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usic ] in KIDS 글 쓴 이(By): ruby (뱃살공주) 날 짜 (Date): 1995년07월16일(일) 19시36분04초 KDT 제 목(Title): [바하의 마태 수난곡] 15 <마태 수난곡>이 "복음사가 성 마태에 의한" 수난장으로 이해, 연주되는 한 그러하다. 그 결과 수정가능성, 참신한 해설은 언제나 "무엇을" 보다 "어떻게" 에만 적용할 수 있게 된다.또 이 어떻게"의 물음은 주제 (변할 수 없는 복음사가의 정체감을 유지하고 있다)와 분리하여 순수하고 미적 으뜸요소로 볼 수 도 있다.그러나 이렇게 하면 아무런 긴장 없이 쳇바퀴 돌듯 건성으로 작품을 되풀이 연주할 위험이 생겨난다. 이 위험을 피할 방법은 단 하나이다.연주가들이 바하가 요구하는 수준의 예술적 진리에 직접 대응할, 또 엉뚱한 것을 참지 모하는 음악적 경건함을 가슴에 품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설령 축제적 분위기 속에서 연주를 거듭한다고치더라도 음악의 깊이를 마치 제 2의 본성에 따르듯 음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듣는이들의 몫은 무엇일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마태 수난곡> 에 대한 체험도 바뀐다.처음 듣고서는 극적인 합창, "Barrabam" (바라바로소이다.)라는 외침에서의 거친 증4도 화음, 화려함이 억제된 음화와도 같은 코랄들, "Wahrlich, dieser ist Gottes Sohn gewesen"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는 선언에서 속세를 떠난 듯한 숭고함에 매료된다. 이러한 순간들의 힘이란 결코 줄어들지 않는 것이지만, 아리아들과 이들의 의미심장한 반주 텍스츄어의 아름다움 또한 감수성이 예민한 정신을 차츰차츰 사로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