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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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가 맞음...)
날 짜 (Date): 1999년 3월  8일 월요일 오전 02시 21분 59초
제 목(Title): 포로리님에게... 2 (약간 수정)


(기독보드에서 글이 이어집니다. 한번 올렸다가 사소하게 고쳐서
 다시 올리네요.)

>  a) 선악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매우 많다. 
>  b) 선악의 구분은 본질적으로 모호하다.
>  
>  a) 는  반박이 불가능한 사실 명제입니다. 사실 이건 기독교인들도
> 반박할 수 없습니다. 실제 그런 상황들이 무수히 우리 앞에 
> 산재해 있고, 기독교인들이 흔히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서.."
> 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도 그만큼 그런 상황을 스스로도
> 아주 많이 겪기 때문입니다.

>  제가 앞에 써왔던 글은 b)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해본 것 뿐입니다.
> 우리의 상식 선에서 받아들여지는 시공간적 '조건'을 잘 명시한다면,
> a) 를 수용한다고 해도 b) 라고 까지 굳이 주장할 필연적 이유는
>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b)의 '모호하다'는 술어가 그렇게 적합해 보이지 않습니다.
혼란을 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지요. 저 같은 사람이 주장하는 것을,
포로리님 식으로 적어보면...

  주장1) 선악 구분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다

입니다. 상대적이라도 한 개인에게 있어 관점은 명료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통은 상대적이라해서 모호하다고까지 이야기하지는
않지요.
  주장1)은 물론 포로리님의 a)와 같은 관찰 결과를 토대로 얻어진
것입니다만, a)로부터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도출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a)로부터 일종의 귀납적 추리 결과 얻어진 것이지만,
아직 입증은 유보된 상태입니다.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제가 주장1)을
완벽하게 입증할 수 있을까는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만, 주장1)이
최소한 아직까지는 반증 불가능하며 충분히 유용성을 가진 주장이다
라는 점은 보일 수 있습니다.
  스테어님에게도 위와 비슷한 문제를 지적하시던 것 같던데,
아마도 스테어님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와 비슷할 것입니다.

  기타 기독보드의 포로리님 글에서 걸려했던 것을 적어보면...

> (1) 구분을 통한 이분법적인 사고의 가능성
>    (보편적인 - 명료한 - 구분 이 가능한 경우 역시 존재함)

> (2) 이분법적인 사고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행위 
>     (일반적인 행위로서의 당위성 부여 시도)

>  '유익함'과 '불리함'은 나름대로 좋은 표현일지 모르나,
> 각 개인의 감정 정도에만 국한하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제가
> 이에 대비해서 선악 개념을 쓴 것은 (1), (2) 의 경우로부터
> 비롯하고 가장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하시던데요. 주관의 "사회적 공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그런 문제는 쉽게 풀리지요. 개인의 주관에
의해 구분되는 유익함과 불리함이 다른 사람과 공유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포로리님이 제기하신 설득이나 동의를 구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요, 선악 개념이 상대적이면서도 인간이면 대개
비슷한 구분 기준을 가지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관의 사회적 공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면 특별히 유익함과
불리함이 개인의 감정에 국한하고 공유 가능성에 대한 고려를
제한한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군요.
  왜 그럼 주관을 사회적으로 공유해야 하는가? 그것은 인간
자신의 경험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경험을 통해서
인간은 경험(그 본질이 객관세계로부터 나온 것인지 다른 류의
세계관에 의한 것인지는 보류하고)을 통해서 자신과 동등한 다른
인간과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요구받고 있으며, 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생각과 입장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배우게 되지요. 그러면, 왜 인간은 그런
것들이 좋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가? 보통의 인간은 살아가고
싶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살아가는데 좋은 방향으로
행위하고 싶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인간이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 아시겠지만, 이것은 특정
세계관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이상 제게 물어봤자 답이 안나옵니다. ^^

(세계관의 전제를 예를 들면, 객관세계를 인정하고 진화론 같은
인간 형성 과정을 인정한다면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혹 인간 성질의 근원에 대해 확답 못하면서 어떻게 주장1)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느냐는 의문을 달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경험과
세계의 본질을 모르면서도 과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답이
쉽습니다. 인간과 그 경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해도 인간의 선악관과
그 발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선까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 쇼팽님 때문에 하위개념 상위개념 이런 이야기가 한창인데,
어떤 구조체의 하위 구조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구조체를
단위체로 보고 단위체의 특성과 영향을 어느 정도 선까지 이해할 수
있다는 점과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살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살인이
재미있을 수도 있고, 그것이 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선악관은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선악관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자기 존재까지도 위협받는다는
것을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결국, 살인을 행하는
것이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에 위배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이지요.
(하나 더 참고로... 제가 처음 환상님의 살인관을 봤을 때 무척
황당했습니다만, 차츰 환상님이 살인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이해 못하는 분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

>    <1> 선악기준의 상대적인 해석을 '극단적'으로 확대한 egoism
>    의 주장 역시 기본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전제하고 있음.
>    즉, 자기 모순적인 요소가 흔히 발견됨.
>    (->  예를 들어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다"라는 명제가
>         갖는 논리적 오류와 비슷한 흐름으로 생각하면 됨)

>   <2>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를 권유한다던가 
>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가 없음.
>    ( -> 그러나 주창자 대부분 그런 식의 행태를 가지게 됨 )

  egoism의 주장 내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주관의 사회적
공유'라는 점을 고려하면, 제 주장1)은 이런 반박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앞에서 이미 그 '어느 정도의 보편성'과 '설득'의
근거에 대해서 이야기했지요.
  그런데, 여기서, 선악의 구분은 누구나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악관에 대해 막연히 어떤 보편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문제를 검토해 볼 수 있겠군요. 우리가 객관세계를 인정할 때,
객관세계의 각 존재들에게는 자기 존재 계속의 관점에서, 주변
존재들이 계속 존재하는데 유익하게 작용할 수도 있고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객관세계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기 존재의 계속에 유익한 것과 불리한 것을 경험하게 되지요.
어떤 존재나 유익한 것과 불리한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누구나
'좋고 나쁜' 것을 가리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가지게 된다는 것이 누구나 같은 것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선악관에서는, 발생의 보편성은 있지만
구체적 구분 기준은 상대적이라는 점)에 주의하지 않으면, 뭔가
막연한 보편성이 있을 거라는 환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러면 왜 우리가 존재의 계속에 대해서 분리된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가 하는 질문은 위에 설명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의미없습니다.

  그럼, 포로리님의 선악관에 대해서...

> '공동의 유익함'을 의도한 합의에 대한 본능적 필요라고
> 말씀하시겠지만, 저는 '인간에게 그런 기준에 대한
> 일정의 도덕적 요구가 이미 있었다' 라고 봅니다.
>  서로 반박의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일정의 도덕적 요구가 무엇입니까?

> 근데 왜 가치 판단 행위의 가능이 여러 사람들에게서, 어떤
> 경우에는 절대 다수에게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걸까요?

>  저는 이에 대한 설명이 선/악 개념으로 더  ' 단순하게' 
>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child님
> 이 뒤에 시도한 설명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그것은
> 제가 생각하는 개념 자체에 대한 반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 아닌 어떠한 것으로의 환원도 거부하는 절대 선/악 기준을
> 겨냥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이런 이야기 때문에 제가 포로리님이 주희의 준칙과 비슷한
선악관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형조씨의
'성즉리' 글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 주희는
> 말했다. 『길(道)이 인간으로 하여 비로소 존재한다고 오해하지
> 않도록 하라(道非因人方有)』   

제가 포로리님의 주자와 같은 세계관을 가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선악의 보편성이라는 것이 위 주자의 말처럼 미리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이 길어지네요. 오늘은 이정도 하지요. 제 주장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할 이야기는 대충 한 것 같군요.




                                                        먼 길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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