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Hyena ( 횡 수) 날 짜 (Date): 2000년 2월 24일 목요일 오전 10시 34분 33초 제 목(Title): Re: [펌] 양주와 노장사상 반고의 글에 대해서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도가가 현실 도피적이라는 말은 잘못된 의견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노자에도 수많은 정치론이 들어 있습니다. 노자 사상이 현실 도피적이라면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정치에 대해, 지도자의 도리에 대해 떠들 필요가 없지요. 원시 도가 때는 도가 사상이 지배 세력의 통치 이념의 하나로소 분명히 고려됐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날수록 점점 지배 세력들이 보기엔 그들이 행하기에는 너무 벅찬 사상이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보았기에 배척한 것이라고 봅니다. 노자의 가르침이란 것이 왕이라고 튀지말고 無爲로서 통치하라는 데, 통치자들이 보기엔 그런 유명무실하고 힘겹기만한 역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겁니다.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유가 또는 법가가 그 구미에 맞았을 겁니다. 그래서 秦은 한비자의 법가를 채택해서 최초의 통일 제국을 이룩한 것이고, 漢나라도 유가와 법가를 통치 이념으로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노장 사상은 위진 남북조 시대와 수당 시대에는 지배 이념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나라 태종과 현종의 시대는 정관의 치, 개원의 치라고 하며 훌륭한 통치의 본보기로 대표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하여간 전체적으로 따져 볼때 노장 사상은 대체로 억압당하는 쪽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노장 사상이 정치적인 참여의 면을 띄고 있었음에도 불고하고 현실 정치에서는 그 사상을 실현할 기회가 적었습니다. 이러한 측면은 노자를 해석하는 중국의 지식인층들이 노자 사상의 현실 참여적인 면을 보지 못하고 현실 도피적으로 해석하는 편벽된 노자 이해에서 비롯된 탓도 있습니다. 여기서, 플라톤의 예가 생각나네요. 어느 섬나라 왕이 플라톤을 존경하여 그의 '국가론'에서 펼친 높은 이상을 이 섬나라에서 실현할 기회를 줍니다. 그러나, 플라톤의 국가론을 자세히 들은 그 왕은 극가론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그가 철학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격노해서 플라톤을 붙잡아 가두고 노예로 삼습니다. 플라톤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겨우 그 섬을 빠져 나옵니다. 노자와 플라톤의 예에서 보면 현실 정치는 훌륭한 사상을 구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