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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kimsh (뺑덕이)
날 짜 (Date): 1995년04월30일(일) 20시04분10초 KST
제 목(Title): 공자얘기(2)



여하튼, 성인들에 의해 인간의 욕심이 잘 다스려져서 평화로운 세상이었던 시대를 
소강(小康)시대라고 합니다.

공자의 포부는 바로 난세였던 춘추시대를 평화로운 소강의 시대로 환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대동의 시대는 너무 동떨어져 있고 또 더이상 이루어지기 불가능한 
시대였구요.

공자는 특히 주나라 초기 나라의 기틀을 세웠으며 자신이 태어난 나라인 노나라의 
건국자이기도 했던 주공의 정치를 동경했습니다. 즉, 상하의 질서가 완벽히 
갖추어져있고, 성인들의 예법이 잘 이루어지며 대의명분이 바로 서 있는 그 주나라 
초기의 시대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서양에서 
유래한 '사회진화론'에 젖어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그가 이러한 복고주의를 표방한 것은 기본적으로 그가 역사학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제 개인적으로). 즉,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이 연구한 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사실 그 당시에 이미 현실적이지 못했지만) 
모델을 찾았던 것이라고요.

그러기 위해 공자는 당시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주 황실의 권위를 되찾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천하에 대의명분이 서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아무리 힘이 강한 제후일지라도 함부로 월권행위를 하지 않아야 하고, 상하의 
구별을 엄격하게 하여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고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패륜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며, 자신의 신분에 맞는 예법을 확립하여 사람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살아가도록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의명분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 필요했던 것이 바로 
'인(仁)'이었구요.

어찌 보면 이미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약해빠진 
'인'사상이 먹혀들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습니다. 그리고 공자 자신도 그러한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생각되구요(그와 은둔자들간의 대화를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는 결코 형식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다소 융통성 없이 까다로운 예법을 
고집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고집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런 예법을 
지켜야만 비로소 자신이 희망했던 세상을 얻울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사란 사치하기 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상(喪)이란 꾸미기보단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
 '예(禮)가 어찌 단지 옥백(玉帛)과 같으리요.'
(이외에도 많은데 두가지만 실겠습니다.) 그는 오히려 당시의 형식에 빠진 예법을 
배격했습니다. 

또 한편으로, 그는 봉건주의자가 아닙니다.(물론 글타꼬 천하통일론자도 아니구요.)
오히려 봉건주의 자체에는 무관심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주(周)황실의 복권이었고 뭇 제후들이 그 권위를 따르며 서로 반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쓰다보니 자꾸 모르는 부분이 생기네요. 또 담에 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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