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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nDiary ] in KIDS
글 쓴 이(By): jeannie (NeTI, NETi�€)
날 짜 (Date): 1995년11월15일(수) 14시49분44초 KST
제 목(Title): 비오는 날에는 우산을 써야한다?



비온지 벌써 이틀이 지났군. 

항상 그때그때의 느낌을 적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니.

우연히 무엇인가를 지나치면서 추억이 조각조각 기워진

담요를 꺼내들 때가 있다. 기워진 추억에 들어있는 느낌과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비오면 생각이 드는 몇 장면이 있다.

워낙 둔한 신경 때문인지 그 당시에는 그냥 지나쳤다가도

두고두고 가슴에 커다란 상처(트라우마? 호호. :)나 깊은 느낌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비오는 날에 기억나는 일들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는 사실 그렇게 가슴에 담아두지는 않았으니까.


국민학교 3학년때 서울에 전학 와서 친구들이 많이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키만 껑충하게 크고 말도

잘 안하는 여자애에게 누가 관심을 줄 것인가?

하지만 사실은 � 그게 나한테는 편했다. 집에 가는 길에는 

유독 잡념이 많은 법이니까. 나 혼자서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서

집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도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비가 안 왔다가 집에갈 때 즈음해� 비가 올 때이다.

난 그때만해도 준비하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머리가 젖어서

집에 들어가기가 일쑤였다. 간혹 우산을 빌려주는 친구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래도 그런 천사들을 항상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성미에 집에 전화해서 우산을 갖다달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성미였고

아무리 엄마한테라도 부탁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며, 그때는 엄니도

많이 바빠서 내가 무엇을 부탁해서 폐를 끼치기가 싫었으니까. 그럴 

때면 엄니가 알아서 우산을 갖다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한두번은 엄니가 갖다주신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때 

오히려 부담스러워서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아마

이런 나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안 갖다 줘도 되는 줄 알고 나는 국민학교

5학년때까지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다녔다. 그게 편했으니까.

국민학교 6학년때 사촌동생이 우리집에 들어와서 같이 살게 되었고,

내가 다니는 학교에 같이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인가 집에 

갈 때 즈음해서 또 비가 왔다. 그런데 형관 앞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엄니의 모습이 보이는 거다. 나는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퉁퉁하게) 웬 일이야요?" "응, 느그 사촌동생 우산 갖다주는 김에..."

그해에는 비가 오면 엄니는 우산을 두 개 들고 학교에 오셨다.

사촌동생이 먼저 전화를 했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난 그때 섭섭하면서

묘한 질투의 감정을 느꼈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내 여동생은 중학교에 입학했다. 난 가끔 수업이 

일찍 끝나면 집에 들어와서 빈둥거렸다. (흐흐, 대부분은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놀았으니까. ^^;) 그날도 비오는 저녁, 내 동생은 형관을

들어서면서 마구 화를 냈다. 그때 집에는 할머니만 계셨을 뿐이고,

나도 막 집에 들어왔던 차였다. 신경질을 하도 내길래 왜 그러나 

했더니 할머니가 그러신다. "아마 오늘 우산을 안 갖다줘서 그럴 거야"

이해 못하고 눈썹 사이에 주름을 그리고 있던 나. 난 집에 우산을 갖다달라는

말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군번이었지만, 이미 고등학교 때에는 아침에

하늘을 보고 우산을 들고 다녔고 그 버릇은 이미 중학교때 생긴 거였으니까.

동생은 자기 자신의 몫을 확실하게 챙길 줄 안다. 아프다면 아프다고 하고

약을 조제해서 먹는다. 나는 아프면 아프다고만 하고 약을 사줄까하면 

싫다고 한다. 동생은 비가 와도 집에 전화를 안 한다. 다만 집에서 우산을

갖다준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동생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내 요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대학교 2학년 때, 1993년도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것 같다. 비가 많이

왔어도 그것은 기쁜 일이었다. 그당시 매일 연락하고 거의 매일 만나던

친구가 있었으니까. 그때 그 친구랑 유행을 타기 시작하던 전화사서함을 

열어서 그날그날의 일을 미리 음성으로 녹음해서 서로 전해주었다.

어느날 그가 얘기한다. "비가 오면 얘기해. 내가 네 우산이 되어줄께."

학교 갔다가 비가 오면 난 사서함에다 흔적을 남기고는 했다.

"비가 오네. 언제 어디서 어쩌구 저쩌구." 서로의 얼굴을 볼 핑계였지만

그렇게 그가 씌워주었던 우산 속은 무척 훈훈했다. 


엊그제같이 비가 내리면 5시간 거리에 있는 그 친구한테 연락할 수 없다.

집에다는 물론이고 그렇다고 1회용 비닐우산을 사지는 않는다. 모자 달린 

옷이면 모자를 뒤집어 쓰고 다니고, 모자조차 없으면 그저 비를 맞고 다닌다.

몇년 이내로 머리가 많이 빠져서 가발을 쓰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별로 상관 안한다. 숟가락표 가발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깐.

하지만 칙칙한 비는 이런저런 추억을 많이 생각나게 한다. 아마도 이제는

"내 우산이 되어주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은지도

모른다. 이제는 � 비가 오면 이런 말을 먼저 건네야 될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제가 당신의 우산이 되어드릴까요?" 비가 오는 날의 흥분은 어린 날의 

추억으로 족하니까.













하나님의 명칭들이 신적인 본질을 표현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부여하는 
이름들도 하나님이 아닌 것을 말하는 한에서만 하나님의 명칭이 된다. 하나님의 
본질은 우리가 하나님에 관하여 인식하고 말로서 부를 수 있는 모든 명칭 위에 
머물러 있다.              " 이 짐승아, 그게 무슨 잠꼬대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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