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ul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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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2월 29일 화요일 오전 09시 22분 37초
제 목(Title): 고종석/국어의풍경들-한국어의날짜이름 


[고종석에세이] 국어의 풍경들 14-한국어의 날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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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에는 1일, 2일, 3일 등 중국계의 날짜(날 수) 이름말고도 이 이름들에
대응하는 고유어 날짜 이름들이 있다. 알다시피 그 이름들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따위다. 이 고유어 날짜
이름들의 정확한 어원과 변천 과정을 우리가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 말들이
하나에서 열에 이르는 고유어 수사와 밀접한 형태적 관련이 있다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다. 예컨대 셋과 사흘, 넷과 나흘, 다섯과 닷새 등의 사이에는
그 의미적 연관에 상응하는 형태적 연관이 눈에 띈다. 예외가 하나 있다.
이틀이 그것이다. `둘'과 `이틀' 사이에는 그 의미적 연관에 상응하는 형태적
연관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 한국어에도 “두 해”를 뜻하는
`이태'라는 말이 있고, “다음의 해”라는 뜻의 `이듬해'라는 말도 있으며, 또
잘 쓰이지는 않지만 “짐승의 두 살”을 뜻하는 `이듭'이라는 말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틀'이라는 말의 앞부분이 `둘'이라는 의미와 관련이 있다는 걸
짐작할 수는 있다. 

한자어 날짜 이름들처럼 고유어 날짜 이름들도 기간의 의미와 차례의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다. 즉 이 낱말들은 날 수를 나타내기도 하고 날짜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루'라는 말은 24시간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뜻하기도
하고, 어떤 달의 첫째 날을 뜻하기도 한다. 이 이름들이 차례의 의미를
지니고 쓰일 때는 흔히 뒤에다 `날'이라는 말을 붙여서 하룻날, 이튿날,
사흗날, 나흗날, 닷샛날, 엿샛날, 이렛날, 여드렛날, 아흐렛날, 열흘날이라고
말한다. 또 11일 이후의 날짜를 열하루, 열이틀, 열사흘 등으로 세는 것과
구별하기 위해 특별히 앞에 `초(初)'라는 접두사를 덧대어 초하루, 초이틀,
초사흘 따위로 말하거나, 초하룻날, 초이튿날, 초사흗날 따위로 말하기도
한다. 

하루라는 말과 관련돼 가장 널리 알려진 속담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일 것이다. `하룻강아지'를 말 그대로 해석하면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되는 강아지'다. 그런 강아지가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것이니, 이
속담은 풋내기가 힘센 사람에게 멋모르고 겁없이 덤비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겠다. 그런데 실은 여기서 `하룻강아지'라는 말은 `하릅강아지'가 와전된
것이다. `하릅'이란 짐승의 한 살 됨을 일컫는다. 위에서 나온 `이듭'과 같은
계열의 말이다. 그러니 `하릅강아지'란 나이가 한 살인 강아지, 즉 태어난 지
1년이 채 안 되는 강아지를 가리킨다. 이와 비슷하게 `하릅송아지'는 한 살된
송아지를 뜻하고, `하릅비둘기'는 한 살된 비둘기를 뜻한다. `하릅'이라는
말이 점차 잊혀져서 일상어에서 잘 쓰이지 않게 되자, 속담 속의
`하릅강아지'라는 말도 `하룻강아지'로 바뀐 것이다. 

하릅은 한습이라고도 한다. 하릅이나 한습이라는 말에서도 나타나듯,
마소의 나이를 세는 고유어 명사는 우리말 고유어 수사와 형태적 연관을
갖는다. 한 살에서 열 살까지 마소의 나이를 세는 말들을 나열하자면, 하릅,
두습(이듭), 세습(사릅), 나릅, 다습, 여습, 이롭, 여듭, 아습(구릅),
열릅(담불)이다. 하릅이나 한습만이 아니라 이 말들은 거의 다 사전 속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죽어가는 말들이다. 우리것 찾기에 열심인 소설가들이나
시골의 노인들에게나 알려져 있는 말들일 뿐이다. 마소의 나이를 지칭하는
말이 따로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전통 사회에서 소나 말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소나 말을 보고 자라날 기회가
거의 없는 세대들이 이 말들을 다시 살려 쓰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새
세대들에겐 이 말들이 하나에서 열까지에 대응하는 무슨 은어처럼 들릴
것이다. 

수와 관련된 국어 어휘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아주 오래 전에 듣던 장단 두
개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첫째는 하나에서 열까지를 헤아리는 악동들의
은어고, 다른 하나는 정권 측에서 만들어 아이들에게 유행시켰을 70년대판
<용비어천가>다. 악동들은 하나에서 열까지를 이렇게 헤아렸다: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오징어, 육개장, 칠면조, 팔다리, 구두짝, 쨍그랑. 

이 은어는 좀 천하게 들리기는 해도, 추악하게까지 들리지는 않는다. 특히
추악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70년대판 <용비어천가>와 비교하면 말이다:
일, 일하시는 대통령; 이, 이 나라의 지도자; 삼, 삼일정신 받들어; 사,
사랑하는 겨레에; 오, 오일륙 일으키니; 육, 육대주에 빛나고; 칠, 칠십년대
번영은; 팔, 팔도강산 뻗었고; 구, 구국영단 내리니; 십, 시월유신이로다. 

위대하여라, 박정희 시대여!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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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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