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ilusion (환상) 날 짜 (Date): 1996년07월12일(금) 19시48분46초 KDT 제 목(Title): 빨강에 관한 인식 위에서 누군가 빨강을 보면 객관화시킬수 있다고하는데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심리학에서는 무척 유명한 사건인데 어느 원시부족은 결코! 색을 구별 못하는 부족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색이란 많아야 대여섯가지였습니다. 빨강중에서도 종류가 다양한데 그런것들을 모두 빨강생으로뿐이 그 리고 우리가 초록색이나 파란색을 구별하는데 그들은 구벼별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궁극적인 이유는 색의 인식에는 인간의 언어가 대단히 큰역활을 합니다. 이문제는 비트겐슈타인이 잘 exploite했던것으로 압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빨강색과 파란색을 구별하는 사람도 가혹한 세뇌를 시키면 빨강과 파랑을 구별 못하도록 만들수 있습니다. 차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차원이란 궁극적으로는 우리인간이 다른인간에게 reference를 할수있는 지칭의 대상을 제공하는것입니다. 우리가 빨간사과를 빨갛다고 하는 이유는 정말 사과가 빨개서가 아니고 관습과 습관에 의한 은연중의 길들여지기입니다. 빨갛다고 하는 언어의 reference를 사과의 한 특성에 관련을 시키는것입니다. 파란사과가 그 빨갛다고 하는 reference에 섞여놓게 만들었다해도 우리인간은 구분할수 없습니다. refence가 없다면. 이세상이 전부 빨갛다면 우리는 장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오히려 촉감이 새로운 우리의 눈이 될것이고 촉감에 대한 다양한 언어의 표현이 만들어질것입니다. 부드럽다 딱딱하다 등등 사실 촉감보다는 시각적에 대한표현이 많은이유는 현재 인간이 시각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왜 어느 원시부족이 빨강과 파랑을 구별못하는가 하는 이유를 잘이해를 못하겠다면 다음과 같은 걸 생각하면됩니다. 인간의 촉감은 어느한계를 가면 더이상 판별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촉감의 한계를 가기도 전에 이미 인간의 언어는 구별의 힘을 잃어버립니다. 즉 마땅한 촉감을 구별할만한 언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언어가 존재하지않기에 촉감은 더더욱 퇴화를 할뿐입니다. 인간의 눈의 구조는 사람들마다 다릅니다. 기계의 측정이 각 측정기계마다 다르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어떤사과가 빨갛다고 느끼고 상대에게 말한다고 해서 상대는 당연히 여러분이 생각하는 빨강으로 느낄수 없습니다. 왜냐면 인간의 눈의 물리적 화학적 성분은 각개인마다 다르니까 당연히! 그빨강이 어느정도 달리 인식되어짐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사과가 빨갛다고 할까요? 그건 사과가 정말 빨개서가 아니고 단순한 약속일뿐입니다. 그리고 어느한 약속이 만들어지면 다른약속들도 만들어집니다. 예를들면 사과가 놓여진 탁자도 빨갛다고 생각합시다. 그렇다면 사과는 빨간 배경에 가려 잘안보일것입니다. 사람들은 아! 맞아 우리가 사과를 빨갛다고 약속했었지. 그렇다면 책상도 빨갛다고 해야겠다. 이런 관점은 시간이나 공간에도 적용됩니다. 왜 원숭이가 시간관념이 몇달뿐이 안돼는지 아십니까 ? 그건 원숭이세계에서 원숭이들의 언어에 시간관념이란게 잘정립되어있지않기때문입니다. 우리인간이 앞으로 정신적으로 더욱 발전을 하게되면 시간에 대한 인식이 더욱 발전할것이고 이에따른 시간을 표현하는 수많은 언어가 탄생할것이고 이러한 언어의 탄생은 서로 상승작용으로 우리의 시간에 대한 인식을 도울것입니다. 언어의 핵심은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당하는 객체의 구별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우주는 우리가 논하는 철학은 종교는 이모든것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언어의 한계속에 속박당합니다. 우리 인간의 언어를 넘어서는 어떤존재란건 아무의미도 없습니다. 이 우주가 우리언어의 한계에 속박당하는한 이우주역시 우리언어의 성질을 답습합니다. 왜냐면 우리언어로써 설명할수없는 우주의 성질이란 우리의 인식을 벗어나기문입니다. 결론은 우리가 보는 우주는 결코 완전한 우주가 될수없으며 우주를 설명하려는 그어떤 시도도 단순히 우주의 극히 일부만을 설명할뿐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언어는 주체와 객체를 판단할수없습니다. 아마도 그건 이우주자체가 주체와 객체에 구분을 두지않기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런말을 하면 누군가는 지적하겠지요. 나는 사과를 본다 라는 말은 내가 주체고 사과가 객체가 아닌가하고. 아닙니다. 언어의 함축된의미는 그언어의 통체적인면에서뿐이 살필수없습니다. 국소적 의미론이란 어떤 영향도 미치지않습니다. '나는 사과를본다' 라는 말은 곧 '사과는 나에의해서 보아진다'라는의미로 사과가 주체가 되고 내가 객체가 되어버립니다. 이건 역시 인과관게에도 성립되는데 파인만과 휠러가 말했듯 '돌이 떨어져서 땅에 닿는다' 란 말은 돌이 떨어지는게 원인이고 땅에 닿는게 결과라는 단순한 인식을 뒤집습니다. 즉 위의말은 곧 '돌이 땅에 닿기위해서 떨어진다' 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땅에 닿는게 원인이고 떨어지는게 결과가 됩니다. 인과관계란 그래서 시간을 반전시킬수도 있습니다! 불행히도 인간에겐 절대시간이란건 꿈에 불과해서 인과관계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시간의 방향성과 인과관계란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단지 지금까지의 물리적우주에서 도출한 개연성일뿐입니다. 그리고 시간의 방향성과 인과관계를 같은 reference로 묶어서 지칭하는것입니다. 문제는 인간에게 있어서 시간의 방향성을 탐지할능력도 그걸 표현할 언어도 없다는것입니다. 이러면 누군가는 황당하다고 반론을 제시하겠지만 사실입니다. 즉 지금말하는 의미는 단순히 동쪽에 해가떠서 서쪽으로 지면 아! 바로 시간이 foward 하게 흘렀구나 하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어떤 절대시간계가 있고 시간이 꺼꾸로 간다고해도 우리인간은 결코!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것의 의미는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속박되어진 죄인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말했듯이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란 중세 허접한 철학의 찌꺼기로 더이상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결국 시간과 공간이 인간의 죄인이며 인간이 시간과공간의 죄인이기도 합니다. 선문답하는것같이 되어버렸군요. iLUSiON 환상 �� Department of Mathematics, University of Toronto, Canada chung@math.toronto.edu / Fluid Dynamics, P.D.E., Non-linear System & Dynamics httpd://www.math.toronto.edu/~chu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