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claudia (가 아님...맧) 날 짜 (Date): 1998년03월28일(토) 06시06분47초 ROK 제 목(Title): Re: Nagel의 답.. 네이겔이 죽음 이전과 죽음 이후를 경험적 공백(experiential blank)으로 분류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면서도 사람들이 별로 의미를 가지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의 의미를 잘 지적한 것 같습니다... 특히, 탄생과 죽음(혹은 그 직전까지)은 경험의 영역인데, 탄생 이전과 죽음 이전을 경험적 공백으로 분류한 것이 인상적이군요... 단지 몇가지 점을 고려하면 그의 설명의 한계가 뚜렷히 보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그의 경험적 공백을 이해하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고, 이에 따라 그의 생각이 일반성을 벗어나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레이첼님이 덜 설명하신 것인지 모르겠지만, 죽음 이전과 이후 말고도 우리에게 경험적 공백이란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느 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그 옆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경험적 공백입니다... 그래서, 이 경험적 공백은 종종 어린이들 동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요... 사람이 안보는 사이 가구나 장난감들이 요정처럼 살아나서 움직이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원상태로 돌아간다는 식으로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오히려 경험적 공백에 둘러싸여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직접 경험하는 것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 의 규모와 비교해서도 턱없이 작은 부분들이고, 그것을 생각하는 인간에게 무력감마저 느끼게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압도적인(경험영역과 비교해서) 경험적 공백을 세계관으로 메꾸고 있습니다... 그 세계관의 형태는 무척 다양하지만, 어느 것이나 대체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일정한 규칙(인간의 규칙이라기보다는 물리적 법칙에 더 가까운)이 보존되는 곳이며, 따라서 간접 경험이라는 것이 가능하고, 그 규칙들을 올바로 이해했을 때 추리로서 경험적 공백을 경험의 연장선에서 매꾸는 것(전부는 물론 아니고 관심을 가지는 일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대부분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세상의 다른 부분을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로 알 수도(역시 '어느 정도') 있고, 물리법칙에 의거한 추리로서 경험하지 못한 우주의 저 편도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며, 내가 직접 옆방의 상태를 경험하지는 못해도, 경험의 연장선에서 가구들 등이 아까 배치된대로 유지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가구나 장난감이 살아움직 인다는 것처럼 모든 세계관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고, 버클리 류의 주관적 관념론 같은 세계관은 이 부분에서 혼란스러운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잠시 논외로 하지요... 그렇게 보면 인간은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라는 경험적 공백에 대해서도 자신의 세계관으로 메꾸려고 시도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무수한 신화와 종교적 설명에서 이런 시도들을 찾을 수 있지요... 그래서, 저의 앞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개인이 어떤 세계관(신봉하는 종교가 제시하는 세계관을 포함한)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의 의미가 달라지고, 따라서 탄생과 죽음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보면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의 상당수가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를 현재의 경험과는 단절된 어떤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있는 세계로 보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 이후의 세계가 현실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염라대왕이나 옥황상제가 지배하는 세상이거나, 기독교식이라면 죽음 이후의 세계는 현실과는 다른 신의 지배영역이 됩니다... 인간이 탄생 이전이나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렇게 삶 동안의 경험과 단절된 세계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가진 것은, 제가 보기에는 인간의 어쩔수 없는 자기중심 사고의 영향이 아닌가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는 현실과 단절된 세계니까요... 물론 모든 세계관이 이런 것은 아니고, 어떤 세계관에서는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가 특별하고 단절된 경험적 공백이 아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세계에서 모든 것은 나서 소멸하며 인간도 마찬가지다는 식의 세계관입니다... 그런 세계관에서는 예를 들어 "지금 책상에 있는 마우스 라는 편리한 전자기계는 탄생 이전에 여러 다른 물체들 속에 있었는데, 그것들 중 일부가 추출되고 결합되어서 만들어졌고 언젠가는 이 마우스도 다시 분해되고 구성체들이 다른 물체들에게 흡수될 것이며 마우스 탄생 이전과 이후의 특별한 단절이란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세상의 순환에 의해 나서 죽고 그것으로..."라는 식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가끔 자아라는 것의 identity라고 해야하나요? 자아의 독특한 특성에 얽매이는 사람들이 이런 세계관에서 자아란 어떤 의미인가하는 질문을 하는 것 같은데, 아마도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서 나오는 '약한 인간의 원리'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이 답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인용해 보려고 책을 찾아보니까 안보이는군요... 대충 기억으로 약한 인간의 원리가 "가능한 물리적 세계-우주 중에서 인간과 같은 지적 생물체가 탄생하는 조건을 가지기는 어려운데, 어떻게 우리 우주는 '운 좋게도' 인간과 같은 지적 생물체가 탄생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게 되었 을까"라는 의문에 답하기를 "무수히 가능한 우주 중에 지적생물체를 탄생 시킬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우주가 하나 있었고, 거기서 탄생한 지적생물체 중 하나가 인간이고, 그 인간이 자신의 눈으로 우주를 보면서 그런 의문을 갖는 것이다"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한테는 이런 설명이 "도태되다가 남은 생물이 현재 우리가 보는 생물이다"라는 진화론의 설명과 유사하게 보이는데, 이런 설명과 비슷하게 앞의 세계관은 자아란 무엇인가에 대해 "인간이란 의식을 가지고 자아를 가지는 약간 특별한 물체"라는 답을 줍니다... 그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답은 아니지만요... 결국 이런 세계관에서는 경험하는 모든 물체의 탄생 이전과 이후가 특별한 경험적 공백이 아니듯이 인간의 탄생 이전과 이후도 특별한 경험적 공백이 되지 않고, 세계의 물질적 순환의 일부로서 파악되는 것이지요... 불교 등의 종교의 윤회설는 이것과 비슷하면서도 각 종교 나름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되었거나... 네이겔의 답은 죽음과 탄생에 대해 괜찮은 해석의 도구를 제시합니다만, 경험적 공백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반영되지 않았고,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인간이 죽음 이후와 죽음 이전의 경험적 공백에 대해 특별한 취급을 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을 놓치고 특정 해석에만 얽매였으며(처음 "Nagel의 답"이라는 글에서), 이에 따라 "Nagel의 답 2"를 보면 자기 자신의 특정 세계관과 자아관에 빠진 설명(저는 이것이 관념론자들의 전형적인 혼란스러운 세계관 같이 보입니다만)을 제시함으로써 일반성이 결여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상당수 철학자들의 답이라는 것이 이런 식 이기는 합니다만... - limeli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