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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chaconne (샤콘느)
날 짜 (Date): 1999년 11월 13일 토요일 오후 06시 07분 00초
제 목(Title): [펌] [세기를 넘어] 6. 실존주의


[세기를 넘어] 6. 실존주의

    
                     관련기사: 
                     .  [세기를 넘어] 6. 파리7대학 철학과 파트릭 보데 교수 
                     .  [세기를 넘어] 6. 차 한잔의 토론 '철학 카페'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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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밀레니엄 기획의 일환으로 경남대(총장 박재규) 와 공동으로 기획취
재한 '세기를 넘어' 여섯번째로는 실존주의를 마련했다.

20세기 인물.사상.사건의 현장을  찾아 21세기의 대안을  모색하는 이 기획에서 
실존주의를 선택한 것은 20세기 초.중반의 역동적 세계사적  과정에서 실존주의
가 '실천적 지식인' 의 전형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모순이 폭발적으로 들어난 1,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
면서 발생하고 성장한 실존주의는 주체의 선택에  의한 역사의 진보와 그에 따
른 책임을 강조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서도 지식인 사회의 지적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던 실존주
의가 비록 흘러간 철학사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남긴 지적 유산을 지면을 통
해 되새겨 보고자 한다.

"사르트르 선생. 당신이 남긴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다. 당신이 남긴 것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생각하고 존재하고 느끼기  때문이다. … 보부아르 여사여. 
모든 여성의 삶을 인간답게 만든 당신에게 감사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당신
들이 함께 보여준 '사랑과 자유의 일치' 를 감사한다. " 

또하나의 주검이 묻히고 있던 파리시 외각 몽파르나스 묘지. 정문  우측으로 약 
20여m를 가면 초라하리만치 평범한  비석이 세워진 이들의  무덤을 발견할 수 
있다.

석단은 일본인들이 놓고 간 꽃다발과 추념을  표시하기 위해 작은 돌멩이를 얹
어 놓은 지하철표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사랑과 자유의 일치' 를 
헌사한 독일인의 쪽지가 눈길을 끌었다.

'사랑과 자유의 일치' -. 그것은 세계 2차대전이라는  인류 최대의 비극 속에서 
성장한 참여적 지식인에겐 투쟁의 목표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생전에 지식인들과 토론을 즐겼던 생 제르맹 거리의 카페에 
들렀을 때 그곳에서 강렬한 초가을의 햇빛을 즐기던 사람들에겐 그것이  '현실' 
이었다.

카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프랑스 지성의 심장' . 그곳에는 소르본 대학
과 사르트르가 1924년 레몽 아롱.폴  니장.조르주 캉귀엠.장 이폴리트.메를로 퐁
티 등 60년대 이후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인물들과 함께 입학한 파리고등사
범학교(Ecole' Normale Supe' rieure) 가 위치해 있었다.

사르트르가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 으로 세간의 화제를 뿌리면서  평
생 동안 지적.정서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자유를 위한 고뇌와 
사랑의 열정이 어우러진, 당시 이곳에 모인 인문주의자들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
다.

실존주의의 등장은 1, 2차 세계대전 전후 나타난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지식인
의 대응이었다. 19세기 말 키에르케고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해  20세기에 들어
와 비로소 철학.문학.예술적 이론.경향으로 자리잡은 실존주의. 그것은 합리주의.
객관주의.기계주의가 지배, 산업화.대중화되면서  개인의 진정한 모습이  퇴색해 
가는 시대상황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이에 대한 실존주의의 결론은 이렇다. "인간은 미완의 존재로서 상황 속에 존재
한다. 그러나 인간은 상황 속에서 자신을 내던짐(企投.Ent-wurf) 으로써 주체성
을 획득한다. 주체성은 자신을 자유로이 창조한다는 의미에서 자유다. " 

사르트르를 본격적인 참여적 지식인으로  변모케 한 것은 2차대전.  선전포고와 
함께 소집돼 참전했다가 곧 포로가 된  그는 41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해 퐁티
와 보부아르 등 뜻이 맞는 친구들과 서클을 만들어 문필활동을 시작한다.

사르트르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역작은 43년 발표한 '존재와  무' 였다. 비록 당
시엔 널리 읽히지는 않았지만  상황에 대항하는 의지적인  투쟁을 통해 자신의 
자유를 주장한 이 책을 통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는  명제를 확
정한다.

자유와 책임.휴머니즘을 강조한 사르트르는 2차대전을 통해  지식인들이 경험한 
레지스탕스의 도덕적 가르침을 구체화한 것이었다.

'사르트르 평전' (로로로 출판사刊) 의 저자 발터 비멜(전 국립예술아카데미) 교
수는 사르트르의 메시지를 이렇게 요약했다.

"누구도 우리에게서 우리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할 책임을 제거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어떠한 길이 우리 자신이 찾고 있는 길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다. 실존적 선택이 과학적  전망을 결여할 
경우 역설적으로 상황에 매몰되는 니힐리즘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같은 
실존주의 동료들 사이에서도 어떤 정치적 전망을 갖느냐에 따라 논쟁과 갈라섬
은 불가피했다.

2차대전 후 사르트르가  선택한 전망은  인간적 마르크스주의였다.  사르트르가 
1946년 '현대' 지에 쓴  '유물론과 혁명' 에서 그는  인간학적 문제들을 결여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변증법은 인간의 실천을 통해 끊임 없이 물화를 극
복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사르트르는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미 제국주의로부터 사회주
의의 가능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 때문에 한국전쟁.헝가리 부다페스트 
침공을 소련의 침략행위라고 규정한 퐁티와 갈라서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을 버리기까지는 '프라하의 봄' 을 기다려야만 했다. 1960
년 전후 제3세계의  민족해방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오랜  친구 알베르 카뮈와의 
결별은 불가피했다.

사르트르는 알제리의 심리학자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을 자들' 의  서문
을 써 프랑스에 소개하면서 알제리 전쟁에  반대했던 반면 카뮈는 알제리 독립
에 찬성하지 않았다. 카뮈는 57년 노벨상을 받았을 때 알제리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누군가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버스 위에 폭탄을 터뜨린다면, 그리고 그 버
스 안에 나의 어머니가 타고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자유를 지지할 수 없다. 그것
은 정의롭지 못하다. " 

미 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 7월 19일 '세기의 목소리' 라는 연재기사에서 '알제
리에서 자라나 배고픔을 경험했던 카뮈와 프랑스 유수의 부르주아 출신인 사르
트르, 인간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믿는 사르트르와  우연적인 사
건을 더욱 믿었고 사고로 죽은 카뮈' 로 두 사람의 차이를 설명했다.

모순이 폭발했던 20세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그가 오늘날의 지식인에게 남긴 것
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보편적 지식인에  대한 요청일 것이다. 65년 일
본에서 개최된 '지식인을 위한 변명'  이라는 강의에서 규정한 "자신의  이익과 
상관 없이 인간과 사회의 전체적 이해를  위해 일반적으로 인정된 진리와 행위 
전체를 문제삼는 지식인" 이야말로 이 시대가 또다시 요청하고 있는 것은 아닌
가.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 편집국에서 만난 리베라시옹의 창간자 중 한 사람이
자 철학 전문기자였던 필립 가비는 왜  지금 사르트르를 다시 기억해야 하는지
를 이채롭게 설명했다.

"사르트르의 인격과 저작은 상호분리될 수  없이 한 세기를 특징지은 지식인상
(像) 을 세웠다. 현재와 같은 신 자유주의가 계속  지배해 한계에 이르게 될 때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갈등이 증폭될 것이며, 그때 사르트르의 보편적 지식인은 
하나의 전범(典範) 이 될 것이다. " 

1980년 4월 폐암으로 죽을 때까지 모든 권력과 권위를 배격한  '철저한 자유인' 
사르트르-. 그 기억은 권력이나 권위의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늘날 프랑스인
들이 향유하는 자유, 그 자체가 사르트르의 기억일 뿐이다.


파리〓김재현(경남대.철학) 교수,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입력시간: 199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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