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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beom (김상범)
날 짜 (Date): 1993년05월09일(일) 22시12분05초 KDT
제 목(Title): "목욕탕" 하니깐 생각나는데...

   대학교 1학년때 서울대, 이대 다니는 국민학교 동창들이
놀러왔던 적이 있었다.   처음 생긴 학교인데도 교문 근처는
비교적 조경을 신경써 놓아서 그런대로 아주 황량하지는
않았는데....   그 친구들 학교에 오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야, 이근처에 빨간 벽돌 공장 있냐?"
"데모할때 돌맹이 줏으러 갈 필요 없겠다."  등등...
( 당시 서울에서 데모가 한창이었으며, 길거리 보도블럭을 깨서
투척하곤 하였으므로, 데모가 벌어지면 학교의 빨간 벽돌을
사용하면 될 것이라는 우스개 였음.  나도 그때까지는 우리학교
학생들이 나중에 가투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

    학교가 처음 생겼을 당시는 정권과 연관된 안 좋은 이야기
들이 많이 세간에 오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 학생들은 
이에 관해서는 의연한 대응을 보었는데, 즉.. 실력으로 그 모든
이야기들을 잠재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 당시에도 세상 사람들은
'공부 잘하는, 혹은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팍팍 밀어주어야 한다.'
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

    이야기가 잠깐 옆길로 흐르는 것 같지만, 잠깐 자랑을 해 보면
몇 년전부터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한 무슨 무슨 대학생들의 컴퓨터
경진대회 비슷한 것이 있으면 당연한 듯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전부다 휩쓸어 왔으므로, 나중에는 '2년이내 우승한 적이 있는 학교
는 대상에서 제외..' 어쩌구 하는 변칙 규정까지 만들어 내게 되었다.
( 마치 옛날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라는 노래가 TV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무려 반년가까이 1등을 고수하자, 5주 연속이면 끝..
이란 제도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 )

    학생들이 당시 5공 정권의 세도를 잠깐씩 경험해 볼 경우도
있었는데, 전두환대통령이 학교에 "행차"를 하기로 하자, 소방차까지
동원되어서 학교 안팎의 도로까지 물청소를 하는가 하면, 학교내의
구석구석을 벽이며 천장이며, 금속탐지기, 폭탄 탐지기등을 갖다대고
들쑤시고 다녔다.  ( 나중에 생각해보니 역시 사람은 죄짓고는 못
사나 보다. 얼마나 다니기에 불안했으면 그정도였을까? )

    도서관 앞에는 엄청나게 큰 나무와, 그보다는 약간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양쪽에 버티고 서 있었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기념식수를
한다고, 학교에 와서 큰 나무에 흙을 한 삽 퍼 넣고 사진찍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싱싱했던 그 나무가 갑자기 계속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해서, 각종 링겔 주사등등을 맞아도 버티질 못하고 결국
말라죽고 말았다.
    그 다음해 4월달에도 다시 한 번 전두환 대통령이 "행차"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과학의 날 기념식을 학교 대강당에서 치룬다고
했다.  전 교직원들과 학생들에게는 금족령이 내려졌고 대강당 근처엔
얼씬도 못 하게 했었다.  그런데 아침엔 청명하던 대전의 날씨가
대통령이 올 시간이 가까와 오자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천둥과 벼락을
동반한 소나기와 강풍이 몰아쳤다. ( 선배들에게 물어보시압! 100%진실임)
어느정도 강풍이었냐 하면, 기숙사 가동 나동, 도서관 , 식당, 대강당위에
기왓장들이 바람에 날라다녔고, 그중 일부가 가로등의 전구를 깨뜨리기도
했다.   잠시후 대통령이 떠났다는 소식과 함께 바람이 잠잠해졌는데,
기왓장에 맞을 염려가 없어진 우리들은 밖으로 나가보고, 도서관 옆에
남아있던 큰나무가 강풍에 뿌리째 뽑혀 나간 것을 목격했다.

이 글에서 얻을 교훈: 민심이 천심이다.
                     "행차"를 나갈 때㎖는 일기예보를 꼭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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