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NU ] in KIDS 글 쓴 이(By): sagang (그대의무엇) 날 짜 (Date): 1998년 8월 22일 토요일 오전 06시 04분 38초 제 목(Title): [늦은 후기] 보자르 연주회 무지 감동적인 연주회였습니다.(이 말이 전부여유~ 밑에는 볼 것도 없을 거여유~ :p) 거의 완벽한 연주였고 그것도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좋아지더군요. 결성된지 얼마 되지않은 앙상블이 어떻게 그렇게 조화로울 수 있는지 경탄스러웠습니다. 옥에 티라면 피아노가 차이콥스키 2악장 5번째 변주에서 약간 떠듬거린 거랑(그래도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돋보이더군요), 바이올린이 약간 튀고 또 너무 자신만만하다보니 각 소절 끝부분의 처리가 약간 산만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이얼린 소리가 너무 커서 첼로 소리가 약간 묻히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제 생각엔 김영욱이 바이얼린을 바꾸면 더 좋을 것 같더군요. (무척 빼어난 소리를 들려주는 악기지만 독주에 적합할 것 같았습니다. 악기 자체가 그런지 김영욱의 연주가 그래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소리가 너무 커서 실내악에선 좀 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더군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나무랄 데 별로 없는 기막힌 연주였습니다. 김영욱도 잘하지만 새 첼리스트도 아주 아주 멋지게 하더군요. 특히 울산 관중들의 매너가 일품이었습니다. 악장 사이에 박수는 하나도 없었고 헛기침같은 것조차 별로 없었습니다. 마지막 곡 차이콥스키는 정말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눈물이 찔끔찔끔 나올 정도였어요. 게다가 비장하면서도 여리게 끝나는 곡이라서 곡이 끝나고 여운에 젖어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그러한 곡에서도 곡이 끝나자마자 맹렬한 박수를 쳐대는 과격한? 부산 관중들에 질린터라...) 조금 했었는데 저의 그런 의구심을 여지없이 비웃어주더군요. 곡이 끝나고 한 십 여초 동안까지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떠 보니 마침 그때서야 연주자들이 몸을 풀더군요. 끝날 때의 몸동작 그대로 정지해 있다가요. 나도 모르게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쳐댔는데 거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그런 것 같았습니다. 부산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쉬이 경험할 수 없는 그런 관중매너였어요. 연주 좋은데다 관중들마저 그래주니 정말 그야말로 금상첨화였습니다. 뒤로 돌아보니 기립박수를 하는 몇몇 사람들 중에 아는 얼굴이 보이더군요. (나올 때 보니 대부분이 울산차였지만 경남차도 제법 보이고 다른 부산차도 볼 수 있었습니다.) 대곡을 너무너무 멋지게 연주한 터라 계속 박수를 치면서도 앵콜은 안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는데, 몇번의 커튼 콜이 있자 앵콜 연주를 하더군요. 김영욱씨가 뭐라뭐라하는데 도데체 우리나라말인지 아닌지조차 못알아 들었습니다. 연주를 들어보니 멘델스죤 2번의 스케르초더군요. 무지 빠르고 화려한 기교를 요하는 곡이라 앵콜에 어울린다 싶었습니다. 아쉬운 건 가져간 레코드 자켓에 싸인을 못받은 겁니다. 너무 많은 것 같아 씨디 속종이들엔 못받더라도 LP 자켓엔 꼭 받을려고 필립스의 보자르판 다섯 장인가 하고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나왔었던 김영욱의 앨범 두 장을 갖고갔는데, 싸인회가 있을 것 같은 느낌에 화장실에 먼저 다녀오는 등 늦장을 부렸더니 나중에 무대 뒤 대기실로 가봐도 어디로 갔는지 안보이더군요. 김영욱의 싸인이랑은 인연이 없나봅니다. 부산의 무대에서도 여러번 만났지만 싸인은 한 번도 못?받았으니까요. 참 그리고 예전에 봤었던 김영욱씨는 안그랬더랬는데, 이번에 보니 무지 거만해져서 좀 보기에 그랬습니다. 커튼-콜로 나오고 들어가면서 배를 쭉 내밀고 어깨랑 아랫턱에 왕 힘을 주는 것이, 자신도 보자르의 일원인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더군요. 뭐 들어간 과정이 그래서 더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사람이 변한 것 같아 약간 씁쓰리 하더라구요. 갈 때 날씨가 좀 흐려지더니 오는 길엔 방어진 쪽에 있는 공연장에서 고속도로 입구까지 비가 무지 쏟아졌습니다. 부산서도 그 시각에 무지 왔었다던데, 이건 말 그대로 퍼붇더라구요. 와이퍼를 3단으로 동작시켜도 동작하지 않는 거랑 마찬가지였습니다. 뭐 빗물이 훔쳐질 틈도 없이 마구 쏟아부으니 앞차의 차폭등 불빛도 잘 안보이고 모든 차들이 비상등을 켜서 겨우 엉금엉금 기어가는 수준이었습니다. 연주회는 좋았는데 돌아오는 길은 죽을 맛이였어요. 하지만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연주회의 순간순간들이 생생히 느껴지는 걸 보면, 정말 안갔으면 억울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p @ 바다님. 여러번 불러주셨는데 어찌 하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이 글 그냥 넘어갈려다가 바다님께 답하는 맘으로 썼으니, 용서하시길... 참 글고 그 어린 선생님 얘기 조금 더 자세하게 해주심 안될까요? :p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 줘. 운이 좋으면 밑둥이 샐지도 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