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kimsh (뺑덕이) 날 짜 (Date): 1995년04월28일(금) 12시32분43초 KST 제 목(Title): 동양사상의 재해석(1) - 공자 우리나라의, 중학생 이상의 수준이 되는 분들 치고 공자를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대통령의 이름은 모르더라두요. 근 50년새에 공자에 대한 평가는 급작스럽게 바뀌었습니다. 인류의 최고의 스승이자 사표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고루한 봉건주의자, 복고주의자, 형식론자등의 낙인이 찍히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로 가장 큰 것은 요즘 사람들이 모두 과거의 우리나라, 특히 조선시대의 잘못됨이 모두 유학사상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교조주의에 빠져 있던 우리 선조의 잘못이지 유학의 시조 공자의 탓은 아닌 것입니다. 공자의 사상은 '논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그가 집필하였다고 믿어져 왔던 책들 즉, 시(詩), 서(書), 등에도 조금씩은 엿보이지만(그가 집필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는 것을 밝혀 둡니다.). 논어를 읽어 보시면 그의 모든 말이나 행적이 반드시 합당하였는지는 의문입니다.(오늘날의 관점에서) 그렇지만 한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평생에 걸쳐 그것을 어기지 않으려 애썼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으로서의 공자의 위대함이 있는 것입니다. 공자는 기본적으로 역사학자였습니다. 논어에는 그의 학문탐구의 자세를 述而不作(옛것을 풀어쓰되 스스로 짓지 아니한다.)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왜 복고주의를 택했는가? 또는 왜 봉건제도를 옹호하였는가는 바로 그가 역사학자였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가 형식론자였다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형식론자라는 낙인은 바로 그의 맹신자들이었던 어리석은 후학들의 잘못에 의해 찍혀진 것입니다. 고래로 중국에서는 요순시대(또는 성왕시대)를 최고의 태평성대로 여겼습니다. 이때를 대동(大同)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시대는 그야말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의 시대였습니다(똑같지는 않지만). 서로 다투지도 않고 욕심부리지도 않고 죽이는 일도 없었고, 살기 위해 애쓰고 고통받을 필요가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점차로 사람들이 욕심을 갖게 되고 서로 다투고 죽였습니다. 왕이 되기 위해 서로 다투었고 부자가 되기위해, 강자가 되기 위해 서로 시기했습니다. 이러한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서 성인들은 바로 예를 만들고 상하의 귀천을 만들어 다스렸던 것입니다. 애고... 배고파서 담에 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