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mason ( 템플라) 날 짜 (Date): 2000년 2월 24일 목요일 오전 10시 51분 12초 제 목(Title): Re: [펌] 양주와 노장사상 한비자는 노자의 영향을 깊이 받았습니다. 실제로 한비자의 저술 중에 해로(解老), 유로(?老)라는 노자 해설서가 있기도 했죠. 한비자는 "??의 왕이 용맹한 자를 좋아하자 백성 중에 생명을 가벼히 여기는 자가 많아졌고, ??의 왕이 허리가는 여인을 좋아하자 백성 중에 굶어죽는 이가 많았다."라는 예들을 통해 위정자가 반드시 스스로의 호오, 의지 등등을 감추고 오로지 공평무사한 법에 입각하여 모든 것을 처리할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작위를 없애고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긴다.'는 노자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죠.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한비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만 않았어도 노장사상이나 법가의 위치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비자는 "지금을 읽어 과거를 안다."는 노자의 정신을 따라, 과거의 범규를 철저히 따르고자 하는 유가를 '뭘 모르는 것들'이라고 신랄하게 공격합니다. 진이 망하고 나서 유가에서 보면 법가는 타도 일번지였겠죠. 노자의 사상이 그렇게 실천하기 힘들거나 허무주의적인 요소가 많았다면, 혹자의 말을 따라, "살아있는 말의 눈알을 빼먹는 듯한 춘추시대에 노자는 밥도 못 얻어 먹었을 것이다." 일례로 노자는 일종의 병법서로도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근대에 노자의 고본이 발견된 장소도 마왕퇴로 항우의 애첩의 묘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손자병법이나 육도삼략, 춘추전국시대의 전쟁일화 등을 보면 노자나 장자의 말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이 발견됩니다. ---------------- 나의 왼쪽은 너의 옳은쪽이다. :homo sapiens quantum gravitius:mason@kid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