한 바와같이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사람들이 흥청 거리면서 돈을 뿌리고 다닌다.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서 번 돈은 쉽게 쓰여 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호화사치품에 대한 무분별한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서는 부정부패를 척결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것은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일 이다. 부정부패방지를 위해 금융실명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금융실명제로 인해 더 심화되었다면 그것은 왜곡된 금융구조를 고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금리자유화를 통해 중 소기업이 그들의 신용도에 합당한 금리를 지불하면서 자금을 융통할 수 있 도록 하는 것이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해결하는 바른 길이다. 기업들의 탈세유인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부가가치세율을 큰 폭으로 인하 시켜야 한다. 필요한 조치는 취하지 않으면서 자금난이나 탈세, 그리고 무 분별한 낭비적 소비행태의 원인을 금융실명제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정부 실패에 대한 책임회피의 대상을 찾고자 하는 행위일 뿐이다. 발행일97년 03월 1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