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4ever 0~) 날 짜 (Date): 1995년03월08일(수) 14시55분08초 KST 제 목(Title): 신역도덕경4-5장 제목 : 신역도덕경4-5장 #814/1207 보낸이:이은봉 (Eu173 ) 01/07 10:05 조회:54 1/4 제4장 無源: 근원을 알 수 없는 도는 마치 없는 것과 같다. (1) 道는 텅비어 있으되 아무리 써도 그 효능은 무궁하여 다함이 없도다. 그 깊고도 고요함이여 만물의 宗(=根源)과도 같도다. [道는] 세상의 예리함을 무디게 하고, 그 어지러움을 풀고, 그 빛을 부드럽게 하고, 그 불결함에 동화하는도다. (3) 깊고도 깊도다, 영원히 존재하는듯 하도다. 나, 道가 누구의 아들인지 모르겠으나 天帝 보다도 앞서 있는 것 같도다. [道沖而用之或不盈.淵兮似萬物之宗.挫其銳,解其粉,和其光,同 其塵.湛兮似或存,吾不知其誰之子,象帝之先] [감상:도가 하는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차라리 도는 아무 것도 안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가 어디 있느냐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나는 특히 이 詩에서 '도는 세상의 예리함을 무디게 하고, 그 어지러 움을 풀고, 그 빛을 부드럽게 하고, 그 불결함에 동화하는도다' 라는 구절을 무척 좋아합니다. 경험적으로 도는 평범속에 있는데 도 불구하고 무슨 신기한 구경거리 같은 이론이나 주의주장을 내 놓고 이성의 칼날을 마구 휘둘러 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 아 닙니까? 그것이 일시적으로 사람을 현혹시키고 눈을 멀게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도는 티끌같은 불결함과도 동일화한다는 말에 서 聖과 俗을 멀리 초월하는 道의 경지를 토로하고 있다고 봅니 다. (3)련에서는 지금까지 인간이 믿음의 대상으로 삼아왔던 上 帝보다도 도가 먼저 있었다는 말로 표현하여 나에게는 많은 생각 을 하게 하였습니다. 전율을 느낍니다.] 제5장 虛用: 도는 텅비어 있으나 무한히 쓸모가 있다. (1) 天地는 不仁하니, 만물을 지푸라기로 만든 개처럼 다루는도다. 聖人 또한 不仁하니 백성을 지푸라기로 만든 개처럼 다루는도다. (2)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도 같은 것, 텅 비어 있어도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 많은 기운이 나오는도다. (3) 말이 많으면 자주 소진되는 법, 그 고요함(中)을 지키는것만 못하리로다. [天地不仁.以萬物爲芻狗.聖人不仁.以百姓爲芻狗.天地之間,其 猶 乎.虛而不屈,動而愈出,多言數窮,不如守中] [감상:나에게는 이것도 주옥같은 詩입니다. 내 마음속에 비춰진 노자가 매우 짖꿎은 늙은이처럼 보여지는 이유가 이런 데도 있습 니다. 하필이면 공자께서 그토록 열씸히 설법하려 했던 仁이란 글자를 빌어와 천지는 不仁하다고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 고 '지푸라기로 만든 개'를 보셨습니까? 하찮은 허수아비와 같은 것입니다. 道는 인간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 功用이 매우 크다는 것을 다시금 표현하는 말이라 여겨집니 다. 인간의 사사로운 情에서 보면 도는 인정사정 없는 냉혹한 이 치인듯 합니다. 겨울이 되면 인정사정 없이 나무잎을 모두 떨어 트려 죽게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이 이 자연의 이치 앞에서 무엇을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2)련에서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 을 하나의 풀무에 비유하고 있는 것도 웅장한 도의 自生自化의 막강한 힘을 상징한다고 여겨집니다. 천지가 풀무질을 한다...노 자가 아니고는 이러한 거창한 상징을 사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3)련에서는 이러한 도의 공용 앞에서 인간의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지 말고 고요함을 지키라고 하는 듯합니다.그럼 이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