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Gatsbi (궁금이) 날 짜 (Date): 2000년 4월 12일 수요일 오후 10시 03분 43초 제 목(Title): [흥미로운 문화산책] 노자 카이스트 신문에서 퍼옵니다. ******* [흥미로운 문화산책] 자연과 삶 그 자체를 노래했던 인간, 노자 노자 강의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도올 김용옥, 방송 도중 느닷없이 방청객들에게 묻는다. “20세기 최고의 음악이 뭔지 아시오?" 빙긋 웃으면서 대답을 기다리더니, 대뜸 이렇게 말한다. “그건 바로 비틀즈의 ‘렛 잇 비'요. 삶에 지친 60년대 히피족들은 자신들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 외칠 수 밖에 없었던 거지. 그런데 이게 바로 노자 철학이오" 노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기원전 약 500년 경으로서, 인도의 석가모니 등 수많은 사상가들을 배출했던 고대 문명의 절정기였다.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던 당시의 중국 학계에서는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등 네 학파의 영향이 가장 컸는데 이중 도가의 창시자이자 정신적 지주가 곧 노자이다. 노자는 유가를 이끌던 공자와도 동시대인으로 초나라에서 태어났으며 주나라에서는 국가 장서를 관리하는 사관으로 취직(?)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생존연대와 이름 그리고 실존 여부조차 학자들 사이에서는 논쟁이 되고 있다. 노자라는 이름도 단지 ‘늙은이'라는 뜻일 뿐 그의 부모가 누구이며 실명은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노자의 이름이 이이라고 소개되어 있으나 신뢰할 수 없는 기록이다. 그는 90세까지 장수했지만 놀랍게도 주변 사람들은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 노자는 그저 평범한 노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명성을 떨쳤던 공자와는 달리 노자는 극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알아줄 뿐이었다. 노자는 공자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고도 전해진다. 천하를 유랑하던 공자가 수소문 끝에 노자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공자가 물었다. “도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노자는 대답했다. “만일 당신이 부도덕하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도덕 따위에 관한 문제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도덕을 지닌 사람은 도덕이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당신도 남보다 뛰어나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인격이 뛰어난 군자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합니다" 당대 최고의 사상가였던 공자가 이름도 없는 일개 노인에게 호되게 당한 셈이었다. 그 후로 공자는 노자를 용과 같은 사람이라 부르며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생전에 남긴 책은 ‘도덕경' 단 한 권 뿐이다. 그나마 5천자밖에 되지 않는 분량으로, 한자를 웬만큼 아는 사람이라면 한나절에 다 읽고도 남을 만한 분량이다. 이 책의 저술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속세를 떠나 산에 들어가려는 노자를 그의 제자들이 감금해놓고 3일 동안 억지로 책을 쓰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단순한 전설에 불과하며 기원전 6세기에 쓰여졌다는 설 등 다양한 추측이 난무할 뿐 정확한 연대 측정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노자가 쓴 책이 아니라는 연구자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일관성을 갖추고는 있지만 여러 다른 문체가 섞여있는 것으로 보아 도교 지도자들이 공동 집필한 저서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저자가 누구이건간에 도덕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노자임에 틀림없다. 도덕경은 81장으로 나누어지며, 도경(1-37장)과 덕경(37-81장)을 통틀어 도덕경이라 부른다.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가 한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최근 노자 연구가 가속화되고 있어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지만, ‘무위 자연'으로 함축되는 그의 기본 철학에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노자는 인위적인 가식과 위선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기 모습대로 살아가는 무위 자연의 삶을 이상적인 삶으로 보았다. 여기서 무위란, 아무 일도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서양적 사고 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동양적 사고의 기틀이 그에 의해 이룩된 것이다. 한편 노자는 상대성을 깊이 탐구한 동양 최초의 사상가이기도 했다. “길고 짧음도, 높고 낮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로부터 그는 세상에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아마도 그가 수학을 공부했더라면 아인슈타인보다 일찍 상대성 이론을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론적으로 노자는 불완전한 의식 세계에 대한 비판(“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며,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과 자연에의 순응을 강조하며 도덕경을 끝맺고 있다. 지나친 욕심에 병든 현대인들이 노자로 회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예와 법률로 인간을 옭아매려던 공자는 사라졌지만 자연과 삶 그 자체를 노래하던 노자는 도리어 현대에 와서 더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충훈 기자 chl@kaist.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