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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nDiary ] in KIDS
글 쓴 이(By): Adrian ( 노 경태)
날 짜 (Date): 1995년12월31일(일) 11시12분18초 KST
제 목(Title): 1995년 마지막 일기...


 4층 건물에 오직 나 혼자 있다는 것이 실감이 안난다.

 다른 녀석 책상위에 있는 CDP에 방에서 가지고 나온 CD를 걸었다.

 Elvis Presley의 노래를 듣고 또 듣고...

 이게 내가 바라던 것인가? 기분은 나쁘지 않다.

 10년전에 나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 때는 CD는 구경도 못했으니...

 오늘 하루가 천년만큼이나 길었으면 좋겠다.

 Suspicion이란 노래를 Repeat mode로 setting 했다.

 이렇게 시간이 정지해버린다면 전원이 안들어오는 때까지,

 CD가 삭아서 뭉게져버리는 날까지 CDP의 모터가 닳아서 죽어버릴 때까지,

 엘비스는 계속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겠지.

 난 왜 집에 가기가 싫을까?

 내일 아침에는 집에 갈려고 하는데 귀찮다... 항상 실험실이 이렇게

 조용하고 내맘대로 할 수 있다면... 정말 '충격 대예언'에 나온 내용처럼

 인류의 대부분이 죽고 살아남은 몇몇의 사람들만 있을 때 지금같은

 이런 분위기일까?

 아니겠지... 건물은 무너져내리고 전기와 수도는 끊기고,

 인류문명의 최후의 심판대를 거쳐 그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기하는 분기점에 서겠지... 어디선가 시체썩는 냄새랑

 불타는 플라스틱 냄새랑... 아마 나가면 정신이 없을거야.

 아마 내가 있는 이 건물도 그 때는 무사하지 않을지 모른다.

 항상 새해가 되면 그 종말의 전주곡이 어디선가 들려올거 같은데,

 그 전주곡이 낯설어서 전주인지 모르는건지 아니면 그냥 그저 그런건지....

 어쨌든 지난 100년보다는 지난 10년이 더욱 격동의 시간이었던거는

 분명한거같다.

 나중에는 넷트웍도 파괴되서 아마 키즈에 들어오지 못할거다.

 한국통신 건물도 무사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

 지도책이나 여행가이드를 사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이유는

 나중에는 지도도 바뀌고 그 나라의 문명이나 문화환경이 다 파괴될 것인데

 지나간 유물이 될 그런 정보를 뭐하러 돈을 주고 사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 중략

 청소를 안하고 며칠을 가다보면 방바닥에 먼지가 가라 앉는데,

 그 먼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이불에서? 내 옷에서? 천장 벽지에서?

 창문틈새로 들어온 공기의 흐름에서? 아니면 공기중에서 창조되어서?

 그런데 먼지가 일정한 형상과 색깔과 분포를 가지는 것을 보면

 뭔가 source가 있을 것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겨울은 내 창문을 항상 닫혀있게 만든다. 이제 봄이 되어야만 열리려나?

 그렇게 닫아 놓으면 산소가 부족해져서 질식해 죽는 것은 아닌지.

 내가 하루밤새 자는 동안에 소비하는 산소는 부피가 얼마나 될까?

 내 방의 공간은 며칠간 숨쉴 수 있는 산소가 있는 것일까?

 그동안 혹시 이산화탄소와 질소로만 살아온 것은 아닐까?

 인간이 질소로만 숨쉴 수 있다면 화성에서도 그냥 살 수 있다고

 누가 그러지 않았나? 화성의 하늘은 붉은 색이었지.

 그림만 보면 환상적으로 생각되던데 온통 하늘이 노을에 붉게 물든 것처럼.

 내가 길을 걸어가다가 혹시 화성인을 보지는 않았을까?

 화성인인지 누군지 몰라서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지.

 점심을 먹을 시간인데 어디가서 무얼 먹는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먹는 즐거움 하나를 버리는 것이겠지.... 많이 버려야된다.

 그것이 지구에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이 일기가 올해의 마지막 일기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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