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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Hyena (  횡 수)
날 짜 (Date): 2000년 11월  5일 일요일 오후 01시 08분 16초
제 목(Title): 노자를 웃긴 남자(35)   


◎ 이름:구름 
◎ 2000/11/04(토) 16:50
 
 노자를 웃긴 남자(35)   



[주    제] 노자를 웃긴 남자(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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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신불사,시위현빈'은 '신이 영생불사하는 계곡이 있으니 그 곳을 가리켜 현빈

이라 하느니라' 하는 말이다. 고대 지나나 인도인들이 생각하는 신은 영원히 존재

하여 불사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부처, 보살, 신장은 인간

세의 수명에 비하면 영원한 시간상의 존재이지만 그것들도 모두 인연법에 의해 나

타난 존재일 뿐이어서 언제나 인연이 다하면 돌아가는 것이며 영원불사하는 존재는

없다고 본다. 생자필멸은 불변의 법칙이며 영적인 존재인 신들도 여기에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 시간적 개념이 비록 억겁으로 센다 해도 인간세 60년이나 부처의 억

만겁이나 영원의 관점에서 보자면 찰나지간이긴 마찬가지이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암만 멀어도 무한한 우주 공간적 거리에서 보면 지구상의 개미가 1분 동안

기어가는 거리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신이 죽지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불교적으로 유추하면 그것은 

해탈의 경지이고 도피안이다. 해탈이란 인연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인연법이야 말

로 모든 존재를 현상계에 내보내는 세계의 법칙이다. 인연법의 구속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은 세계의 저편으로 건너간다는 것을 말한다. 즉 이 세계의 모든 것과의 영

원하고 완전한 작별이다. 아디오스 발발탄이다. 부처는 이 세계와 저쪽의 경계를

넘어가 버린 사람이다. 그래서 실제로 부처는 우리와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는 존

재이다. 다시 말하면 구름이 아무리 부처님 전에 엎으려 애처럽게 빌어도 부처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만약에 그 소리가 들리고 그 간절한 하소에 부처의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있다면 부처와 구름은 인연에 의해 연결되는 상대자가 된다. 부처

역시도 구름과의 인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부처의 해탈은 뻥에 지

나지 않는다. 완죤 구라다. 불교가 만약에 이렇게 엉성하고 유치한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이었다면 구름은 옛날에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이제 너희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다' 즉 할아방이 말하는 도(道)의

존재로 돌아가버린 사람이어서 너희들에게는 무용(無用)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다.

 그래서 죽은 부처한테 절하고 공양을 하고 염불을 해봤자 기대할끼 없다는 얘기

다. 우리한테 소용이 되고 도움이 되는 것은 부처가 아니라 부처가 남긴 가르침이

고 그 말씀들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돌아가실 때에 제자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등

불로 삼으라 했던 것이다. 부처가 저쪽 세계로 아주 가버려서 아무런 영험도 없고

기도빨도 안듣는다면 우리같은 중생들 입장에서는 이기 믿을 이유가 없자나. 말씀

인즉슨 진리라 쳐도 중생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아플 때 낫게 해주는거고 돈 잘

벌게 신이 도와주는거고, 얼라 못낳는 여자 아들 하나 뽑아내게 해주는거 아이가?

 맞줴? 그런데 무신 영험이 있어야 사람들이 모이는게라. 이기 종교다. 그래서 불

교에서 영험없는 부처 대신에 가오 마담으로 내세우는기 뭐꼬? 바로 보살들이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같은 보살들이 피안으로 영영 가버린 부처를 대신해서 중

생의 소원을 들어주고 어려움을 풀어준다. 이게 보살 신앙이다. 보살들이란 어떤 

존재냐? 부처님처럼 아주 '현빈'으로 가버릴 수도 있었던 사람인데 고해에서 신음

하고 인연법에 묶여 고통받는 중생에 대한 가련함과 측은지심 때문에 마지막 한발

자국 앞에서 해탈을 스스로 포기한 분들이다. 중생을 제도하고 구언해주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여 인연법의 세계 속에 자신을 남긴 사람들이 바로 보살들이다. 이런

보살들은 실제로 기도에 응답을 하고 영험도 보여준다. 지장보살은 이 세계의 마지

막 한사람까지 제도하고 지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이 모두 구원을 얻은 다음 지옥

불이 완전히 꺼지는 것을 본 다음에라야 부처님 뒤를 따라가겠소이다 하고 부처님

께 발원한 사람이다. 이런 보살들은 겁의 세월을 두고 자신의 약속을 키기고자 하

겠지만 그것도 인연이 다하면 부질없이 잊혀질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제행이 무상

커늘 보살심이랴.

 하여간에 지금 부처가 가계신 그런 곳을 할아방은 일컬어 '현빈'이라 하는거다.

 신이 죽지않고 영원 불사하는 곳. 그런 곳은 인연에 따라 성주괴공하는 이 세계

와는 다른 곳이다. 그러나 그 곳이야 말로 이 세계가 있게 된 근본이다. 이 세계가 

그 곳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이다. 그것이 바로 열반의 세계요, 피안이며, 도요, 현빈

이다. 바로 할아방의 '현빈지문,시위천지근(玄牝之門,是謂天地根)'이 그말이다.

 '현빈'의 들어가는 입구야말로 천지의 근본이다'라는 말이다. 부처님이 넘어가

버린 그 문이 바로 '현빈지문'이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중생의 고통에 찬 신

음소리에 뒤돌아보다가 차마 넘지 못하고 발걸음을 되돌린 바로 그 자리가 '현빈지

문'이다. 구름이 안으로 들어가 버릴려고 마음을 독하고 모질게 다잡기를 되풀이하

고 있는 바로 그 문이다. 그 문을 여는데는 정말로 모질고 독한 마음이 필요하다.

 두고가는 형제들, 자식들, 모든 사랑했던 사람들, 생명의 유혹과 그 본능까지도

다스려잡지 못하면 넘지 못하는 문이다. 자기 자신을 소멸시키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그 곳이야말로 우주의 근본 자리이고 영원불사하는 세계이며

고통과 슬픔과 비참이 없는 곳이며 우주와 내가 일체가 되는 자리이다.

 기독교인들이 생각할 때는 그리스도가 황금보좌에 앉아있고 그 우편에 베드로가

왼편에 바울이 있으며 천사 미카엘이 그 날개로 이 세계를 덮고 서있는 그 장소가

바로 '현빈'이다.

 이런 심각하고 엄숙하고도 진지한 철학적 명제를 논하는 자리에 '가물한 암컷의 

아랫문'을 들고나오는 꼴갑은 우찌해야 되겄노? 이걸 강의라꼬 하고 자빠지는 꼬라

지를 언제까지 두고봐야 되겠노 말이다. 도올이 도를 알려면 한 겁의 윤회가 더 필

요하끼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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