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usic ] in KIDS 글 쓴 이(By): ruby (뱃살공주) 날 짜 (Date): 1995년07월16일(일) 19시32분56초 KDT 제 목(Title): [바하의 마태 수난곡] 13 바하의 수난곡들에 허용되는 해석의 자유는 다른 음악이나 극작품들에 비해 훨씬 제약된다.수난곡은 지휘하고 부르기 위한 것, 말하자면 "연주하기" 위한 것이다.그러나 자발적인 해석의 자유에 관해서는 역사 적으로 어떤 것을 진짜 악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더욱 절실하게 제기된다.바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합창단을 염두에 두고 곡을 썼는데 이것을 19세기 후반의 대규모 합창단더러 부르라 할 수 있을까 ? 바하의 역사적 위치,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연주양식 변화, 19세기와 20세기의 발전에 영향받은 우리의 청취양식 등을 종합해 볼 때 이런 물음에는 명쾌한 대답이란 있을 수 없다.문제의 해결이 혹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대조적 요소들의 조화에 의하여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해석의 자유란 대체 어떤 것인가? 예컨대 시작 합창의 고동치는 현악기 리듬이 죄에 묶인, 그래서 구속을 희구하는 인간의 격렬한 심장의 고동으로 해석되어야만 할 것인가? ( 또 그런 해석도 가능한가? ) 묵상하는 영혼이 문득 자신의 죄 깨닫고 회개한다는 점에서, 제자들이 자기들 가운데 누가 예수를 팔 것인� 묻는 극적 메시지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정적이 흐른 뒤 코랄이 "Ich bin's, ich sollte buessen" (그것은 나입니다.)라고 끼어들며 응답하는것에는 틀림없이 어떤 뜻이 담겨 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음악 미학]에서 이 독특한 순간을 이렇게 해석한 바 있다). 또 뒤에 베르크가 <보쩨크>에서 그랬듯이 바하도 다 장조를 추악한 것, 특히 돈과 연관지워 사용했다는 데도 마찬가지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