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쓴 이(By): chang (장 상 현) 날 짜 (Date): 1993년07월12일(월) 18시42분15초 KDT 제 목(Title): 조선어학회사건 5 이극로 박사가 가장 애를 써왔던 관계는 바로 국민총력 조선 연맹 총재 아무개 였으며, 이 사람은 조선인으로는 권세가 대단하여,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대단한 인물이었다. 이극로 박사는 사전 편찬원 정태진이 경찰서에 불려가자 즉시 그의 도움을 청했으나 그는 도와주지 않았다. 친일파는 어디 까지나 ... 그러나 이 박사의 노려기 물거품은 아니었었다. 이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겠다. 그러면 이렇게 조심을 해가며 사전 제작에 총력을 기울이던 조선어 학회가 어떻게 일제의 마수에 걸려 들었을까? 이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단이었다. 1942년 7월 학생이었던 박병엽씨가 흥원읍 전진 정거장에서 일경의 검문에 걸렸는데, 반일 감정이 컸던 박씨가 일경과 말싸움을 하게되어 가택 수색을 받게 되었다. 그 집에서 함흥 영생여고생이었던 박영희 씨의 일기장까지 조사하여, 국어사용에 관해 야단을 맞았다는 내용이 발견되었다. 이 것은 2년전의 일기 였었는데, 아무런 문제가 될 내용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의 선생이 조선어 학회로 옮겨 사전 편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경은 정태진을 무조건 체포 고문하여, 조선어 학회가 독립 운동 단체라는 자백을 받고, 이극로등 11명을 함흥으로 잡아갔다. 이극로 박사의 수첩에서, 유학당시 많은 망명인사들과 만났었고, 그들과 우리 말을 살리기위한 그의 뜻을 토로한 것이 발견되어, 4차에 걸친 검거가 이루어지고 29인의 인사가 체포 되었다. 이제 알게 되셨겠지만, 이 조선어 학회 사건은 완전한 일경의 조작사건 이었다. 그렇지만, 왜 그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조작을 해가며 조선어 학회를 없애려 했으며, 회원들을 없애려 했는가 생각해 보아야한다. 학회의 학자들은 일제의 법이 미칠 수없는 범위에서 우리의 글과 말을 살리려 한것이다. 말과 글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우리의 글과 말이 남아있는한 우리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는 독립을 이룰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는 그 사실을 깨 닫고 이 분들을 없애려고 애를 썼었던 것이다. 그들은 단 하나의 꼬투리가 나오자 물고문, 몽둥이 고문등 온갖 고문과 사건 조작으로 조선어 학회를 때려엎은 것이니, 20년간 그분들이 버텨온 사실이 기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