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yungPookUniv ] in KIDS 글 쓴 이(By): hunt (강 상욱) 날 짜 (Date): 1995년08월08일(화) 14시46분57초 KDT 제 목(Title): [경북대 신문] 청와대 항의 방문 투쟁 언론사 / [ 담당자 : kppress ] () 제목 : [경북대신문]서울지역 청와대 항의 방문투 #40/42 보낸이:서보성 (kppress ) 08/05 15:50 조회:1 1/6 서울지역 통일 선전대 첫소식 입니다. 3일 밤 국민대에서 하루를 지낸 서총련 통선대원 1백30여명은 4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국민대 부근 길음,삼선교 등지의 지하철 역에서 8.15 민족공동행사 신문을 배포하는 등의 선전활동을 펼쳤습니다. 대상은 주로 출근하는 시민과 등교하는 학생이었고 수고한다며 돈을 건네 주거나 바쁜 걸음 와중에도 웃어보이고 수고한다는 인사를 잊지않는 시민이 많아 통선대원들과 통일운동에 비교적 호의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 다.아침 선전전 이후에는 각 총련별로 독자적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우선 동총련의 경우 2개 소대로 나뉘어 있으며 그 중 1소대는 강변역에서 선전전 및 8.15공동행사 성사를 위한 7천만 겨레 통일선언운동을 펼쳤고 2소대는 청와대 항의 방문을 실시했습니다. 통선대원 19명에 기타 동총련 소속 4명의 학우가 결합하여 총 23명이 오후 2시반 부터 청와대 진격 투쟁을 벌였습니다. 청와대 항의 방문의 목적은 민족화해 실현에 앞장선 박용길 장로님을 석방하라는 것과 박장로님을 구속시키는 것등 민족의 악법인 국가보안법 철페 그리고 정부의 8.15 민족공동행사 불허방침에 대해 항의하며 성사를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항의방문을 실시한 23명의 학우 가운데 19명의 학우가 15-20분 가량 시위를 벌이다 연행되었으며 4명은 본대에 다시 합류했습니다.연행된 통선대원들도 종로 경찰서에 감금되었다가 조서 작성이후 오후 8시경 훈방 조치되어 9시에 본대에 합류했습니다. 청와대 항의 방문의 경우 청와대 진격이라기 보다 경복궁 항의방문이 되어버리고 시위시간도 짧았지만 지나가던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 성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복궁역으로 가는 지하철 내에서 통선대원들이 들고있던 피켓을 넘겨다 보시던 어느 할아버지는 "요즘 정부가 옳게 하는 게 뭐 하나 있냐"며 "학생들 잘 하고 있다.힘내라"는 격려를 해 주기도 했습니다.지하철역 밖에서 시위를 벌이다 연행되는 학우들을 보던 시민들도 학생들을 질타 하기보다 전경에게 "사람 잡겠다"는 식의 얘기를 하는 등 시위 학생들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고연령층일수록 학생들에게 반감을 표하거나 훈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소식을 대학로 및 명동 일대로 통일 선언 운동을 나간 서남총련 학우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경북대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