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usic ] in KIDS 글 쓴 이(By): ruby (뱃살공주) 날 짜 (Date): 1995년07월16일(일) 19시15분14초 KDT 제 목(Title): [바하의 마태 수난곡] 2 카를 리히터의 해석 뒤에는 바하에 대한 그 자신의 일생에 걸친 헌신 뿐 아니라, 1918년에서 50년까지 성 도마 교회의 악장으로 있던 스승 카를 슈트라우베로부터 젊은 리히터가 전수받은 라이프찌히의 바하 전통 또한 숨어 있다.<마태 수난곡>이 있기까지의 내력, 그리고 오랫동안 역사속에 묻혀 있던 것을 멘델스존이 발굴해낸 1829년 이래, 아니면 초연이 있은 1729년 이래, 더 거슬러올라가 1727년이나 28년 이래 이 작퓽 겪어 온 변화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금세기에도 이 수난곡은 바하에 대한 낭만주의적 경외심을 상징하는 최상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또 사랑받고 있다.그러나 새로이 고증되어 편집, 간행된 바하 악보들 틈에서 <마태 수난곡>을 찾아보면 이 곡이 "절대의", 변경의 여지가 없는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님을 알수 있다.초기의 <마태 수난곡>은 지금껏 작곡된 해로 알려져 온 1729년보다 앞서 이미 존재해 있었을지도 모른다.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마태 수난곡> 은 1736년 바하가 다시 손을 보아 만들어낸 것이다.이 때로부터 바하가 세상을 떠난 1750년 사이에 라이프찌히에서만 "적어도 � 번 더" <마태 수난곡>이 연주되었는데, 이 ㎖도 세부에서는 좀 다른 형태였다.따라서 <마태 수난곡>을 "진행중인 작품"(work in progress)으로 보려는 시도가 필요해진다. (알프레드 뒤르는 <마태 수난곡>의 초기 악보의 팩시밀리를 곁들여 이 작품이 겪은 변화들에 정확한 문헌 고증을 제시한 바 있고 [라이프찌히,1972] 나중에 나온 판에 대하여도 상세한 비판적 주석을 내놓고 있다[카셀,19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