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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IST ] in KIDS
글 쓴 이(By): Gatsbi (궁금이)
날 짜 (Date): 2003년 10월 19일 일요일 오후 10시 41분 10초
제 목(Title): [p] 과학기술자가 신뢰받는 길


과학기술자가 신뢰받는 길



 
위도 핵폐기장 부지조사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하청을 
받은 시추업자에게 40m만 파고 그 밑으로는 내려가지 말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시추업자는 밑으로 더 내려가면 연약한 암석층이 나오기 때문에 그런 
요구가 나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정감사 자리에서도 위도 지층이 단단한 
응회암층이라고 하는 한수원 담당자와 연암층이라는 시추업자가 공방을 벌였다. 
누가 옳은 것인지는 앞으로 좀더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밝혀지겠지만, 
이번에 불거진 조작의혹은 과학기술자라는 전문가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부안군수가 위도를 핵폐기장 부지로 신청한 후 위도가 
적합하다는 판정이 내려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열흘밖에 되지 않았다. 
부지선정위원장은, 그토록 짧은 기간 안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냐는 
비판에 대해 전문가는 한번만 보고도 판단할 수 있어야 전문가 자격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한마디로 부지선정이든 
핵폐기장이든 전문가가 완벽하게 할 수 있으니 전문가만 믿고 따르라는 
이야기다. 완벽하게만 된다면야 그들을 따르지 못할 이유가 없겠지만, 문제는 
그들도 종종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자들도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조작을 하기도 
한다. 연구결과를 은폐하거나 조작하거나 남의 것을 표절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노벨상에 근접했다고 평가받던 물리학자가 유수한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가 대부분 조작이라는 것이 드러나서 물리학계에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독일에서는 연구소장으로 초빙될 예정이던 유전공학자가 비슷한 일을 
저지른 것이 밝혀져서 초빙이 취소되는 일도 벌어졌다. 이렇게 아주 우수하다는 
과학자들 중에도 업적 쌓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과를 조작하는 일이 
일어나는데, 평범한 과학자들이 그런 일을 저지르지 말라는 법도 없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전문가를 믿고 따르라고 말하지만, 이들의 예는 전문가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연구결과의 조작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지만, 잘못 알려지거나 해석된 
과학기술 정보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조작을 용인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에서 
핵폐기장 가는 곳에 선물로 함께 보내겠다는 양성자 가속기가 바로 좋은 
예이다. 양성자가속기는 연구시설일 뿐, 정부에서 주장하듯 정보기술, 
생명공학, 나노기술과 밀접한 산업연관성을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1조원의 산업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무회의 자리에서 핵폐기장 가는 곳에 그토록 좋은 양성자 
가속기까지 딸려 보내겠다는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과학기술자들이 올린 보고서를 그대로 믿고 그렇게 말했을 
것인데, 그렇다면 과학기술자들은 사실을 과장하고 조작해서 대통령까지 실수를 
저지르게 만든 셈이 된다. 이토록 보고서의 오류가 명백한데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 중에 이 오류에 대해서 지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양심적인 과학기술자라면, 그리고 과학기술자에 대한 대중의 신뢰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양성자가속기에 대한 과장에 대해 분명하게 지적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식의 침묵은 과학기술자 전체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낳을 수 
있다. 이공계 위기가 온 것은 사회분위기 탓도 있지만, 사실 이공계 내부의 
자기과신이나 무사안일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대중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은 거의 하지 않고, 대중이 그들 자신이 하는 일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만을 했다는 것이다. 

노벨 화학상을 받은 로얼드 호프만은 어떤 에세이에서 전문가 의존은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도 유전공학이나 폐기물 처리와 
관련된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전문가도 나를 믿고 
따르라는 말만 하지 말고 호프만 같은 동료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필렬/방송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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