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IST ] in KIDS 글 쓴 이(By): chopin (** 쇼팽 **) 날 짜 (Date): 2003년 10월 19일 일요일 오후 12시 49분 05초 제 목(Title): 미의 근원을 찾아 - 7. 아름다움의 가치 쇼팽의 피아노 음악을 들으면 그 안에서 쇼팽이라는 음악가가 표현해 놓은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세계를 느끼게 되고, 많은 쇼팽매니아들은 그의 음악을 절대적인 미적가치를 갖는 것으로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깊은 예술세계에 심취한 많은 애호가들은 그 예술세계 자체가 시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갖는 것으로 이해한다. 만일 그들에게 그것이 실제로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단지 뇌를 자극하는 마약과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아마도 큰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필자역시 그러한 매니아중의 하나로 아이디조차 그 사람의 이름을 빌린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움의 가치를 어떻게 규정해야하는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뒤따를 수 밖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일생을 바쳐 예술을 위해 헌신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당신은 뇌를 자극할 좀더 강력한 마약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들은 망연자실하고 분노할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움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은 절대적인 가치로 미를 평가하기를 원해 왔다. 그들의 일생을 바칠 정도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를 중심으로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이러한 절대적인 가치는 붕괴되게 된다. 감동적인 음악을 들었을 때와 똑같은 감동은 단순히 뇌를 전기자극함으로써 유발 시킬 수 있다. 피실험자는 그 전기자극을 유발한 원인에서 음악적 아름다움과 완벽히 동일한 감동을 받게 된다. 이때 그 음악은 그 전기자극과 동일한 가치를 갖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쥐에서 발견된 쾌락중추는 쥐가 그 쾌락중추에 연결된 버튼을 쉬지 않고 누르게 만드는 행동을 유발하게 된다. 쥐는 물론 그 버튼 자체가 큰 쾌락을 주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이는 아름다움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약 아름다움을 유발하는 중추가 발견된다면, 그 부위에 전기자극을 임의로 줄 수 있게 되면, 그 전기자극을 주는 버튼을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 보다도 더 깊이있고 감동적인 것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사실상 음악이나 미술, 문학등의 작품들은 아름다움을 유발하는 회로의 전단계 필터를 통과하는 자극들이다. 직접 뇌에 전기자극을 줄 수 있다면 예술작품과 이 전기자극과의 차이는 사실상 없게 된다. 이러한 이론적인 배경에서 우리는 예술의 가치와 아름다움의 가치를 어떻게 둘 것인가? 물론 사람의 심리를 움직이고 감정에 영향을 주는 입장에서 예술작품들의 가치는 그 아름다움의 본질을 뇌로 본다 하더라도 변치 않는 것이다. 어차피 예술뿐 아니라 인간활동의 모든 것은 스스로의 뇌가 좀더 많은 보상신호를 받도록 움직이는 것이다. 그 작품들이 사람들을 움직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등의 영향을 주는 면에서의 가치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절대적인 가치로서의 아름다움의 관점은 더이상 설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세속적인 세상과 동떨어져 순수한 미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려 했던 절대적인 가치는 사실상 뇌의 환상에 이끌려 간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뇌를 기반으로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이렇게 아름다움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에서부터 재정립해야만 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이는 지금까지 예술을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면 피하고만 싶은 끔찍한 일이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그 절대적으로 변치 않을 것 같던 그 아름다움이 단지 뇌의 환상이었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과 진리는 피할 수 없는 것. 피하려고 해도 결국 한번 알게되면 그 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아름다움의 가치는 결국 절대적인 가치는 붕괴되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상대적인 가치만이 남게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뇌가 주는 아름다움의 진실이다. __ 쇼팽 http://mobigen.com/~chop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