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4ever 0~) 날 짜 (Date): 1997년10월07일(화) 01시40분32초 ROK 제 목(Title): [논리와 글쓰기] 보석과 돌멩이의 차이 제 목 : [논리와 글쓰기] 보석과 돌멩이의 차이 김광수 교수의 논리와 글쓰기 51 <궁극적 목적> 교수님, “세속적인 명리를 추구하되 그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여기면 속물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속물을 면한다”는 달래의 주장은 참말인가 요? 그럼 달래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알았습니다. `참말'이라는 말 대신에 `참'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군요. 왜 그렇지?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달래가 마음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말했는가?'가 아니라 `달래의 주장 자체가 참인가?'이기 때문입니다. 맞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달래가 자기 주장의 참을 입증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특별한 이유 없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을 따름입니다. 입증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주장을 하다니! 달래의 주장은 고려할 가치 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을 공격하는 오류 중 `정황에 호소하는 오류' 를 범하는 일이야. 달래의 주장은 그 자체로 참일 수 있는데, 근거를 생 각해보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삼아 달래의 주장이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거든. 이 경우 스스로 달래의 주장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해. 그럼 저 나름대로 평가해 보겠습니다. 예컨대 얼마 전 어떤 할머니가 일생 동안 식당업으로 번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 할머니 는 돈을 수단으로 여겼지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여기지는 않은 것 같습 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속물이 아닌 훌륭한 분으로 존경을 받겠지요. 그러나 많은 돈을 선뜻 장학금으로 내놓은 할머니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도대체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지요? `명예'도 세속적 인 명리가 아닌가요? 어떤 것을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여기며 살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 는 `행복'이라고 답했어. 그런가 하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야. 헤겔은 사람들이 `인지(認知)', 즉 다른 사람들 에게 인정받기를 가장 원하는 것으로 보았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군요. 하물며 우리같은 학생들이 그걸 알 수는 없지요. 그렇다면 궁극적인 목 적에 관한 논의는 무의미하지 않습니까? 꼭 그런 것은 아니야.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할지 라도, 어떤 특정한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거 든. 그걸 어떻게 알지요?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가?'를 보아 알 수 있지.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궁극적 목적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은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어야 해. 일생 동안 피땀 흘려 모은 보석들이 하루아침에 돌멩이 취급을 받는 다면 그처럼 허망한 게 없겠지? 단지 상대적 가치만을 부여할 수 있는 하 찮은 `돌멩이'를 모으기 위해 일생을 바친 꼴이 될 테니 말야. 한신대·철학 *** 퍼옴 끝 --,--`-<@ 매일 그대와 아침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잠이 들고파.. Till the rivers flow up stream | Love is real \|||/ @@@ Till lovers cease to dream | Love is touch @|~j~|@ @^j^@ Till then, I'm yours, be mine | Love is free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