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2월 5일 금요일 오후 12시 44분 54초 제 목(Title): 조선/한국어의 뿌리는 고대 중국어 [이색논문] "한국어의 뿌리는 고대 중국어" 북경대 자오지에교수 "오·월과 황하유역 언어 영향받았다" . ♧ '한국어의 계통과 그 귀속에 관한 새로운 탐구'. 최근 한국에 우송 된 '당대한국'이라는 중국사회과학원 한국연구센터가 펴낸 계간지에 실 려있는 한 편의 논문이다. 논문을 쓴 사람은 북경대 박사과정 지도교수 자오지에. 이 논문에는, 우리 학계는 어떨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의 상식을 깨트 릴만한 내용들이 실려있다. '중국어와 한국어는 전혀 그 계통이 다른 언 어다', '중국어는 인도유럽어계에 속하고, 한국어는 알타이어계에 속한 다'. 그런 기초적인 상식만을 갖고 있는 일반 한국인들을 충분히 놀라게 할만한 내용들이다. 이 논문에는 심지어 고대 한반도 남부에 있던 부족 국가 '진한'이 '진'나라에서 건너온 한족들이 세운 나라라는 주장도 포 함돼 있다. 주로 한국어와 중국어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이 논문은 과연 얼마나 타당성을 지니는 것일까. 또 한중수교 7년째인 지금에 와서 중국인들이 한국어와 중국어의 관계에 대해 이같은 논문을 작성한 배경은 과연 순수 한 것일까. 이런 식의 의문을 이 논문은 갖게 해준다. 다음은 대체로 한중간의 교류 확대를 위해 우리 정부가 많은 돈을 대 서 발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계간지 '당대한국' 98년 가을호(하지만 최근 호이다)에 실린 논문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9세기에 탄생한 비교언어학은 중국어와 알타이계 언어 사이의 구분을 명확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서양의 비교언어학은 한국어와 일본어의 계 통과 귀속 문제에 대해서는 '계통 불명'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그 원인중의 하나는 서양 언어학자들의 한국어와 일본어에 대한 지식이 깊 지 못한 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어에 대해 서양 언어학자들이 내린 '계통 불명'이라는 결론은 1세기 가까이 계속 유지되어온 정설이다. 서방 언어학자들은 고금의 한 국어나 한국어 사투리, 그리고 한국어의 주변 언어들에 대한 깊은 지식 을 쌓지 않은 가운데 한국어를 '계통 불명'인 채로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근년에 들어 한국과 중국, 일본의 언어학자들이 더 깊은 연구 를 시도, 한국어에 대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리게 됐다. '한국 어는 기본적으로 알타이어계에 속한다'는 명제는 인정하지만 어휘 속에 는 알타이어와 뿌리가 같은 어휘가 비교적 적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기본 어법은 알타이어와 유사하지만 어휘는 다른 알타이어계 언어 와 어원이 다른 것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중국어 한국어 중국 오민(중국의 강소·절강· 복건성 일대) 방언 쾌(kwai) 어서(x s z ) x s x (표기 한자는 없음) 저개(zhege) 이것(i k x t) i k x t 수(shei) 누구(n u k u) n u k u 수전(shui tien) 논(n o n) n a <여기서 x는 almost의 a 발음에 해당하는 음임>. 한민족들은 자신들을 단일 언어 민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상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한반도의 언어에는 고대에 알타이어계 이외에도 두 가지 종류의 언어가 유입됐음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고대 오·월 지 방의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황하 유역의 고대어이다.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고대 아시아대륙에는 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이동해간 '이민선'이라는 것이 남아있다. 그방향 은 아시아대륙의 서남에서 동북쪽으로 움직여갔으며, 드라비다어계의 사람들이 살던 인도 동북지방에서 시작해서 중국을 거쳐 몽골과 한반도, 일본으로 옮겨간 것으로 되어있다. 이 쌀농사를 짓던 사람들의 이민선 은 나중에 불교의 전파와 함께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사람의 이동은 자연스럽게 말의 이동을 가져오는 것이므로, 쌀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이민선은 언어에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보자. 드라비다어에서 '쌀'의 발음은 였다. 몽고어에서는 지금도 로 남아있다. 13세기에 쓰여진 '몽고비사'에 명확한 기록이 있는 것처럼, 몽골인들은 쌀농사를 별로 짓지 않았기 때문에 라는 말 을 평소에 별로 사용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라는 드라비다어 어휘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드라비다어는 쌀농사 이민선을 따라 한반도에 전해진 뒤 어미가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라는 형태로 남아있다. 위 에든 네가지 예, < x s x >와 ,,의 네가지 어 휘도 바로 쌀농사의 이민선을 따라 고대에 인도 북부에서 중국 동부를 거쳐 한반도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한반도 서남부 전라남도 일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섬들의 이름이 발견 된다. '거차군도(kx cha gun do)' '거차도(kx cha do)' '독거도(dok kx do)' '거금도(kx gum do)' (x는 `어' 발음) '거문도(kx mun do)' '거문도(kx mun do)' '임회(yim hoe)'(중국쪽의 임구와 대응) '보길도(bo gil do)'. 전라남도는 아니지만 인근 경상남도에서도 '거제도(kx je do)'라는 지 명이 발견된다. 바다를 건너 마주 보고 있는 두 해안지방 도시와 섬들의 이름에서 고 대어로 'ku', 'kx' 계열의 발음이 발견되는 것은 바로 고대에 쌀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이동해간 경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황하유역의 고대어는 '아언'이라고 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전 후해서 황하유역에서 공통적으로 통하던 말이 아언이었다. 흥미로운 것 은 중원에서 쓰이던 아언과, 중국의 동북에 퍼져 있는 알타이어 사이에 서 많은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베트남어나 몽골어와 아언 사이에 서 발견되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이 아언과 한국어 사이의 공통점을 추적해보자. 한반도에서 한자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기원 1세기 전후부터였던 것 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때 한반도 남부에는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이 있 었다. 이 삼한과 관련,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이런 기록이 나온다.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었다. 진한의 노인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많은 진나라 사람들이 역에 동원되는 것을 피해 한국으로 건너갔다.…진 한의 언어는 마한과 달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과 '진'의 한국어 발음이 같은 '진'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중원에서 건너간 '진인'들이 진이라는 글자를 피해 '진' 이라는 글자를 택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진한이란 중원에서 건너간 이민들이 한반도로 건너가서 세운 나라가 아닌가 추정되는 것이다. '진 한의 언어가 마한과 달랐다'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 시말해 마한은 한반도 남부의 토착 민족이 세운 나라이며, 진한은 진인 들이 세웠기 때문에 그 언어가 달랐던 것이 아닌가 추정되는 것이다. 당 시 변한에는 진인들과 한인들이 섞여 살았기 때문에 '변한'이라고 한 것 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한반도 남부의 삼한은 나중에 신라 가야 백제로 변해갔다. 이 과정에 서 진한에 살던 진의 이민들의 언어는 점차로 주변 언어에 녹아들어갔 다. 그러나 다음에서 보는 것과 같은 흔적을 남겼다. 한자 고대 중국어 발음 중세 한국어 발음 현대 한국어발음 맥자 mlo mil mil(밀) 선(박) peik pei pe (배) 로 klak kil kil(길) 지 dia tta ttang(땅) 필 pliwxt pixlo put(붓) 첨 diam tSma tSma(처마) 주 niet nats nats(낮) 풍 pliwxm param param(바람) 과(감) kam kama kama(가마) (S는 `쉬'의 발음).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어 대명사와 고대 중국어 사이에도 공통 발음이 존재한다. 한자 고대 중국어 발음 한국어 아 nga na(나) 니 nx nx (너) 자(기) dziei tsx (저) 현대 한국어 가운데 60∼70%는 한자 어휘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 과 정을 거치면서 한반도와 중국 사이에는 많은 교류가 있었고, 한자는 광 범위하게 한국어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한자는 한국어의 어휘를 풍부 하게하는 데 기여했고 한국어를 발전시켰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특 징들을 남겼다. 첫째, 한자 어휘는 한국어의 공백을 메웠을 뿐 아니라 많은 한국어 고유어를 밀어냈다. 예를 들어 '천'은 '즈문'을 밀어냈고, '백'은 '온'을 밀어냈다. '강' 은 '가람'을, '산'은 '뫼'를 밀어냈다. '내일'은 15세기의 '계림유사' 에 나오는 '할제('어제' '그제' 등에 대응하는 내일의 한국어 고어인듯 필자주)'를 밀어냈다. 둘째, 한자 어휘는 한국어 고유어와 역할 분담을 했다. 그 과정에서 한자어휘는 전문적인 사물을 표현할 때 사용되고, 고유어는 일반적인 사물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어휘로 역할 분담을 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바늘은 '바늘'로, 의료용구로서의 바늘은 '침' 이라고 표현하게 됐다.(필자주;중국어로는 일반적인 바늘도, 의료용구 의 바늘도 모두 '침'이다) 한국어 고유어 '다리'는 크고 작은 다리를 다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교'가 전래되면서부터 전문적으로 건설한 다 리는 '교(양)'로 표기하는 경향이 생겼다. 중국어 '발현'과 한국어 고 유어'보이다'는 정확히 같은 뜻의 말이었으나, '발현', 또는 '발견'은 전문적인 용어로 쓰이게 됐다. '현재'와 '이제' 또는 '지금'도 같은 뜻 의 말이었으나, '이제'와 '지금'은 구어로, '현재'는 서면어로 자리잡 았다. 셋째로, 같은 뜻의 한자와 한국어 고유어가 겹쳐 쓰이면서 보다 뜻 을 분명히 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생겨났다.예를 들어, '담장', '마 땅(맞+당)', '망보다', '합치다(필자주;'모두 쳐서 얼마요'라는 말속의 '치다'를 떠올릴 수 있다)' 등의 말들이 생겨났다. 또한, 한자 어휘의 일부가 한국어 고유어로 대체되는 경우도 생겨났 다. 예를 들면 '본전'이 '밑천(밑+전)'으로,'표호'가 '표범'으로, 그리 고 '식도'가 '식칼'로 바뀌는 현상도 생겨났다. 그런가 하면 알타이어인 한국어의 특성상 한자에 알타이어의 어미가 붙는 경우도 생겼다. '봉'이 '봉우리'로,'항'이 '항아리'로 바뀐 것 등 이다. 이상과 같은 자오지에의 논문이 아니더라도 중국 남부의 대표적인 방 언인'광동어', 복건성과 대만에서 사용되는 '민남어', 그리고 우리말의 한자 발음 사이에는 정확한 발음상의 규칙이 발견된다는 것은 널리 알 려진 일이다. 우리 말의 한자 발음 가운데 '띵'받침으로 끝나는 말은 중국어 방언에서 '-t'로 (월의 우리 발음은 '월'이고 광동어 민남어 발 음은 'yuet'이다) 끝나며, '밑'받침으로 끝나는 말은 '-p'로 끝나며(엽 의 우리 발음은 '엽'이고 광동어는 'yip'이다),우리 말에서 '가'받침으 로 끝나는 말은 광동어에서도 '-k'로 끝난다(국의 우리 발음은 '국'이 고 광동어는 'kwok'이다). 앞으로도 거의 영구하게 계속될 한중간의 교류와 접촉을 위해서도 우 리 학계에서도 한국어와 중국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 루어져야할 것이다. (박승준국제부차장기자 : sjpark@chosun.com)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