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Hyena ( 횡 수) 날 짜 (Date): 2000년 11월 5일 일요일 오후 01시 51분 50초 제 목(Title): 노자를 웃긴 남자(42) ┌───────────────────────────────────┐ │ ▶ 번 호 : 50/51 ▶ 등록자 : 구름 │ │ ▶ 등록일 : 00/11/04 │ │ ▶ 제 목 : 노자를 웃긴 남자(42) │ └───────────────────────────────────┘ '후기신이신선(後其身而身先)'을 '몸을 뒤로 함으로써 결국은 앞서게 하는 것'이 라꼬 택도 없는 구라를 풀어놓고는 바로 다음 구절 '외기신이신존(外其身而身存)' 을 갖꼬는 얼척없는 잠꼬대를 하고 있다. '외기신(外其身)'을 풀어 '몸을 밖으로 던진다느니 희생정신을 발휘하라는 얘기 라 해쌍께 이걸 뭐라해야 돼? 엽기라는 말로도 표현이 안되부리. 보자고. '외기신' 은 '몸을 그 곳(其)의 바깥에 둔다'는 소리 아이가? 여기서 할아방이 가르키는 그 곳(또는 그것)이 도대체 뭐겠노? 그걸 모르면서 노자를 떠들어서는 안되능기다. 할아방이 말하는 그 곳은 바로 '세상의 바깥', '명리의 바깥', '시비의 바깥', '이익의 바깥'이다. 즉 세상살이에 초연하게 벗어나 있으라는 말이다. '그리하면 네 몸이 안전할 것이니'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유덕화를 본받아 깡패 같은 희생 정신을 발휘하라고라? 돌았나? 도대체 노자의 가르침에서 무엇을 구하는 것이야? 불교식으로 말하면 속세(俗世)를 멀리하고 세상 시비에 끼여들지 말라는 거다. 희 생 정신 발휘하다가 죽은 넘이 한 둘이가? 공자 말씀 지키다가 뒈진 넘이 그 얼마 고, 부처 진리 찾는다고 죽은 넘은 그 얼마며, 예수 말씀 믿다가 죽은 넘은 또 얼 마고? 충성 때문에 죽고, 명예 때문에 죽고, 재물 때문에 죽고, 의리 때문에 죽고, 정 때문에 죽고, 여자 때문에 죽어 나가는 게 세상살이다. 도대체 죽을 이유가 너 무나 많은 위험한 아귀 지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이 성인의 삶이니, 이리 해 야 하늘과 땅이 장구한 것과 같이 네가 탈없이 오래 살 수 있느니라는 훈계다. 노 자 할아방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비를 제일 싫어한다. 희생 정신이야 필요하지. 요 아래 금산님께서 올려놓으신 글의 '태권도 사범'같은 사람은 꼭 있어야 된다. 당연히 권장되어야 할 덕목이나 이 희생정신도 도올이 말하는 깡패들의 수준이 되면 그건 시비의 가름이고 시의 편에서의 폭력이냐, 비의 입장에서의 폭력이냐 그 차이 뿐이다. 노자 할아방은 애국이니, 애족이니, 충성이니, 희생이니, 헌신이 니 하는 것들을 우습게 본 사람이다. 그런 것들에는 발고락 때만큼도 가치를 안 뒀 다는 얘기다. 그런 덕목을 구하려면 공자나 맹자, 순자를 찾아가야지 노자 할아방 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번짓수가 틀린 야그다. 도올이 야가 얼마나 노자를 잘 모르 고 야무지게 헛다리 짚고 자빠지는 안지 이런 대목을 보면 여실한기라. 그런 차원의 세속적인 가치 규범은 털어야 노자를 배울 수 있다. 그야 말로 코스 몰로지적인 가치를 찾고자 하면 몰라도 아직도 '희생정신은 고귀한 것' 따위에 매 달려 있는 사람은 하산하기가 너무 빠르다. 쥐뿔도 모르면서 어디서 천지코스몰로 지가 나오노? 입산도 안 해본 주제에 하산한거 맹쿠로 뻥을 치면 안되제. 할아방의 이러한 탈속(脫俗) 성향은 이 장의 바로 뒤에 나오는 유명한 '상선약수 (上善若水)'란 말에서 다시 접하게 되는데, 물론 그 대목에서도 도올이 보여주는 엽기적인 개그는 환상적이다. 앞 구절을 똑바로 읽지 않으면 뒷 구절과 연결이 안되능기 <도덕경>이란 책이어 서 살신성인하는 희생정신을 부르짖은 도올은 뒤 구절에 가면 걍 대가리를 절벽에 처박고야 만다. 희생정신 갖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말이 뒤따라 나오기 때문 이제. 함 보까? 非以其無私邪,告能成其私 비이기무사야,고능성기사 지가 앞 구절을 잘못 풀어농께로 도저히 이 구절하고 꿰맞출 방법이 있었겠나? 천하의 도올이 이 절벽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꼬랑지를 내리고 만다. 불후의 저작인 <노자와 21세기>에는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이 아예 없다. 할 수가 없었겠지. 해석은 싹 빼묵고 애꿎은 왕삐만 가지고 횡설수설을 한참 하디 구렁이 담넘어가 듯이 다음 장으로 도망가버리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제7장의 전문 번역에 나와있는 한 줄만 가지고 우리는 대학자의 번역을 훔쳐볼 수 밖에 엄따. '비이기무사야(非以其無私邪),고능성기사(告能成其私) '를 '이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오히려 그 사사로움을 이루게 되는 것이니'라 고 풀고 있는데 어떻노? 지가 앞에서 한 소리하고 하나도 안맞줴? 지가 암만 지어내고 싶어도 여기서 할아방이 말하는 '사(私)'가 무엇인지를 만들 어내기 힘들었겄지. 첫 구절의 마지막 '야(邪)'는 문장을 의문문으로 만들어 주는 어조사다. 그래서 풀이는 도올의 번역한 바와 비슷하다. 그러나 도올은 그 말의 의 미를 몰라서 팽개쳐부리고 토낀거다. '이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에서 사사로움이란 말 그대로 개인 적인 이익의 추구, 명리의 추구, 시비의 가림 등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사 로움을 버리고 능히 이룰 수 있다고 한 사사로움이 뭐겠노? 그게 바로 이 우주 전 체보다도 소중한 자기 자신의 생명이요 보존이다. '천하를 얻는다 해도 자기 몸 하 나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래서 언제나 남의 뒤에 서고 명리와 시비 의 바깥에 몸을 둠으로서 하찮은 사사로움은 포기하고 오로지 소중한 자기 한 몸을 탈없이 잘 보존하라는 가르침이시다. 인자 알겄나? 이렇게 읽어봉께로 제7장의 전 체적인 뜻이 쫘악 통하제? '하늘과 땅이 스스로 내보이려 애쓰지 않아서 영원히 이어지는 것처럼 성인은 남 의 앞에 나서지 않고 세상의 바깥에 몸을 두어 명리와 시비를 멀리하여 사소한 이 익들을 버리기 때문에 능히 개인(私:몸, 목숨)을 보존하느니라'는 말씀이 바로 제 7장의 내용이다. '능히 사사로움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그 사사로움을 버리기 때문 이 아니겠는가?'에서 뺑뺑이를 돌다봉께로 이기 앞구절의 '사(私)'하고 뒤구절의 사(私)가 해석이 안되능게라. 그래서 지금껏 노자의 연구서들이 여기만 오면 걍 헛 지랄들을 했던거다. 이 문장에 나오는 두개의 사가 각각 무엇인지를 모르면 노자를 모르는 것이다. 도올이 여기서 직면한 문제는 앞의 구절에서 노자가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자기 몸을 밖으로 던지라'고 했다는데서 비롯된다. 그래 놓고 다음 문장에서 '사사로움 을 이룬다(私)'하니 도올의 나쁜 머리로도 이게 앞뒤가 안 맞는 소리라는 것을 눈 치챈기야. '몸을 던지는 희생정신'과 '사사로움을 이루는 것'이 도저히 연결되지 가 않자나. 그랑께네 할 수 없이 왕필 이야기를 끌어다가 횡설수설하고는 다음으로 도망가 분거다. 다시 말하지만 이 문장에서 노자 할아방이 말하는 '사(私)'는 바로 '자신의 안전 과 보존'이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사상이라고 보여질지 모르겠으 나 할아방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다. 남의 일에, 세상사에 아는 척 잘난 척 나서고 끼이다가 화를 입지나 말고 그냥 자기 몸이나 잘 보존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게 바 로 '능성기사(能成其私)'하는 첩경이다. 노자는 천하의 일보다 자기 몸이 더 중요 하고 소중하다고 본 사람이다. 정의니 인이니 도덕이니 사회니 국가니 하는 따위가 지 하나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는 생각을 가진 게 할아방이다. 물론 그렇게 세상일에 무심하게 초연한 삶을 살아도 누구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할아방이 바라보고 있는 곳이 어딘가? 바로 현빈이다. 그 가물하고 검은 골짜기를 보고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누고? 바로 영원불사하는 신들이다. 그게 신선이 다. 그런 영원불사의 이상향을 꿈꾼 사람이 할아방이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명리와 시비는 하찮은 것으로 보고 초연하려 했다. 구르미가 꼭 그렇자나. 그런데 말이다. 현빈을 가서 '가물한 암컷의 거시기'가 우찌 생겼나 한번 볼라 하면 우선 중요한 것이 비명횡사를 안 해야 된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공력이 높아 도 까불다가 잡혀 죽으면 죽는 거다. 별 수 없다. 삼국지에 보면 우길(宇吉)이란 도사가 오왕 손권의 형 손책한테 까불고 앵기다가 칼에 맞아 죽는 대목이 나온다. 공명과 우길은 노장의 신선술을 공부한 동문이다. 그러니까 노자 할아방의 제자 들이다. 손책이 처음에는 우길을 화형시키려 장작더미 위에 앉히고 불을 붙였는데 우길이 한번 껄껄 웃으니까 소낙비가 내려서 불이 꺼져 버린기야. 졸따구들한테 죽 이라 하니까 전부 뒷걸음을 칭께로 할 수 없이 손책이 직접 칼을 뽑아 우길의 목을 쳐 죽었어, 나중에 죽은 우길의 귀신이 손책을 데려갔다 하나 믿을 수 없는 이야기 고 중요한 것은 제 아무리 도사라도 한칼 맞으면 죽는다는 사실이제. 공명이 적벽에서 동남풍을 부른 것과 우길이 장작더미에서 소나기를 내리게 한 것을 묶어서 호풍환우(呼風喚雨)라 하는데 공명과 우길이 호풍환우하는 재조가 있 어도 세상사에 부대끼는 한 화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할아방은 세상 밖(外)으로 나와 있으라 하는 것이다. 외기신(外其身)! 구름도 할아방의 가르침을 받드는 제자 인지라 가급적 세상에 얼굴 내밀지 않고 조용히 산다 말다. 누가 도올이만큼 못 똑 똑해서 안 설치는주 아나? 한 김에 얘기 하나 더해 주까?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기공무술 단체를 만든 창시자가 한 사람 있었는데, 국 보위 시절에 전통한테 주제넘은 훈계를 했다가 보안사 끌려가서 죽도록 맞고 나온 담에 행방을 감췄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 스스로 수련을 해서 금강체를 이뤘다 는 사람이었는데 보안사 빠따에는 못당했던 모양이제. 이것도 다 할아방의 '외기신 (外其身)'을 안 따른 탓이다. 세상에서 제일 지독하고 무서운 것이 바로 사람이다. 도사 아니라 신선도 사람 손에 걸리면 죽기는 마찬가지다. 기공무술이 보안사 빠 따에 무슨 소용이며, 신선술이 산사람 칼질에 당할 것이냐 말이다. 우화등선하고 현빈으로 들어가면 그때야 산사람들 손이 미치지를 못하니 안전하겠지만 그 전에는 우짜든둥 몸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할아방의 결론이 뭐냐? '도를 딱는 내새 끼들아, 모쪼록 사람들을 조심해라. 호랭이보다 더 무서븐 놈들인께로 가급적 사람 사는 근처에는 가지도 말아라'다. 그런데 호풍환우도 못하는 도올이 뭘 믿고 저리 인간세에 좌충우돌 나대는지 당췌 이해가 안 되분다.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