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porori (포로리) 날 짜 (Date): 1999년 3월 8일 월요일 오후 02시 07분 13초 제 목(Title): limelite님께 ... 제 글의 시작은 staire님이 쓰신 글에만 의존한 '질문'성격의 글이었다는 '문맥상의 흐름'을 고려해주시길 먼저 부탁드립니다. 만일 이에 대한 고려가 없이 제 글 자체에 대해서만 반론을 제기하시면 처음 child님과 대화를 시작할때 했던 해명 작업을 또다시 반복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원치 않지만 자꾸 엉뚱하게 staire님의 이름이 거론되는 누를 끼치는 것 같아서 꺼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제하겠다'란 말을 했습니다...이점을 먼저 이해해주십시오. 일단은 쓰신 글을 인용하면서 필요한 내용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저는 b)의 '모호하다'는 술어가 그렇게 적합해 보이지 않습니다. >혼란을 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지요. 저 같은 사람이 주장하는 것을, >포로리님 식으로 적어보면... > 주장1) 선악 구분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다 저의 '모호하다'란 표현은 staire님 글에서 '상대적'이라 표현된 내용으로부터 유추하였던 결론을 압축하여 기술했던 말입니다. 제 주장의 발원지를 추적하기 위해서 staire님 글의 흐름을 요약해봅시다. ( (a) -> (e) 라는 흐름입니다 ) (a) 선과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유익함과 불리함만이 있다. (b) 선악의 구분은 상대적인 경우가 매우 많다. (c) 선악의 존재여부 판단은 세계관의 문제인데,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세계관을 staire는 가지고 있다. (d) 선악이 존재한다고 믿는 세계관에는 문제점이 있다. 소위 Symond적 위험성이다. (e)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조건없이 사랑하는 마음을 갖자. 저는 (c)->(e)를 따라 읽으면서 staire님이 다음과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판단했습니다(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으나). (의도-1) (b)로부터 보았을때 선과 악의 구분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limelite님이 파악하신 내용과 같죠) (의도-2) (의도-1)을 참고해보았을때,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선악의 이분적 구분은 무의미하다. ^^^^^^^^^^^^^^^^^^^^^^^^^^^^^^ 따라서 (e)와 같은 결론에 동참하도록 하자. limelite님, 저의 첫번째 글은 바로 (의도-1)이 아닌, (의도-2) 에 대한 의문 제시였습니다. 제가 바로 님에 대한 답글에서 '전반부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라고 했던 것은 (의도-1)에 대한 저의 부분적 수용을 얘기한 거였습니다. 제가 (1),(2) 라고 번호를 매겨 반복적으로(자주(?)) 제시했던 것들은 바로 (의도-2)를 전적으로 염두에 두었던 겁니다. '모호하다'란 표현 역시 (의도-1)에서 (의도-2)까지 종합해봤을때 단순히 '상대적'보다 더 적합한 술어라고 생각해서 썼던 것이고요. limelite님은 (의도-2)에 대해 정확히 어떤 생각이신지 모르지만, (의도-2)는 (의도-1)이 전적으로 타당하다면, 상당히 나옴직한, 그리고 상당히 참일 개연성이 높은 결론입니다. 사실 저는 (의도-2)가 주장되는 것까지도 불만은 없었으나,바로 뒤에 나온 (d), (e) 제시가 (의도-2)로 부터 일관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했던 겁니다 ( 왜냐하면 (d),(e)야 말로 일종의 공통으로 추구해야 하는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선'의 개념이고 Symond적 위험성은 지양해야할 -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악'의 개념이므로 - 일종의 '이분법적 구분'을 staire님이 이미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 저는 (d),(e)에서 표현된 질책과 따뜻한 권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럼 이것이 일관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건가? 바로 이를 위해 비판 형식으로 제가 제시했던 것이 (의도-1)의 주장을 '희석'시키려는 목적이었던 겁니다. (의도-2)를 필연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하게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설명했던 것이 '실용적인 조건'들을 잘만 명시한다면, 선악의 구분이 (실용적으로서) 보편적인 경우도 존재하므로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라고 까지 주장해야할 이유는 없다라고 처음에 운을 뗀 것입니다. ( limelite님도 잘 아시지만, 그것은 서로 완전하게 입증/반증 가능한 명제가 아니니까요 ) 또,'권유를 위한 속성'을 갖기 위한 근거의 명시가 제가 볼 때는 staire님의 '글 자체'에서 발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그래서 (2)라고 번호 매긴 후 문제점의 하나로 제시해보았던 겁니다. child님은 (2)에 대해 이미 나름대로 설명을 잘 하셨고, 저역시 받아들여 결국엔 인간의 '유익의 감정' 에 대한 '부연 설명'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라는 정도로 child님과 합의를 보았지 않습니까. 이외에도 저는 첫 단락의 '선/악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 '유익함/불리함등의 환원적 설명' 은 근거 자체로는 적합하지 않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staire님 글의 뒷부분에 보면 '사랑'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개념'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이것도 인간의 본능 또는 유익함/불리함 등을 적절히 섞으면 얼마든지 하위 수준에서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개념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는 별로 따지지 않고 누구나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chopin님의 예를 빌리자면 일종의 상/하위 개념 정도가 되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선악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란 말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 선과 악의 범주 및 정의에 대한 구체적 명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선과 악이라든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제반 선과 악이었든지 등등으로요) 위와 같은 내용 정도가 바로 제가 처음 썼던 글에서부터 child님과의 대화까지 다뤄졌던 내용인데요, limelite님이 저의 의견에 직접적인 반박을 하시려면 staire님의 글에서 (의도-2)를 이끌어낸 판단이 오해였음을 보이시던가, 아니면 (의도-2)에 기술된 내용을 limelite님이 찬동하고, 그렇게 믿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할 경우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참고로 말씀드리면,child님은 제가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staire님의 진술 내용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limelite님이 쓰신 글을 보면 > 왜 그럼 주관을 사회적으로 공유해야 하는가? 그것은 인간 >자신의 경험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경험을 통해서 >인간은 경험(그 본질이 객관세계로부터 나온 것인지 다른 류의 >세계관에 의한 것인지는 보류하고)을 통해서 자신과 동등한 다른 >인간과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요구받고 있으며, 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생각과 입장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배우게 되지요. 그러면, 왜 인간은 그런 >것들이 좋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가? 보통의 인간은 살아가고 >싶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살아가는데 좋은 방향으로 >행위하고 싶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라고 하셨는데, 위글로부터 제가 볼때는 limelite님의 경우, 선악 구분의 이분적 사고를 인정한 후, 그것이 '경험'으로부터 형성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듯 합니다. (선/악을 '바람직한 것'과 '지양해야할 것'정도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 부분에서, 제가 선악 구분의 이분법적 사고를 '경험으로 배운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던 것이 아니라 '선악 구분이 무의미하다'라는 것은 일관되게 주장될 수 없음을 보였다는 점을 상기하셨으면 합니다. 결국 limelite님과 저는 기본적인 출발 부분에서는 다를게 없습니다. 이제 그 선악의 구분이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직관적인 인식인지, 경험의 축적에서부터 오는 것인지 등의 문제가 남아있는 것 뿐이지요. 그럼 혹시 child님과 저의 대화를 주의 깊게 읽어 보셨습니까. child님의 의견은 limelite님과 주장과 기본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 child님의 설명 자체를 전혀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전 길게 글 쓰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저랑 생각이 다른 내용을 그냥 '묵인'해 버릴 정도로 허술한 사람은 아닙니다. 저 역시 선/악의 정의나 본질에는 상당히 유연성을 갖기 위해 노력해왔고, 여러 방면으로 모색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limelite님의 의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limelite님이 설명한 경험의 축적 결과로서의 '선'에 관한 정의는 윤리학에서는 naturalism의 일종으로 표현되고 있고,현대철학 의 정설중 하나로 흔히 논의되고 있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Moore의 직관주의와는 정반대되는 주장이어서 서로 상당한 논쟁이 있어왔는데, 오히려 직관주의는 이제 거의 지지를 못받고 있고, limelite님과 같은 의견을 갖는 사람이 현재 대부분입니다. 우습게 보이실지 모르지만, 아니 이해가 안가실지 모르지만, 저는 일단 직관주의의 입장에서 서서 - limelite님의 설명으로도 표현되는 - naturalism의 반박을 제 인생에서 검증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선악의 입장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고, '가정'이라고 하면서 뒤로 물러서 있던 것도 이런 측면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이를 가지고 뭐라 하신다면 솔직히 아직 할말이 없습니다. 다만, 일반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악 개념이 직관적 인식과 오히려 더 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고, 이로부터 점차 다듬어 나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정도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상당히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말하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 *** 결론을 대략 말씀드린다면, 그 뒤에도 길게 설명하신 내용 - 저의 (1),(2)을 limelite님의 전제로 부터 충분히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 - 은 이미 child님에게서 들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일 이분법적인 사고를 인간이 경험적으로든 그 무엇으로부터든 '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것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인정하신다면 저로서는 누구의 의견이든 사실 반박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분법적 사고는 흔히 선/악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갖는 아주 상식적인 개념에도 잘 부합된다는 것이 바로 제가 주로 의도했던 내용이었음을 꼭 알아주십시오. 기준의 상대성 정도는 보다 많은 인지가 필요하겠지만요. 쓰신 내용중 하나 더 추가해서 얘기한다면, >'좋고 나쁜' 것을 가리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가지게 된다는 것이 누구나 같은 것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선악관에서는, 발생의 보편성은 있지만 >구체적 구분 기준은 상대적이라는 점)에 주의하지 않으면, 뭔가 >막연한 보편성이 있을 거라는 환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럼 이해가 되시는지요? 저는 누구나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보편성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구분하는 행위'를 갖고 있는 보편성을 얘기한 겁니다. 만일 제 글중 전자와 같은 의도로 썼다고 판단되는 것이 있다면, 인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제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면, 실수로 인정하겠습니다. 저의 선악관에 대해서는, > 여기서 일정의 도덕적 요구가 무엇입니까? 경험의 축적으로부터 형성되는 기준에 대한 본능적 요구든, 직관으로부터 요구되는 것이든, 저로서는 크게 상관할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앞의 제 어저쩡한 입장을 이해하신다면요. (이런점을 비난하신다면 그냥 그렇다라고 정도밖에 할말이 없지요) 단지, 그것을 기준으로 삼고 싶어하는 마음의 행태를 저는 '도덕적 요구'라고 부르겠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성과정에 대한 설명을 주장한 내용이 아닙니다. 그래서 child님에께 서로 반박의 가능성이 없다고 했던 거지요. > 이런 이야기 때문에 제가 포로리님이 주희의 준칙과 비슷한 >선악관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형조씨의 >'성즉리' 글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 주희는 >> 말했다. 『길(道)이 인간으로 하여 비로소 존재한다고 오해하지 >> 않도록 하라(道非因人方有)』 >제가 포로리님의 주자와 같은 세계관을 가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선악의 보편성이라는 것이 위 주자의 말처럼 미리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꾸 제가 보편성에 집착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선악의 보편성'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제 글이 너무 길어서 오해의 소지가 높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만, 제 글이 staire님 글에 대한 질문이었다는 문맥으로 따라가시면 약간 다른 측면으로 보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글에서 '보편성'이란 말을 쓴 경우란 것은, 1) 선악이 보편적으로 구분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 <- 따라서, 본질적으로 구분될 수 없다는 비관적 견해에만 집착하지 말자) 2) 누구든지 권유하는 행위나 원리로 정착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편적인 모랄'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행태를 갖는다. 라는 관찰 사실 정도였습니다. 위 내용 이상의 보편성이 주장된 것으로 읽으신 부분도 있었다고 인용하여 지적해주시면, 마찬가지로 해명하던가 실수를 인정하던가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처음 저에게 주신 글에서 구분 기준의 상대성을 인정하면 공존이 가능하지 않느냐고 물으셨었는데, 당시 저의 대답은 당연히 yes라는 뜻에서 글을 썼던 겁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는 모릅니다만. * 저녁 때마다 배우러 다니는 것도 있고,주중엔 아주 늦은 시간 아니면 시간 내기가 쉽질 않아서 점심을 빨리 먹고 짬을 내서 급히 쓴 겁니다. (child님, 이해해주셔서 감사 - T.T) 혹시 횡설수설한 것이 있다면 양해해주십시오. 그렇지만 일단 제 입장은 설명이 어느정도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