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Hyena ( 횡 수) 날 짜 (Date): 2000년 11월 5일 일요일 오후 01시 14분 15초 제 목(Title): 노자를 웃긴 남자(41) ◎ 이름:구름 ◎ 2000/11/04(토) 16:54 노자를 웃긴 남자(41) [주 제] 노자를 웃긴 남자(41) ─────────────────────────────────────── 자 도올이 찍은 답부터 먼저 보자. 역시 우등생 도올은 예상대로 ①번을 골랐다. 객관식에서 답을 잘 모를 때는 제일 긴 것이 정답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 '겐또 의 제 1법칙' 아이가? 도올은 거기다가 특이한 버릇이 한 가지 더 있다. 가급적 어렵고 난해하고 알아 듣기 힘든 소리를 주로 고르는 건데 이것은 '겐또의 법칙'에도 없는 거다. 구르미 는 원래 겐또 실력 하나로 최고학부까지 무난하게 들어갔던 몸이다. 학교 댕길 때 별명이 '겐또 여왕'이었자나. 그런 구르미 앞에서 어슬프게 겐또를 치는 것도 다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짓이고 엿장사 앞에서 가위질 하는거다. '자기를 고집하여 산다'는 말은 불교식으로 말하면 '자아에 집착한다'는 의미와 비슷하다. 그런데 여기서 주어가 생명체가 아닌 하늘과 땅이기 때문에 생(生)을 '산다' 또는 '태어난다'로 직역하기보다는 '존재한다'로 바꾸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①번은 '자기를 고집하여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가 되겠다. 물론 이 번역도 완전히 틀렸다 말할 수는 없다. 이 구절의 '부자생'에 대한 해석 이 알려진 것만도 수백가지가 된다. 그 중에는 위의 다섯 가지가 전부 포함된다. <도덕경> 전체를 통털어 '이것이야 말로 올바르고 정확한 유일한 해석'이라고 단정짓기 곤란한 구절은 그리 많지 않다. <도덕경>은 제대로 읽기만 한다면 전체적 으로 대단히 메세지가 명확한 책이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애매한 구절이 있다면 여기 나오는 '부자생'이란 말 정도이다. '천지가 영원토록 이어지는 이유는 천지가 부자생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에서 '부자생'의 의미로 넣었을 때 어 색하지 않은 해석이 몇가지 나올 수 있다. 나는 위의 5지선다에서 고른다면 ③을 택하고 싶다. '존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주어가 천지이므로 훨씬 자연스러운 번 역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문장 '고능장생(故能長生)'은 '그러므로 천지는 능히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다'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 사용된 '장(長)'도 시간적인 '오래'를 나타내는 말이지 결코 공간적으로 '길다거나 너르다'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하늘과 땅은 스스로 존재하려고 애쓰지 않으므로 능히 오랜 세월 존재할 수 있 는 것이다'. 앞서 나왔듯이 비려고도 애쓰지 않고 채우려고 애쓰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無爲),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을 노자는 되풀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도올이 설명한 '자연은 빔을 극대화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하는 것이 < 도덕경>의 논지와는 전혀 빗나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장의 나머지 부분을 살펴 보자.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外其身而身存 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외기신이신존 '그러므로 성인은, 후기신이신선(後其身而身先)하고 외기신이신존(外其身而身存) 이니라' 대단히 좋은 말이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가르침이다. 물론 도올의 해석대로 읽으면 이것도 황당한 개그가 되분다. 먼저 보도록 하자. '그러하므로 몸을 뒤로하기에 몸이 앞서고, 그 몸을 밖으로 던지기에 몸이 안으 로 보존된다'가 도올이 내미는 해석이다. 번역이란 한자로 쓰여진 원문을 한국말 로 옮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문자 자체가 함의된 의미를 가지고 있 는 한자 고전은 더더욱 그렇다. 적어도 고전을 번역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이 문 장을 대할 때 제일 먼저 선후(先後)와 내외(內外)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노자는 무엇의 앞과 뒤를 말하는가? 무엇의 바깥을 말하는 것 인가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 대한 도올의 해설을 볼작시면 참으로 황당무계, 포복 절도의 엎어치기 한판이다. 그것을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다소 길지만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그러하므로 성인은 항상 그 몸을 뒤로 하기에(後其身) 오히려 그 몸이 앞서고(身先), 항상 그 몸을 밖으로 던지기에(外其身) 오히려 그 몸이 안 으로 보존된다(身存). "그 몸을 뒤로한다"는 것은, 잘난 체하면서 항상 앞장서고, 뭘 자기가 꼭 앞서서 리드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러한 인격자세 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 몸을 밖으로 던진다"는 것은 자기 일신만을 지키 는데 급급하지 아니하고 내 몸을 내던져 희생할 줄 아는 삶의 자세를 가리 킨다. 요즈음 같이 몸을 도사리기만 하며, 앞에 서서 자기현시하기만을 좋 아하는 시대풍조에 정말 노자의 말씀은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그런데 그 몸을 뒤로하는 것은 뒤로함으로만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 몸이 앞서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내 몸을 내던지는 희생적 행위는 희생으로만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 몸이 보존되는 결과 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멋"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自私"함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인간의 "멋"이란 "손해볼 줄 아는 것," "희생할 줄 아는 것"에서 생겨난다.『天長 地久』와 같은 모든 깡패영화에 공통된 주제는, 주인공 깡패의 삶의 자세 가 항상 범인을 초월하여 "後其身"하고 "外其身"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는 것이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이 비록 사회적으로는 불량한 행위의 범주 속에 분류되고 있지만, 무엇인가 인간에게 안타까운 느낌을 주는 "멋"을 발한다는데 있다.『비트』속의 정우성 역이 그러하지 아니 한가? 즉 사회적 악의 범주 속에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선의 가치를 창 출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대개 갱스타 무비장르의 제1주제인 것이다.』 <노자와 21세기> 하권 20쪽-21쪽 노자 할아방 심장마비 걸려 숨넘어가시는 소리 안 들리나? '희생 정신? '깡패의 멋?' 천장지구에 비트? 세상에나. 노자 할아방은 있제. 도올이 차원의 '희생 정신' 은 헌신짝만큼도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이다. 할아방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성인 은 이백성위추구(以百性爲芻狗)한다고. 백성들을 보기를 풀로 만든 강아지처럼 보 는 성인이 무슨 놈의 '희생정신'을 발휘한다 말이고? 할아방이 말하는 '몸을 뒤로 하라는 것'은 나서지 마라, 잘난척하지 마라, 아는 체 하지 말라는 것이고 접속사 이(而)는 '이퀄'의 뜻이다. 그래서 '몸을 뒤로 하기에 몸이 앞선다'가 아니라 '몸 을 뒤로 하는 것으로서 앞세움을 삼는다'라는 뜻이다. '즉 몸을 뒤로하는 것으로 앞세우는 것을 대신하는 것이 성인이다.'인데 만약에 자기가 남보다 앞서기 위한 방책으로서 몸을 뒤로 뺀다면 이런 '후기신'이야 말로 바로 할아방이 가장 싫어하 는 위선이다. 위후기신이 되는 것이다. 남의 뒤에 서기 위해서 몸을 뒤로 하는 것 이어야지 남의 뒤에 서는 것이 남보다 앞서기 위한 방법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다. 맞줴? 설마 할아방이 그런 약삭빠르고 교활한 대글빡을 굴리라고 가르치겠나? '남보다 앞서는 가장 빠른 길이 몸을 남의 뒤로 빼는 것이니라'이런 음험한 수 작을 가르치고 있겠나? 그런기 노자 철학이가? 할아방 욕을 보여도 분수가 있어야 지 안글나? 이런걸 노자 철학이라꼬 테레비 방송국에까지 꼬박꼬박 나가서 배우고 나중에 수료증까지 받은 사람들은 우째야 되노? 여게까지도 괘안타 그 뒷줄로 가면 완죤 골에 쥐내리는 소리를 하고 자빠진다. 그건 다음 회에 구경하자.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