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ul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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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2월 26일 금요일 오후 10시 26분 50초
제 목(Title): 한21/ 누가 서당훈장을 꿈꾸는가?


누가 서당 훈장을 꿈꾸는가 
문화부 한자병용 강행에는 DJP의 뜻 담겨…나라말글살이 한자세대 나서지 말아야 

 (사진/한자병용은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은 정보화 사업에도 큰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 

지난 1월30일, 강원도 평창군 용평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전용기인 공군1호기에 올랐다. 이 비행기에는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 조규향 청와대 사회복지수석 등이 
동행했다. 정부의 한자병용 방침의 가닥이 잡힌 것은 바로 이 비행기 안에서였다. 
김 대통령은 비행기 안에서 신 장관에게 한자병용 문제를 검토해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뒤 열흘 만에 신 장관은 국무회의 자리에서 한자병용정책을 1단계, 2단계로 나눠 
불쑥 발표했다. 2월9일 문화관광부의 한 관계자가 “정책추진의 속도나 정책발표의 
모양새를 보면 누구의 지시인가를 짐작할 수 있지 않느냐”며 ‘배후’를 암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이튿날인 10일 문화관광부는 아예 그 엄청난 실세가 
대통령임을 보도자료에서 못박고 나섰다. 


50년 한글전용이 국론을 분열시켰다? 




‘한자병용 방안 추진이 긴급한 사유’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문화관광부는 
한자병용이 긴급한 이유로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를 들었다. “이번 한자병용 
조치는 세계화·개방화 시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국민의 
정부,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확고한 문자정책 의지”라고 밝힌 것이다. 

이때까지 문화관광부는 참으로 당당했다. 신문표제에 아직까지 한자를 즐겨 
사용하는 ‘유일한 세로짜기 신문’인 <조선일보>가 한자병용을 즉각 찬성하고 
나선 것도 문화관광부로서는 반가웠을 터이다. 문화관광부는 한글전용정책을 비록 
원칙적 수준에서나마 유지해온 과거정권을 싸잡아 비판하기도 했다. “문자사용 
논쟁은 지난 50년간 첨예하게 대립됨으로써 소모적인 국론분열을 야기해왔으나 
역대 정부에서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임시방편적인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왔다는 것이다. 

아울러 예의 ‘국민의 정부론’이 다시 ‘만병통치약’으로 등장한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21세기 지식정보문화국가시대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직시하고,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인 문자정책의 방향을 제시한 정책적인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확고한 문자정책 의지임을 밝힌 문화관광부의 자신만만한 이 
문건은 여론이 악화되면서 다른 사람이 아닌 신 장관에 의해 전면 부인된다. 신 
장관은 12일 보도자료가 근거없이 나간 것이라며 대통령으로부터 아무런 지시를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참으로 맹세컨대 대통령으로부터 한자병용을 
지시받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한자 병용은 순전히 문화관광부의 독자적 
판단이라는 얘기다. 오히려 “김종필 국무총리로부터는 국립국어연구원장이 
배석했을 때 두어차례 말을 들었다”고 밝혀 비판여론의 화살을 김 총리에게로 
돌리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신 장관은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던졌다. 
“대통령의 뜻이 거기에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당연히 나올 법한 의문이다. 

 (사진/한자병용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알려왔던 한글을 정부 스스로 
불완전한 문자라고 인정하는 셈이다.) 


세간의 비판으로부터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신 장관의 ‘충정’이 돋보이는 
대목이지만, 김 대통령이 한자병용정책으로의 전환에 깊숙이 관련돼 있다는 증언은 
곳곳에서 나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김 대통령이 지난 11월 중국방문 뒤 
관광정책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상하이총영사로부터 간판에 한문을 병기하면 
중국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는 건의를 받았다’며 한자병기를 거론했다”고 
밝혔다. 

결국 행정자치부나 교육부·건설교통부 장관들이 당황해 했을 만큼 사전조율을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신 장관이 국무회의를 통해 한자병용정책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김 대통령과 김 총리라는 막강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얘기가 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 대통령의 비행기 안 지시가 
있고난 뒤 신 장관은 여러 경로를 통해 김 대통령의 뜻이 한자병용에 있음을 
확인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일본 외상 “약자는 일본식으로 해달라” 


신 장관이 문화관광부 정책담당자들에게 한자병용 문제를 거론한 것은 지난해 
7월로 거슬러올라간다. 그러나 당시 문화관광부 정책담당자들은 신중론을 제기하며 
소극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한자병용 문제는 이미 인수위 시절부터 
논의됐으나 그 폭발성을 우려해 덮어놓은 사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김 대통령의 방중 뒤 도로표지판에 한자병기 문제가 다시 
거론됐고, 이어 한자병용 문제 검토에 소극적이던 당시 이익섭 국립국어연구원장이 
전격 교체된다. 최근 국립국어연구원장에 취임한 심재기(61) 서울대 교수는 “이번 
발표는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며 적극 환영할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한자병용론자이다. 신 장관은 “신임 국어연구원장이 적극적으로 찬성했다”며 
병용정책 추진의 한 이유로 국어연구원장의 ‘판단’을 들었으나, 이는 듣기가 
민망스러울 만큼 거꾸로 된 주장이다. 국립국어연구원장 인사권을 바로 장관 
자신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국무총리-주무장관-국립국어연구원장이 모두 한자활용론자로 포진돼 
정부수립 이래 가장 ‘강력한 진용’이 갖춰진 상태에서 마침내 ‘일’을 벌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김 대통령과 김 총리는 적극 한자활용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일까. 

한글학회가 현재 집중 겨냥하고 있는 과녁은 김 총리다. 한글학회 김계곤 
부회장(인천교대 명예교수)은 “김 총리는 이미 지난 70년대 총리 시절에도 
한자병용을 주장했다”며 국한문혼용론자들이 김 총리를 통해 집중 로비를 
펼쳤다고 주장한다. 김 부회장은 그 근거로 “한자부흥회 이재전 회장이 김 총리와 
육사 동기이며, 한국어문회 이응백 이사장은 김 총리와 서울사대 동문으로 둘 다 
김 총리와 막역한 사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각각 일본을 방문했던 김 대통령과 김 총리가 일본쪽으로부터 
한자병용에 대한 ‘권유’를 받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자병용 정책발표 직후인 11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한자병용 
문제가 두 장관 사이에 화제로 거론된 것은 흥미롭다. 이날 고무라 마사히코 일본 
외상이 한자사용 문제를 슬그머니 꺼내자 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은 “한자를 
사용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도움이 된다”며 “현재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결국은 
한자병용 방침이 수용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에 대해 고무라 외상은 
“한국과 중국, 일본이 사용하는 글자가 모두 조금씩 다르다”면서 “공식 약자를 
정할 것이라면 일본식으로 만들어달라”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대통령과 총리 모두 한자문화권에 애착 


한글운동단체의 한 관계자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던 시기에 학교를 다닌 김 
대통령과 김 총리 모두 평소 한자문화권과 동북아문화권에 애착을 가져왔다”며 
두사람 다 서예에서 한자를 즐겨 쓰는 것을 그 예로 들었다. 한글전용에 관한 한 
소신이 뚜렷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이 서예에서 한글을 즐겨 쓴 것과 대조적인 
셈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한글세대와는 확연히 거리가 먼 70대 중반의 두사람이 각각 
대통령과 총리로서, 역시 한글세대가 아닌 59살의 신 장관에게 한자병용을 적극 
검토할 것을 직간접적으로 지시한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신 장관 자신은 어떤 ‘소신’일까. 앞서도 말했듯이 신 장관은 
한자병용이 자신의 의지임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에서 문화관광부의 공식적인 발언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이라든가, 신 장관의 
어문정책 관련 발언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은, 과연 그에게 어문정책의 
철학이 있는가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한자병용정책에 대한 항의로 한자병용반대투쟁전국비상대책위원회 원광호 위원장이 
삭발을 한 2월19일 오전 11시. 공교롭게도 바로 그 시각에 신 장관은 ‘문화관광부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돌연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 운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들이 어리둥절한 것은 두말할 나위없다. 

뿐만이 아니다. 신 장관은 이 운동을 중앙·지방정부는 물론 민간이 참여하는 
국민운동으로 확산시켜 나가겠다며 신문·방송사와 공동추진도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신 장관은 그러나 “장관이 생각하는 ‘바로쓰기’가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질문에 다시 한번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답변을 내놓았다. 

“정확한 의사전달이 안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한자병기도 그래서 
추진됐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결국 한자를 병용하는 것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바로쓰는 것이라는 기상천외한 논법을 펼친 셈이다. 

문화관광부 정책당국자조차 장관의 설명에 스스로 모순을 인식했기 때문이었을까. 
기자회견이 끝난 뒤 ‘보충설명’을 했다. 이 당국자는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 
운동과 한자병기는 사실 관계가 없다”며 “외래어가 많은 우리글을 공문서에서 
쉬운 우리말로 고쳐 쓰자는 운동”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이 설명 또한 
자기모순이다. 외래어가 많은 우리글을 쉬운 한글말로 고쳐쓰는 운동을 벌이려면 
한자병용을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졸속과 억지 어문정책 반성해야 


문화관광부의 어문정책 논리가 이처럼 뒤죽박죽인 현실은 그만큼 한자병용정책이 
얼마나 졸속과 억지 속에 추진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의 정부’이기에 과거 정부가 우물쭈물했던 한자병용정책으로의 전환을 
‘결단’할 수 있었다고 당당히 주장하는 정부의 모습은 철학의 빈곤을 넘어서 
오만에 가깝다. 한자병용을 강행할 경우 이것이 훗날 김대중 정권의 최대실책으로 
평가될 것이라는 한글세대의 비판에 대해 ‘한자 향수’에 잠겨 있는 연로한 두 
권력자와 신 장관의 답변이 궁금하다. 

손석춘 기자/ 한겨레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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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999년 03월 04일 제2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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