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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chang (장 상 현)
날 짜 (Date): 1993년03월16일(화) 13시09분10초 KST
제 목(Title): 사물놀이의 전설 3

사물놀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한가지 장애가 있다.

그 것은 집적듣지 않고 음반으로 들어서는 그 진수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외국공연 이후 해외에서 몇장의 CD를

출반했지만, 역시 사물놀이의 팬들은 모두 그들의 음악을 

직접 들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대판 하멜린의 피리부는 사람이다.

그들의 음악은 마력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을 끌고 다닐 수있다.

예술의 전당 공연때, 관객들을 무대위로 끌어올려 춤추게 한 것은

이미 예술의 전당에 전설로 되어있다. 그러나 그 마력은 레코드라는

기계를 통해서는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엄청나게 많이

연주했다. 한해에 해외공연만 69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면서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든 관객에게

희열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들의 또 하나의 야망, 즉 그들의 음악이

과거의 음악이 아닌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음악으로 만들려는 계획

때문에 그들은 모든 종류의 시도를 해보았다. 그들의 연주에 반한

국내외의 많은 클래식, 국악, 재즈, 록 작곡가들이 그들을 위한

곡을 작곡했으며, 사물놀이는 어느 누구도 거절하지 않고 같이 연주했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으로 이제 국민학생도 풍물을 즐기는 세상이 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너무나 고된 일이었나보다. 84년 김용배는

국립국악원의 제의를 받아들여 사물놀이를 탈퇴, 국립국악원 사물놀이를

결성한다. 그는 국악원의 젊은 타악기 주자들의 스승이 된다.

사물놀이는 그 이름이 김덕수패로 바뀌게된다.

그리고 그들의 제자인 강민석이 입단한다. 그러나 실력에 따라 북을 치던

이광수가 꽹과리로, 징을 치던 최종실이 북으로 승진(?)하게된다.

몇년지나지 않아 김용배는 목을 매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다.

이제 다시는 김덕수와 김용배의 그완벽한 조화를 들을 수 없다.

90년대에 들어오자 최종실은 좀더 자신이 주도 할 수 있는 즉

춤과 무속음악의 세계로 전화하고자 사물놀이를 탈퇴 `서울 가.무.악'을

창단했다. 이제 그들은 둘이다. 해외공연중 그들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체포된다. 이광수와 김덕수, 이제 둘만으로 그 엄청난 희열을 지탱하기가

어려웠을까? 

풀려난 그들은 젊은 풍물꾼들의 교육에 힘쓰고 있다.

사물놀이에 대해 궁금하다면, 직접가서 들어봐야된다.

아니 그 때 들어 봤어야 했다. 이젠 늦었다. 

이제 사물놀이는 전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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