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oreaUniv ] in KIDS 글 쓴 이(By): tquark (안스니스.) 날 짜 (Date): 2000년 11월 13일 월요일 오전 05시 23분 49초 제 목(Title): [고대신문] 놓치기 아까운 덕수궁의 가을 ◇ 문화르포-덕수궁 주변의 문화행사 놓치기 아까운 덕수궁의 가을 한국에 온 「오르세오미술관」,「고야 판화전 」등 다양한 행사 연이어 올해는 유난히 볼거리가 풍성하다. 그래서 문화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행복한 비명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IMF로 묶여 있던 문화행사들이 줄줄이 몰리면서 봐야 할 건 많은데, 주머니 사정이 따라 주지 않으니 말이다. 그 중 하나가 국립 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내년 2월 27일까지 계속되는 「인상파와 근대미술展」이다. 전시작은 인상파 미술관으로 유명한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의 작품들인데 모두 진품이라, 흔치 않은 기회라 생각하고 서둘러 덕수궁을 찾았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 보니 마침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은 올해 3월부터 꾸준히 해 오던 행사로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2시부터 3시 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12월 31일까지 계속된다. 영국의 근위병 교대식에 못지 않을 우리 전통의 한 단편을 외국인들도 호기심에 찬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다. 미술관 1층의 전시장은 전기 인상주의와 사실주의 작품, 후기 인상주의와 상징주의 작품이 각각 1관과 2관으로 나눠져 있다. 1관에서는 인상주의의 시초 라고 하는 모네의 「생-라자르 기차역」, 너무나 유명한 밀레의 「이삭줍기」,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등 전기 인상파의 특징인 빛과 공기의 섬세한 움직임을 잘 나타낸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화폭에서 햇살이 반짝이는 듯한 흐릿한 이미지의 그림들을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보는 여유를 가져 본다. 마치 기억 속에 녹아 있는 따뜻했던 날들이 되돌아오는 듯해 황홀하기까지 하다. 2관에서는 입체주의의 대표작인 세잔의 「바구니가 있는 정물」, 강렬한 색감의 고갱의 「부르타뉴 여인들」, 감각적이고 인상적인 그림을 그렸던 톨루즈-로트렉의 「사창가의 여인」등 화가의 개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생생한 붓터치가 살아 있는 그림들에선 아직 유화냄새가 난다. 화가의 숨결이 간직돼 있는 듯하다. 옆에 있던 작품관리원에게서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 가면 아직도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톨루즈-로트렉의 공연 포스터라는 얘기를 들으니 그림이 다시 보인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그림 사이에는 에밀 졸라, 모네, 세잔 등의 초상과 19세기 말, 20세기 초 프랑스의 사정을 알 수 있는 사진도 몇 점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의 흥미를 끌고 있다. 또, 그림을 보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주위에 있는 작품관리원 에게 물으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여유있게 감상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평일 오후 였음에도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 숙제를 하러 온 학생들로 미술관이 붐볐다. 곳곳에서 들려 오는 말소리와 휴대전화 벨소리로 전체적으로 산만한 분위기였다. 휴대전화 정도는 진동으로 해 둘 줄 아는 상식이 아쉬운 때였다. 여기서 돌아서지 말고 미술관 2층의 3·4관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그곳에서는 「고야 : 얼굴, 영혼의 거울」 이라는 주제로 프란시스코 드 고야(1746∼1828) 의 판화 작품이 내년 1월 28일까지 무료로 전시되고 있다. ‘나체의 마야’로 잘 알려진 고야는 관상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얼굴을 영혼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거울로 생각했고,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그 본질적인 내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전시작은 스페인 국립판화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그의 판화연작 「까쁘리초스(변덕스러운 것)」(1796∼1799), 「전쟁의 재앙」(1810∼1820), 「투우술」(1814∼1816), 「디스빠라테스(부조리)」(1819∼1823) 중에서 엄선한 1백60여 점의 판화이다. 전시구성은 ▲권력의 행사와 사회구조 ▲여자들 ▲폭력과 죽음 ▲괴기함, 인간의 조건 등 4개의 소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판화에는 그가 본 사회의 부조리함과 스페인 내전의 비참함이 여과없이 들어 있어 조금 충격적이었으나, 다양한 모습을 한 군상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다 보니 또 그 나름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2층 로비에는 ‘예랑’이라는 작은 셀프커피숍이 있어 다리쉼을 하기에는 적당할 듯하다. 또한, 미술관 오른쪽의 석조전에서는 오후 4시까지 궁중유물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덕수궁 주변에서 또 다른 문화를 맛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덕수궁 돌담길 끝자락에 위치한 정동극장에 가보길 바란다. 정동극장에서 공연하는 탤런트 강부자 씨의 ‘오구’는 초상집의 풍경을 해학적으로 묘사한 극으로 지난 89년 초연이후 꾸준한 인기를 누려왔다. 관람료는 2만∼5만원. (문의 02-773-8960). 정동극장내 찻집 ‘토담’에선 따끈한 차를 마시며 얼어붙은 손을 녹일 수 있다. 미술관을 나오니 사생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으로 본 가을은 맑기만 한데…맑은 가을햇살이 그리운 날이다. 덕수궁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길은 서울시 선정 ‘10대 걷고싶은 길’의 하나로 꼽혔지만 일제가 1922년 덕수궁 서쪽의 선원전을 헐어내고 만든 아픈 역사가 감춰져있다.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노랗게 낙엽이 지고 있는 가로수들이 가을분위기를 돋웠다. ■신자운 기자 reporter@kunews1.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