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쓴 이(By): chang (장 상 현) 날 짜 (Date): 1993년03월16일(화) 13시08분03초 KST 제 목(Title): 사물놀이의 전설2 1950년대 초 남한의 전역에는 중부, 영남, 호남으로 지역을 이루어 활동해오던 남사당들이 있었다. 그들은 전쟁과 가난 그리고 밀려들어오는 외국의 문화에 밀려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은 그들의 종말이 오기전에 오랜 세월 내려온 그들의 신비한 음을 온몸에 간직한 네명의 아이를 낳게 된다. 김덕수, 중부의 남사당이 그를 상쇠로 훈련 시켰다. 7살때 그는 장고로 전국 농악대회에서 우승, 전국의 농악인들을 경악시켰다. 이 때 부터 그는 장고의 신령이라 불렸다. 최종실, 영남의 남사당은 그를 영남 남사당의 상쇠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는 여섯살에 전국 농악대회에 출전했으나 김덕수에 밀려 최우수 공연자 상을 받았다. 모든 악기를 잘 다루지만, 삭모춤만은 비교할 상대가 없다는 춤의 신. 이광수, 역시 중부 출신 비교적 늦은(?) 10살때 농악대회에서 우승, 어려서 서울로 불려가 영재교육을 받은 김덕수, 최종실과 달리 그는 상쇠인 아버지와 방방곡을 떠돌며 음악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어느 노승을 만나 깊은 소리를 얻게된다. 사물놀이의 목소리. 김용배, 그의 과거는 자세히 모른다. 수상경력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한다. 그의 꽹과리는 귀신을 불러낸다고. 불세출의 꽹과리, 바로 쇠의 신이었다고. 1978년 당시 우리나라의 농악과 국악은 전시용 음악이었고, 국적불명의 북춤 부채춤등이 외국손님 여흥용으로 연주되던 시절, 젊은이들은 국악의 존재를 몰랐다. 이 때 이 네명의 젊은 상쇠는 시나위라는 단체에서 만나게된다. 이들은 서로의 능력에 감탄하였으며, 네명이서 그들 부모의 음악 즉 남사당의 음악을 다시 살려내고, 또 새로이 발전시켜 세계의 음악으로 만들 결심을 하고 새로운 음악단을 만들어 이름을 사물놀이라 짓는다. 이들의 초연은 시작한지 5초만에 대성공을 거둔다. 사물놀이는 삼도의 농악, 굿음악, 걸립패 풍물굿등을, 4악기와 목소리를 위해서 편곡하여 연주를 시작했으며, 모든 연주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그들의 소리는 드디어 외국에까지 들리게 되는데, 1983년 미국의 국제 타악기 대회에 참가하게된 것이다. 이 음악회는 타악인만의 축제로 타악기 주자만이 와서 들을 수 있다. 이 때의 어떤 외국 음악가는 이런 글을 썼었다. "그들이 볼품없는 그들의 악기를 들고 무대에 올라왔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연주를 시작하자 우리는 우리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괴성을 지르고 춤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SAMULNORIAN들의 탄생 이었다." 이후 그들은 타악기 축제 SUPERCUSSION의 멤버로 초청된다. 어떤 재즈 피아니스트는 그들의 음악을 처음접하고 "그들이 춤추며 연주할 때면 그들의 발은 지면에서 10cm 떠 있다. 그들이 앉아서 연주하면 그들은 가부좌를 튼체 허공에 5cm 쯤 뜬채 연주한다. 까맣고 큰 악기를 연주하는 나로서는 꿈에도 꿀 수없는 일이지만 평생에 한번이라도, 저렇게 연주하다 허공으로 떠오를 수 만 있다면......" 라고 글을 썼다. 이제 그들은 그들의 야망대로 농악을 세계의 음악으로 만들었다. 많은 외국의 음대에 풍물과목이 생기고, 사물놀이를 배우려는 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으로 몰려왔다. 내가 전에본 Suzanna라는 여자는 그녀의 인생을 사물놀이에 바치기위해 완전한 한국인이 되려고 할 정도로... ---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