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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kimsi (--수이리--�`)
날 짜 (Date): 1994년06월01일(수) 14시55분32초 KDT
제 목(Title): [고대신문] 5/30 문화 -90년대 문학비평


 이주성   (knews   )
[고대신문] 5/30 문화-90년대 문학비평         06/01 11:46   244 line

문화 - 90년대 문학비평의 위상과 전망 

 글쓰기의 대량생산체제속에 설 자리 잃은 문학비평
 예술장르로의 자리매김 위해 독특한 방법론과 주제의식 갖춰야

  李 景 鎬  본교 강사   

 90년대에 들어서 [문학의 위기], 또는 [문학의 죽음]에 관한 논
의가 있었다. 그러한 논의는 대부분 우리 문학이 처해있는  안팎
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꼼꼼하게 살펴보고 전개된  것이라기보다, 
서구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더불어 논의된 사항들을 거칠게 받
아들이면서 우리 문화 전반에 적용하는 가운데 제기되었기  때문
에 성급하거나 억지스러운 관점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논의 가운데에는 90년대의  우리문학
이 처해있는 상황을 제법 예리하면서 심도있게 지적한  내용들도 
있었다. 그러한 내용들은 대부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퇴조와 
객관적인 가치기준을 상실한 욕망의 무분별�가 위태로워졌음을, 그리하여  문학의 
자리가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내세우고 있었다.
 문학이 [리얼리즘]의 이름으로 삶의 객관적인 가치기준을  내세
우고, 그러한 가치기준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체제를 비판하는 건
강한 기능이 지나칠 정도로 증폭되었던 시대가 80년대의  우리현
실이었다. 그때 문학은 문학이상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정치와 
경제적 현실에 관여하면서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90년대에 들어
서 그러한 문학의 이름이 퇴색해버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
한 상황과 대조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명칭 아래 후기자
본주의의 현란한 욕망충족체계가 영상매체를 중심으로 한 문화상
품의 대중적 가치로 부각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한  상
황속에서 문학은 대중적 영향력을 상실해가는 변두리 문화쟝르로 
입지점을 마련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삶의 객관적 가치기준
과 대중적 영향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문학, 이것이  리얼리즘의 
쇠퇴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과 더불어 마련된  90년대  문학의 
착잡한 위상인 것이다.
 문학의 위상이 착잡한 만큼 문학작품들을 텍스트로 감상하고 평
가하는 문학비평의 입지점 또한 착잡해 질 수 밖에 없다. 80년대
까지 우리의 문학비평은 이론적으로는 리얼리즘에  대한  다양한 
논쟁의 입장--그 논쟁은 30년대부터 민족문학과 참여문학에 대한 
관점, 그리고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이라는  문학집단의 
대립적인 입장까지를 포괄하면서 80년대까지 이어져 왔다--에서, 
그리고 개개의 문학작품에 대해서는 미학적 수준과 대중적  영향
력을 함께 보여주는 문제작들을 열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에서 
활발한 자생력을 과시해왔다. 
 80년대까지 우리의 문학비평가들은 문학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하
면서 객관적이고 핵심적인 사회현실에 참여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우리 문학 비평의 가장 성숙한 모양을 보여준 60년대 비
평가들이 4.19세대로서의 자긍심이나 민족문학에 참여하는  지사
로서의 기개를 보여준점을 생각해 볼 때, 그리고 우리  문학비평
의 가장 급진적인 정치성향을 보여준 80년대의 비평가들이  민중
운동가나 노동운동가로 활약했던 점을 생각해 볼 때 그렇다--과, 
상호대립적인 문학논쟁에 치열하게 참여하는 논객으로서의  자긍
심, 그리고 주로 서구문학을 깊이 있게 전공한 문학자로서  새롭
고 체계적인 문학이론과 방법론을 적용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가 있었다. 그들에게 문학비평은 사회현실에 개입하는  비판적인 
지식인으로서의 소명감과 학문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가는 전문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일깨우는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역
량있는 시인, 작가들과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는 방편을 제공해주
기도 하였다. 그들의 문학비평은 삶과 문학현장, 그리고  문학공
부에 대한 열정을 하나로 이어주는 단단한 고리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의욕상실한 문학비평

 그런데 90년대의 문학비평은 사회현실에 개입하는 비판적인  지
식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일깨우기 어렵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치
열한 문학논쟁에 참여하거나, 빼어난 문학작품 속에 자신의 문학
이론과 상상력을 적용하고 싶은 의욕도 발휘하기가 어렵게  되어 
버렸다. 90년대의 사회현실이 정치와 문화전반에 가져다준  상황
이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의 문학에  거칠
지만 새롭게 적용되었던 사회과학적 방법론이  더이상  90년대의 
문학을 진단하는 참신하고 유효한 잣대가 되기 어려워진 탓도 있
지만, 근본적으로 빼어난 문학작품이나 문제작이 배출되고  있지 
않은 탓이다. 우리 문학인의 규모에 비해서  지나치게  비대해져 
버린 출판시장의 규모와 엄청나게 늘어난 문학잡지의 지면이  대
부분의 작가와 시인들을 속성재배시키고 재능을 고갈시켜 버리는 
풍토에서, 평론가들이 기대하는 좋은 작품이나 문제작은  생산되
기가 어렵고, 따라서 그런 작품을 평가하기 위한 노력과 그런 작
품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논쟁에 끼어들 의욕을 상실해 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풍토가 비단 작가와 시인들에게만 부작용을 초래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평론가들 또한 겹치기 출연하듯이  여러 
곳의 원고를 청탁받는 관습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서 좋은 글을 쓰
기 위한 준비기간을 충분히 마련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작가와 
시인, 그리고 비평가가 모두 글쓰기의 대량생산체제에  구속되어 
있는 한, 좋은 글쓰기에 대한 의욕은 생겨나기 어려운 법이다.
 더구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최악의 상황은 문학출판의 관행
이 양서를 펴내기보다 대자본의 뒷받침을 받는 대규모의  광고전
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서 벌어지
고 있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작가와 독자의 모범적인 소통기능을 
담당해야할 비평가의 몫은 없어져 버린다. 
 그러한 사례로 요즈음 일간신문에 나오는 엄청난 크기의 장편소
설 광고를 지적해 볼 수가 있다. 그런 광고에서 책에 대한  소개
나 평가는 문학비평가의 몫이 아니라 오히려 일간지  신문기자들
의 몫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우리는 출판의 상업
성이 문학의 아마츄어리즘을 초래하고 있는 심각한 결과를  목도
하게 된다. 작품에 대한 비평가의 전문적인 평가내용이 어렵거나 
딱딱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의  가
벼운 화제성을 지적한 신문기사의 내용이 작품에 대한  보편적인 
평가인 것처럼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출판사의 상업적인 전략에 의해 작가와 독자의  소통
기능을 비평의 아마츄어리즘이 떠맡게 될 때, 우리 문학의  양적
인 확산과는 별도로 질적인 심화는 기대되기 어렵다. 그리고  그
러한 상황 속에서 작품에 대한 감상과 평가의  의욕을  잃어버린 
문학비평가가 설 자리는 더이상 문학 현상, 작품의 현장이  아니
라, 강단이나 문학논문의 공간이 되어버릴 것이다.

90년대 문학비평의 위상 모색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90년대의 비평이 스스로를 채찍질
하고 문학의 바른 위상을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우선 비평이 하나의 예술쟝르라는 인식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90년대의 비평이 출판의 상업성으로 인해 소외되고 있는  상황은 
역으로 비평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방향을 암시해 준다. 그 방
향은 지금까지 우리의 문학비평이 지나치게  무미건조한  문체와 
사유와 정서의 내용을 보여주었다는 반성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문학비평이 문학논문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모든  비평가
들은 심각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문학비평가들이 대
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논문을 써내는 습관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로 그러한 공부와 글쓰기의 습관이 비평이라는 문학쟝
르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반성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비평
이 소설이나 시처럼 아름다운 문체와 상상력 속에 비평가 고유의 
사유와 정서를 부려놓는다면 그러한 비평은 어떠한 문학의  장에
서도 소외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비평은 작가와 
독자에 대한 호소력으로 인하여 상업적인 출판의 애호를  자연스
럽게 받는 척하면서, 그러한 출판과 문학판의  상황을  비판하고 
개선시켜 나가는 기능까지 해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
의 방향이다.
 두번째로 비평가의 철저한 자기관리 능력을 하나의 방향으로 생
각해 볼 수도 있다. 적어도 작품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자기나름
의 독특한 방법론과 주제의식을 고집하고, 선택적인 글쓰기를 감
행하여야 할 것이다. 매년 적지 않게 쏟아져 나오는 평론집들 중
에서 일관된 주제와 방법론으로 작품에 접근한 글들을  모아놓은 
것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그리고 글쓰기의 
새로운 주제와 방법론이 마련될 때까지 다음 작업을  중단하려는 
각오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비교문학적이거나 비교문화적인 시각을 마련할 필요
가 있다. 우리의 소설이 지나치게 리얼리즘의  문학관과  기법에 
경도되어 있는 점 못지 않게, 우리의 문학비평은 인접분야에  대
한, 그리고 인접 민족권이나 문명권에 대한 인식이나 체험이  부
족한 형편이다. 특히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영
상매체나 정보매체의 문화적 영향력이나 기능이  어떻게  문학과 
관계되고 이용되면서 극복될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 그리고  아
직까지 현대문학과 깊은 연계성을 확립하고 있지 못한  고전문학
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삶의 구체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유산을 정
리해 놓은 인류학에 대한 관심 같은 것들이 요청된다. 이러한 폭
넓은 분야에 대한 인식이 바탕이 되어 주체적인 글쓰기가 아름다
운 문체와 상상력의 뒷받침을 받을 때, 우리의 문학비평은  새로
운 지평을 마련하고 황금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 소설 "화두"의 작가 崔仁勳씨

"부조리한 역사현실의 초극을 위해..."

 소설가 최인훈을 만나기 위해 약속시간보다 10여분쯤 일찍 그의 
연구실로 찾아간 것은 다행이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
가 그의 소설에서 {강북 지역의 중심부분이 다 시야에 들어온다}
고 한 그 창문밖을 내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삼각산 아래의 평온한 도시가 보이는 곳}. 이곳에서 그는  {비
정상이 정상이 되는 역사의 타성을 보았고, 최루가스 자욱한  명
동거리를 바라보며 이 시대 생활자들의 [화두]를 보아왔다}고 하
지 않았던가.
 대학시절 책읽기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던 그는  책을  통해 
과거의 역사에 접근할 수 있었고 현실의 부조리를  보는  식견을 
길렀으며,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그의 글쓰기를  추구해  올 
수 있었단다.
 그것은 그의 소설 전편을 통해 언급되고 있는 유년의  자아비판
에 대한 기억에서 반추해낸, {기성의 틀을 조건없이  받아들여서
는 안된다}는 깨달음과도 일치한다. 그의 글쓰기는 이러한  깨달
음을 바탕으로 가치있는 전진과 창조를 발견해 낸 흔적들이다.
 {자신을 개선하려는 것을 사랑하고 싶다}는 그는 무엇보다 부조
리의 역사에 사는 자기자신의 개선을 위해 고뇌해 왔다.  그에게 
있어 사유는 자신에게 억제된 것을 풀어 추진력을 만드는 것이었
다.
 그가 {역사법칙이 주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상태에서  자동진
행되는 것으로 생각한 아쉬움은 없는지 늘 고민해 왔다}는  것은 
아마 그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는 그러한 자신에게 던지는 정신적 질문들의 해답을 위해  20
년이란 세월을 고뇌와 사색으로 보냈다. 마치  침묵처럼  보였을 
그의 면벽 20년은 그러나 어떠한 현실대응 방식보다 적극적인 현
실대응 방식이었다. 그것은 그가 {역사법칙의 보증자는 바로 나}
라는 생각을 항상 버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역시 소설가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하는 것은 그가 {소
설이야말로 세계에 대응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경지를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문학에는 형식이든 내용이든 아무런 억압이 없어야 합니다. 그
것은 마치 우리가 베토벤이나 모짜르트를 보고 왜 바하처럼 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없고, 피카소를 보고 왜 루벤스처럼 그리지 않
느냐고 물을 수 없는것과 같습니다}
 전후 최대 작가라를 칭호가 말해 주듯 그에게 있어 소설은 또하
나의 자기내면의 표현 형식이었다. 아마 그가 끝내 자신의  삶을 
소설의 소재로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귀결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
른다.
 {유년에서 현재까지 글쓰기를 통한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토로
하는 것이 서정적 구조라면 이상적^탐미적 구조와 사회적^역사적 
구조가 대립되는 것이 극적 구조가 되겠고, 내 자신의 자전적 소
설이라는 점이 서사 구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근작 {화두}는 기존의 소설문학이 가지고 있던 사건중심의 
전개방식을 깨뜨린다. 그것은 제목자체가 말하고 있듯 그의 소설 
자체가 소설전편을 통해 언어표현의 세가지 양식인 서정,  서사, 
극적 구조를 바둑판처럼 포석시킨, 자신의 자전적 소설임을 뜻하
기도 한다. 그의 6, 70년대 작품들이 지성으로 견고하게  통제된 
소설문장의 변화를 보여준 것과는 대조적이다.
 소설 {화두}에서 작가는 개인과 역사를 교차시키면서 한 지식인
의 마음의 역사를 찾아 헤매인 흔적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것
은 [화두]라는 발자취가 인간이 자아와 우주와 사회를  파악하고
자 하는 질문의 근원적 형식 즉, 불교적 수행과정으로  나타난다
는 것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괴로워하는 만큼 얻을 것이다}. 
 그가 후배작가들에게 던지는 이말 한마디는 그의 삶이 길러  응
축시킨 진정한 화두가 아닌가 싶다.              <李再學 記者>



  월요시단 

 콩나물  

 장만호 국어국문 90

 귀향한 누이의 가방 속
 잠바와 제과빵                       

 할머니는 틀니를 닦다가 
 내 소매를 접어 주셨다

 소주처럼 취해 주소없이 헤매던
 아버지는 평면으로 벽에 붙어 있었고

 나는 그 시루 속 헐렁이는
 콩나물 한 줄기


 학생의 시로서는 드물게 잘 다듬어진 시이다. 군더더기를  제거
하기 위해 작자는 나름대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을 것이다.  다
만, 제2연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것이 약점인데, 이는 많은 시
행을 축약시킨 결과일 것이다. 
 이 시의 뛰어난 점은 마지막 제4연이다. 힘들고 어려운  가족사
에서 자신의 존재를 시루속의 콩나물 한 줄기로  요약한  능력은 
놀랍다. 정진이 있기를 바란다.                 <崔東鎬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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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Soo-il                       고려대학교 전산과학과 자연어처리연구실
   E-mail address: kimsi@swsys.korea.ac.kr                Tel.: 02-924-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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