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Hyena ( 횡 수) 날 짜 (Date): 2000년 11월 5일 일요일 오후 01시 10분 12초 제 목(Title): 노자를 웃긴 남자(37) ◎ 이름:구름 ◎ 2000/11/04(토) 16:52 노자를 웃긴 남자(37) [주 제] 노자를 웃긴 남자(37) ─────────────────────────────────────── '현빈지문"을 '가물한 암컷의 아랫문'이라고 한 도올이 시위천지근(是謂天地根) 을 뭐라고 했는지 함 보자. '이를 일컬어 천지의 뿌리라 한다'네. 지 말이 맞다꼬 쳐도 황당하기 짝이 없제. 기왕에 '현빈지문'을 '암컷의 아랫문' 이라꼬 우길 참이면 '시위천지근'도 '암컷의 자궁' 정도로 우기야 말이 되자나. 근데 곽제 왠 '뿌리'고? '문'이 여성의 상징적인 비유어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뿌리'는 남성의 상징이다. '문'과 '뿌리'는 대칭되는 두 개념으로는 쓰일 수 있 어도 '문'과 '뿌리'가 동일 개념으로 쓰일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문은 드나드 는 것이요 뿌리는 한자리에 박혀있는 것이다. '암컷의 아랫문은 곧 천지의 뿌리다' 이런 말은 대단히 어색하제? 만약에 할아방이 이런 의미로 글을 썼다면 아마도 이 렇게 썼을거다. '현빈지문, 시위천지궁(玄牝之門, 是謂天地宮)' 만약에 암컷의 아랫문이 뿌리처럼 요지부동이면 숫컷들은 우찌할끼고? 난감하제? 자고로 문이란 잘 열리고 닫혀야 되는거고 뿌리란 튼튼해야 되능기다. 도올이 이렇게 번역을 해놓고는 지가 봐도 어색했던지 이런 소리를 해놨다. '여성의 성기야말로 모든 생성의 뿌리다' 해놨다. 역시 도올이 철이 들긴 들었다. 억수로 점잖제? '여성의 성기'라. 더 쉬운 말도 있는데. 도올은 웃기는기 꼴에 페미니스트 흉내를 내거든. 인상이 험악한 남자들일수록 페미니스트가 많은 이유에 대해 사회인류학적인 고찰을 해본다면 아마 박사 학위 쯤은 쉽게 따끼야. 도올은 또 '따라서 우주적 암컷의 성기(아랫문)야 말로 천지 의 뿌리라고 노자는 갈파하는 것이다.'라고 헛소리를 계속 한다. 하지만 천마네이 숀이다. 노자는 그렇게 갈파한 적이 없다. 할아방을 어슬픈 페미니스트로 맹길지 마라. 그리고 노자 철학을 '여성성의 우월'을 갈파한 페미니즘으로 둔갑시키지 마 라. 우주적 암컷의 성기가 천지의 뿌리라면 우주적 수컷의 성기는 도대체 뭐고? 줄기가? 열매가? 가지가? 아니면 우주적 수컷의 성기는 아무 쓸모도 없나? 도올의 엽기적인 개그를 조금만 더 보까? 『항상 뽐내고 으시대고 잘난 체 하는, 봉우리같이 불뚝 불뚝 서있기 좋 아하는 남성들이여! 항상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며 수모 받는 낮은 자 리에, 소리 없이 숨어있는 여성들을 우습게 보지 말라! 아무리 그대들 이 뽐낸다 한들, 높은 것은 결국 낮은 것으로 되돌아오게 마련이요, 소 리는 아무리 질러봐도 침묵으로 돌아가게 마련이요, 참은 빔으로 돌아 가게 마련일지니, 남성이란 여성이란 대지 위에 흩날리는 티끌만도 못 한 존재로다! 남성이란 생멸의 한 고리에 불과한 잠시적(ephemeral)이 라고 한다면, 여성이란 모든 생멸의 근원자로서 영속적(permanent)인 것이다.』 <노자와 21세기> 상권 262쪽 도올은 구르미한테 한번 딥따리 깨지고 나면 저런 잠꼬대를 할 생각을 못하게 되 끼야. 위의 글은 페미니스트인척 하는 머시마들의 심리적 저변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여성을 찬미하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성을 깔보고 능멸하는 황당무계한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전형이다. 여성 예찬이 아니라 여성 비하의 글이다. 페미 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성들일수록 의식의 심층에는 여성 비하 의식이 더욱 강하게 도사리고 있음을 나는 본다. 말로는 여성을 위하는 것 같으나 그 행동은 극히 남성 이기주의적인 것이다. 이게 바로 노자가 미워하는 '꾸밈(爲)'이다. 여성을 귀히 여 기지 않으면서 귀히 여기는 것처럼 속이는 것. 바로 '위여귀(爲女貴)'이고 '위(爲) 페미니즘'이다. 여성들은 이런 소리에 속으면 안되나니 불퇴전의 의지로 남성다운 남성을 찾아야 할지라. 구름이 페미니즘 사조를 경멸하는 이유는 페미니즘에는 사 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우주적 암컷의 아랫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암컷은 있어도 우 주적 암컷은 없다. 우주적이라는 말속에는 암수의 구별이 끼여들 여지가 없다. 현 빈이라는 곳은 남자로서 또는 여자로서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우주라는 것은 음 양의 조화체이지 양이 아닌 것처럼 음이 아니다. 우주적 개념에 암수의 구별을 한 다는 것은 '여호와'가 남자라고 우기는거나 마찬가지다. 도올은 '우주적 암컷'이 라는 말이 얼마나 웃기는 말인지도 모르고 있다. 이쯤 하고 다음 구절로 가보까? 綿綿若存,用之不勤 면면약존,용지불근 도올 왈 '이어지고 또 이어지니 있는 것 같네.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도다.' 라 해놨다. 앞에서 '이용지 혹불영'을 '아무리 퍼내어 써도 마르지 않네'라 했던 것과 똑같은 지랄 육갑이 또 나오제. '면면(綿綿)'은 할아방이 처음 쓴 이래 지금도 우리가 자주 쓰고 있는 말이다. '면면히 이어져 온 전통'과 같이 말이다. '면(綿)'은 '솜 면', '잇닿을 면', '끊 어지지 않을 면'이다. 이 면이 두개가 중첩되면 '이어지고 이어진다' '끊임없이 연 결된다'는 의미다. '약(若)'은 '같을 약'이지만 '혹시' 또는 '만약'의 의미로도 쓰 이고 어조사로 쓰일 때는 앞뒤 연결 관계에 따라서 여러가지 뜻으로 옮길 수 있는 글자이다. 이 '약'을 도올은 '같을 약'으로 읽어서 '약존'을 '있는 것 같네'라고 옮겼다. 하지만 이것도 한문 번역을 제대로 못하는 초딩이 같은 짓이다. 이 문장에서의 '약'은 앞뒤 구절의 문맥상 의미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어조사로 기능 하고 있다. 뒤 구절의 뜻을 먼저 보자. '용지불근(用之不勤)' 불근은 말 그 대로 '부지런하지 않음'이다. 달리 말하면 '나태하고 게으른 것'이 '불근'이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쓰임에는 게으러다'는 뜻이다. '혹불영'☜'채워져 있지 않 다'와 맥락을 같이 하는 글이다. 즉 '현빈'이라는 것은 천지의 근원으로서 영원히 존속하는 것이지만 쓰임(用)에는 게으른 것'이라고 할아방은 다시 한번 말하고 있 다. 때문에 '약'은 '∼이지만' 또는 '∼일 뿐'이라는 어조사가 되는 것이다. '면면약존, 용지불근'을 보기 좋게 옮기면 '영원토록 이어져올 뿐 쓰임은 없느니 라'가 된다. '용지불근'은 곧 '이용지혹불영'이고 '도무용'이다. 부처의 해탈은 윤회의 사슬을 끊은 한 개인의 해방이고 완전한 자유를 의미하지 만 그것은 곧 이 세계와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한다. 차안과 피안의 강은 너무나 넓 고 깊어서 한번 건너가면 그걸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이다. 피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차안의 입장에서 피안은 아무 소용이 없는 땅이다. 그것은 그 곳으로 건너가버린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아직 차안 에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무용지지(無用之地)다. 오직 한가지 그 곳으로 갈 수 있는 희망으로만 존재한다. 나무 한그루, 석탄 한조각, 과일 한개 그곳으로부터 가져올 수 없음이다. 그래서 할아방은 '이용지혹불영', '용지불근'이라 말하는 것이다. 도올이처럼 <도덕경>을 읽으면 이기 완죤 '개그집'이 되분다.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